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향토극단] 중년 주부들의 열정 의정부 '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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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창단…올해 대한민국 연극제 금상 수상 실력
사비로 극단 운영…집 가구 옮겨 연극 소품으로 쓴 일화
복도로 새어 나온 클라리넷 소리가 퍽 수다스러웠다.
간간이 호탕한 중년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연습실 문을 열었다.
한쪽에서 연극 단원들이 악기 연습에 한창이었다.
낯선 이의 방문에 60대 여성 단원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에 기가 눌릴 정도였다.
혹시나 연습에 방해될까 작은 목소리로 취재 왔다고 소개하자 그제야 미소를 지어주었다.
지난 28일 오후 극단 '한네' 사무실을 찾았다.
얼마 전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의 한 아파트단지 상가 건물 3층에 새 둥지를 틀었다.
내부는 정리가 덜 됐고 분장실도 채 완성되지 않았다.
이곳에서 최병화(62) 대표와 단원 3명을 만났다.
효(孝) 공연을 위한 악기 연습 중이었단다.
'한네'는 '한국의 아낙네'라는 의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주부들로 구성된 극단이다.
지난 6월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열린 제37회 대한민국연극제에 참가해 금상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을 정도로 실력 있는 극단이다.
최 대표가 쓴 창작극 '꽃을 받아줘'로 참가했다.
요양원을 배경으로 '삶과 죽음은 벽 하나 차이며 불행과 행복, 슬픔과 기쁨은 늘 붙어 다닌다'는 내용을 그려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으로 단원 한 명이 최우수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극단 한네는 1996년 최 대표와 고교 동창, 후배 등 3명이 의기투합해 창단했다.
최 대표는 중앙대 연극영화과 76학번으로 연기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세무 공무원이던 아버지의 강요로 졸업 후 고등학교 국어 교사가 됐고 꿈을 버리지 못해 연극반 학생들을 지도했다.
결혼과 함께 남편 직장을 따라 포천으로 이사하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꿈도 모두 접었다.
그러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의정부로 이사했고 우연히 고교 때 절친을 만났다.
최 대표의 가슴에는 연기에 대한 미련이 아직 남아있었다.
연극 무대에서 활약하는 대학 동기들을 볼 때마다 자극됐고, 아이들이 자라 자신의 손이 많이 필요하지 않게 되자 더욱 요동쳤다.
결국 불혹의 나이가 돼 당시 연기를 전혀 몰랐던 고교 동창과 그의 후배와 함께 극단을 만들었다.
주부들이다 보니 낮에만 연습하고 저녁에는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극단이어야 했다.
극단 이름에 거창한 의미는 없다.
단지 주부들도 열심히 하면 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극단 마크는 조명이 국자를 비추는 모양이다.
단훈 역시 '살림도 프로. 연극도 프로'로 정했다.
연극을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주부들로 꾸리다 보니 들고나는 단원들이 적지 않았다.
특별한 지원이나 수익 없이 최 대표가 사비를 털어 꾸리 다보니 극단 운영은 열악했지만 열정 만큼은 여느 프로 극단 못지않았다.
단원들이 거리를 누비며 포스터를 붙이고 의상, 무대, 소품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요즘 말로 '웃픈'(웃기고 슬픈) 일화가 많다.
한 번은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할 예정이었는데 전날까지 소품이 준비되지 않았다.
최 대표는 급한 마음에 이삿짐 차를 불러 집에 있는 소파, 식탁, 장롱 등 가구와 가전제품을 무대로 옮겼다.
퇴근한 남편은 집 안이 텅 빈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가족들이 자신만 빼고 이사해 도망간 줄 알았단다.
현재는 단원 7명이 십수 년째 손발을 맞추고 있다.
창단 직후 '신의 아그네스'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23년간 40여개 작품을 공연했다.
1개 작품을 두 달가량 연습한 뒤 무대에 올린다.
여성 단원들만 있다 보니 남자 역할은 최 대표가 지인을 통해 대학로에서 활동 중인 전문 배우를 섭외한다.
2000년부터는 창작극을 무대에 올렸고 희곡은 모두 최 대표가 썼다.
최 대표는 희곡 작가로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등단한 뒤 열정적으로 글을 썼다.
올해만 희곡 4개를 팔아 이미 2개는 무대에 올렸다.
분야를 넓혀 2011년 제9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단편의 얼굴상'을 받기도 했다.
올해 대한민국연극제에서 금상을 받은 '꽃을 받아줘'는 2010년 올해의 한국희곡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창단 당시에는 그저 연극이 좋아서 극단을 만들었다.
사회 문제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이제는 노인, 청소년, 여성 문제 등에 대한 주부의 시각을 연극에 담아낸다.
한네 단원들은 연극제에서 상을 탈 때보다 효 공연에서 가장 보람을 느낀다.
매년 5월이면 요양원이나 양로원 4∼5곳을 찾아 노인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많게는 20곳까지 다녔으나 이제는 대부분 환갑을 넘기다 보니 벅차다.
공연 도중 노인 관객들과 함께 웃고 함께 운다.
공연이 끝나면 또 언제 오냐는 질문 세례를 받는다.
단원들은 자신의 미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이 공연 만큼은 중단할 수 없단다.
효 공연이 끝나면 6∼10월 연극 교실을 운영한다.
매년 신입생을 모집해 연극을 가르치고 마지막에 발표회도 연다.
몇 년씩 반복해 듣는 수강생도 있다.
그러다 가능성이 보여 정식 단원이 된 사례도 있다.
최 대표는 개인적으로 희곡 중 하나라도 해외에서 공연되길 바라고 있다.
극단 차원에서는 쓰러질 때까지 즐기면서 연기하고 무엇보다 효 공연을 확대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최 대표는 "새로 이사한 연습실을 누구나 방문해도 차와 국수를 대접하는 사랑방, 수다방처럼 운영하고 싶어 일부러 아파트 단지 상가 건물로 옮겼다"며 "치열하지 않게 즐기면서 쓰러지는 날까지 연극과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네 단원들은 오늘도 연습실에서 클라리넷으로 수다를 떨고 있다.
/연합뉴스
사비로 극단 운영…집 가구 옮겨 연극 소품으로 쓴 일화
복도로 새어 나온 클라리넷 소리가 퍽 수다스러웠다.
간간이 호탕한 중년의 웃음소리도 들렸다.
연습실 문을 열었다.
한쪽에서 연극 단원들이 악기 연습에 한창이었다.
낯선 이의 방문에 60대 여성 단원들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에 기가 눌릴 정도였다.
혹시나 연습에 방해될까 작은 목소리로 취재 왔다고 소개하자 그제야 미소를 지어주었다.
지난 28일 오후 극단 '한네' 사무실을 찾았다.
얼마 전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의 한 아파트단지 상가 건물 3층에 새 둥지를 틀었다.
내부는 정리가 덜 됐고 분장실도 채 완성되지 않았다.
이곳에서 최병화(62) 대표와 단원 3명을 만났다.
효(孝) 공연을 위한 악기 연습 중이었단다.
'한네'는 '한국의 아낙네'라는 의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주부들로 구성된 극단이다.
지난 6월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열린 제37회 대한민국연극제에 참가해 금상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을 정도로 실력 있는 극단이다.
최 대표가 쓴 창작극 '꽃을 받아줘'로 참가했다.
요양원을 배경으로 '삶과 죽음은 벽 하나 차이며 불행과 행복, 슬픔과 기쁨은 늘 붙어 다닌다'는 내용을 그려 호평을 받았다.
이 작품으로 단원 한 명이 최우수연기상을 받기도 했다.
극단 한네는 1996년 최 대표와 고교 동창, 후배 등 3명이 의기투합해 창단했다.
최 대표는 중앙대 연극영화과 76학번으로 연기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세무 공무원이던 아버지의 강요로 졸업 후 고등학교 국어 교사가 됐고 꿈을 버리지 못해 연극반 학생들을 지도했다.
결혼과 함께 남편 직장을 따라 포천으로 이사하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꿈도 모두 접었다.
그러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의정부로 이사했고 우연히 고교 때 절친을 만났다.
최 대표의 가슴에는 연기에 대한 미련이 아직 남아있었다.
연극 무대에서 활약하는 대학 동기들을 볼 때마다 자극됐고, 아이들이 자라 자신의 손이 많이 필요하지 않게 되자 더욱 요동쳤다.
결국 불혹의 나이가 돼 당시 연기를 전혀 몰랐던 고교 동창과 그의 후배와 함께 극단을 만들었다.
주부들이다 보니 낮에만 연습하고 저녁에는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극단이어야 했다.
극단 이름에 거창한 의미는 없다.
단지 주부들도 열심히 하면 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극단 마크는 조명이 국자를 비추는 모양이다.
단훈 역시 '살림도 프로. 연극도 프로'로 정했다.
연극을 한 번도 접해본 적 없는 주부들로 꾸리다 보니 들고나는 단원들이 적지 않았다.
특별한 지원이나 수익 없이 최 대표가 사비를 털어 꾸리 다보니 극단 운영은 열악했지만 열정 만큼은 여느 프로 극단 못지않았다.
단원들이 거리를 누비며 포스터를 붙이고 의상, 무대, 소품을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요즘 말로 '웃픈'(웃기고 슬픈) 일화가 많다.
한 번은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할 예정이었는데 전날까지 소품이 준비되지 않았다.
최 대표는 급한 마음에 이삿짐 차를 불러 집에 있는 소파, 식탁, 장롱 등 가구와 가전제품을 무대로 옮겼다.
퇴근한 남편은 집 안이 텅 빈 것을 보고 깜짝 놀라 가족들이 자신만 빼고 이사해 도망간 줄 알았단다.
현재는 단원 7명이 십수 년째 손발을 맞추고 있다.
창단 직후 '신의 아그네스'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23년간 40여개 작품을 공연했다.
1개 작품을 두 달가량 연습한 뒤 무대에 올린다.
여성 단원들만 있다 보니 남자 역할은 최 대표가 지인을 통해 대학로에서 활동 중인 전문 배우를 섭외한다.
2000년부터는 창작극을 무대에 올렸고 희곡은 모두 최 대표가 썼다.
최 대표는 희곡 작가로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등단한 뒤 열정적으로 글을 썼다.
올해만 희곡 4개를 팔아 이미 2개는 무대에 올렸다.
분야를 넓혀 2011년 제9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단편의 얼굴상'을 받기도 했다.
올해 대한민국연극제에서 금상을 받은 '꽃을 받아줘'는 2010년 올해의 한국희곡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창단 당시에는 그저 연극이 좋아서 극단을 만들었다.
사회 문제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이제는 노인, 청소년, 여성 문제 등에 대한 주부의 시각을 연극에 담아낸다.
한네 단원들은 연극제에서 상을 탈 때보다 효 공연에서 가장 보람을 느낀다.
매년 5월이면 요양원이나 양로원 4∼5곳을 찾아 노인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많게는 20곳까지 다녔으나 이제는 대부분 환갑을 넘기다 보니 벅차다.
공연 도중 노인 관객들과 함께 웃고 함께 운다.
공연이 끝나면 또 언제 오냐는 질문 세례를 받는다.
단원들은 자신의 미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이 공연 만큼은 중단할 수 없단다.
효 공연이 끝나면 6∼10월 연극 교실을 운영한다.
매년 신입생을 모집해 연극을 가르치고 마지막에 발표회도 연다.
몇 년씩 반복해 듣는 수강생도 있다.
그러다 가능성이 보여 정식 단원이 된 사례도 있다.
최 대표는 개인적으로 희곡 중 하나라도 해외에서 공연되길 바라고 있다.
극단 차원에서는 쓰러질 때까지 즐기면서 연기하고 무엇보다 효 공연을 확대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최 대표는 "새로 이사한 연습실을 누구나 방문해도 차와 국수를 대접하는 사랑방, 수다방처럼 운영하고 싶어 일부러 아파트 단지 상가 건물로 옮겼다"며 "치열하지 않게 즐기면서 쓰러지는 날까지 연극과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네 단원들은 오늘도 연습실에서 클라리넷으로 수다를 떨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