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 실세' 최순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된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선고를 시작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 실세' 최순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된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이 선고를 시작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건은 너무 부끄러운 사유로 하급심에 돌려 보내졌다.”

지난 2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국정농단 사건의 주요 피고인들에 대한 심리를 전부 다시 하라고 판결하자 법원 안팎에서는 이같은 반응이 주를 이뤘다. 대법원 전합이 박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혐의에 대해 “공직선거법상 뇌물 혐의는 다른 범죄 혐의들과 분리해 선고해야 한다”고 결정한 데 대한 반응들이다. 실체적 내용이 아닌 ‘선고 형식’ 문제로 파기환송됐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앞서 2심에서 삼성 뇌물,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징역 25년 및 벌금 200억 원의 중형을 ‘한꺼번에’ 선고받았다.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박 전 대통령 사건의 경우 재판의 기본 중의 기본인 분리 선고를 간과했다는 이유로 환송돼 '부끄럽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이 판사는 “고등법원 내부에서는 ‘서울고법 형사4부(박 전 대통령 재판부)와 형사13부(이 부회장 재판부) 둘 중 하나가 파기되겠다’ ‘파기되는 재판부는 열 좀 받겠다’는 분위기였는데 결과적으로는 둘 다 대법원으로부터 지적을 받은 셈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전날 선고 직전까지 법조계에서도 이 부회장 2심과 박 전 대통령 2심에서 인정된 뇌물액수가 다르다는 점에서 둘 중 하나가 상고기각돼 뇌물액수가 확정되면 다른 하나만 파기환송될 가능성을 점쳤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공직선거법과 과거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 혐의는 반드시 분리 선고됐어야 하는데, 1·2심 재판부에서 전부 절차에 대해 스크린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법리보다 여론을 의식한 결단이 우선이었던가 하는 아쉬움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대법원은 2011년 "선출직 공직자가 재임 중 범한 뇌물죄와 나머지 죄에 관한 형을 분리해 선고해야 한다"는 판례를 내놨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박 전 대통령의 모든 혐의를 한 데 뭉쳐 선고했다는 것은 판사들 사이에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사건을 떠오르게 했다”고도 설명했다. 이 전 회장은 회삿돈 421억 원을 횡령하고 법인세 9억여 원을 포탈한 혐의로 2011년 1월 구속 기소됐지만, “금융회사의 최대주주 중 최다출자자 1인의 경우 조세포탈 혐의를 다른 죄와 분리해 선고했어야 한다”는 이유로 재파기환송된 이후 올해 6월에서야 최종 형이 확정됐다.

일각에서는 뇌물수수와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재판부에서 박 전 대통령의 파기환송 판단을 토대로 분리 선고할 것이란 전망도 내놓는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