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강온 양면전략 계속…기존 제재 이행 차원 설명도 덧붙여
북미 간 비핵화 실무협상 재개가 지연되는 가운데 미국이 30일(현지시간) 북한과의 불법 환적에 연루된 외국 인사와 기업에 대한 제재를 단행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북미 정상이 합의한 실무협상 재개를 성사시키자는 미국의 희망에 북한이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렇지 않아도 제재에 강력하게 반발하는 북한에 대해 미국이 제재카드로 '압박'에 나선 모양새여서 실무협상 재개에 어떤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미 재무부는 이날 북한과의 불법 환적 등에 연루된 대만인 2명과 대만 및 홍콩 해운사 3곳(대만 2곳, 홍콩 1곳)에 대한 제재를 부과했다.
또 제재 대상이 된 개인 및 해운사들이 지분을 가진 선박 한 척에 대해서도 '동결' 조치를 내렸다.
이번 제재는 지난달 29일 베트남에서 외화벌이를 해온 북한 노동당 산하 군수공업부 소속 김수일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이후 한 달여 만에 나온 추가 조치다.
이번 조치는 북미 실무협상 재개를 위해 강온 양면책을 써온 미국이 북한을 상대로 다시 한 번 압박 카드를 꺼내 든 것이라는 해석을 낳는다.
북한이 대북 제재 감시망을 피해 외화 획득과 연료 확보 수단으로 활용해온 불법 환적에 계속 메스를 들이대 핵·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에 필요한 자금줄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한 것이다.
특히 북한은 리용호 외무상이 지난 23일 담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강력한 제재' 언급을 문제삼아 "독초"라는 막말 비난을 퍼부을 정도로 제재에 강한 반감을 표시했지만, 보란듯이 제재를 이어간 셈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제재 집행은 북한의 빈약한 경제가 살아 있도록 하는 현금을 막아 평양이 핵 프로그램을 없애도록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에서 중요한 측면"이라고 평가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세계 강제실종 희생자의 날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 정부당국에 의한 강제실종 악습을 가진 나라 중 하나로 북한을 꼽으며 인권 문제를 건드리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6월 판문점 회동에서 비핵화 실무협상을 재개키로 합의했지만 별다른 진전 없이 교착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북한은 이달 한미연합훈련을 앞두고 실무협상 재개와 연계해 훈련 중단을 강하게 요구했고, 한편으론 잇따른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에 나서는 등 강력히 반발해 왔다.
특히 지난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친서를 보내 한미연합훈련이 끝나면 미사일 시험을 중단하고 협상을 재개하겠다는 뜻을 알려왔다고 전했지만 실무협상 재개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았고 북한의 미사일 시험이 훈련 종료 후에도 이뤄지는 등 기대가 빗나간 상황이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영국과 프랑스, 비상임이사국인 독일은 지난 27일 북한의 잇따른 단거리 미사일 발사와 관련,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와 북미 협상 재개, 충실한 대북제재 이행을 촉구하는 3개국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당시 미국은 성명 발표에 동참하지 않았지만 북한은 언어도단이라고 비난하며 "대화의 시점만 더 멀어지게 한다"고 반발하는 등 실무협상 재개를 둘러싼 먹구름이 여전한 형국이다.
다만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기조를 보여온 미국은 꾸준히 대화의 메시지 역시 발신하면서 북한을 실무협상장으로 끌어내려는 노력도 취하고 있다.
미 재무부는 이날 제재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월 트윗으로 추가 대북제재를 철회한 후 신규 제재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에서 벗어난 것 아니냐는 시선을 의식한 듯 "미국과 유엔의 현 제재들을 이행하고 집행해 나갈 것"이라며 기존 제재의 이행 차원이라는 취지 또한 빠뜨리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말 이후 계속된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시험에 대해 자신과 한 약속 위반이 아니라고 방어막을 치고 김 위원장에게 신뢰를 표시하는 등 대화의 손짓을 계속 내밀고 있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도 지난 28일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발사 시험에 과잉반응은 하지 않겠다고 한 뒤 비핵화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외교를 통한 정치적 합의라며 외교의 문 역시 닫지 않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