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시장 한단계 도약하려면 창작 뮤지컬 키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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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드 잘 아는 젊은 감각 필요…해외 작품 수입은 한계"
'맘마미아!' 200만명 돌파 주역 박명성 신시컴퍼니 프로듀서 인터뷰 쪼르륵, 차 따르는 소리가 맑다.
지난달 30일 서울 양재동 신시컴퍼니의 박명성(56) 프로듀서 사무실에 보이차 달이는 향이 퍼졌다.
자그마한 공간에 각양각색 다기(茶器)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요즘은 후배들과 차담을 하는 게 중요한 일과"라고 했다.
최근 신시컴퍼니에는 경사가 있었다.
뮤지컬 '맘마미아!'가 국내 초연 15년 7개월 만에 누적 관객 200만 명을 돌파한 것. 뮤지컬 티켓 단가가 10만원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영화의 2천만 관객 돌파에 비견할 기록이다.
공연계 1세대 프로듀서인 그에게 뮤지컬의 오늘과 내일을 물었다.
◇ "실패했다고 주저앉을 이유 없다…맷집 키워"
박 프로듀서는 1982년 단역배우로 연극에 입문했다.
1987년 김상열(1941~1998년) 대표가 창단한 극단 '신시'에 합류하며 제작자로 물꼬를 텄다.
'신시'는 정우 스님이 지어준 이름. '환웅천왕이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리고 백두산 신단수로 내려와 최초의 마을 신시(神市)를 열었다'는 단군신화에서 따왔다.
박 프로듀서가 1999년 극단을 물려받아 '신시컴퍼니'로 키우면서 본격적인 뮤지컬 프로덕션을 시작했다.
신시컴퍼니가 지난 20년간 선보인 라인업은 화려하다.
'맘마미아!', '아이다', '시카고', '마틸다' 등 뮤지컬을 비롯해 '푸르른 날에, '나와 아버지와 홍매와', '레드', '렛 미 인' 등 연극도 놓지 않았다.
대체로 10년 안팎의 공연 수명을 자랑한다.
단발성 공연으로 그친 적도, 손익분기점을 한참 밑도는 성적을 낼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붙잡아준 게 '맘마미아!'였다.
빚을 져도 '맘마미아!'를 무대에 올리면 재기할 수 있었다.
그룹 아바(ABBA)의 명곡이 추억을 자극한 것은 물론이고, 엄마와 딸의 애틋한 이야기가 한국인의 정서와 맞아떨어졌다.
배우들의 열연도 빼놓을 수 없다.
주인공 '도나' 역의 최정원이 2007년 담석증으로 고생하면서도 무대를 지킨 것은 유명한 일화다.
"'맘마미아!'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최정원 씨 덕분입니다.
6개월간 원캐스트(한 배역에 한 배우만 출연)로만 한 적도 있어요.
요즘 누가 그렇게 해주겠어요? 담석증으로 아파서 앉았다 일어났다도 못하던 사람이, 낮에는 병원에서 쉬다가 밤에는 무대로 돌아와서 공연했어요.
후배 배우들도 그런 사명감을 보고 배웠죠. 신이 아닌 이상 모든 공연에서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랬다고 낙담해선 안 됩니다.
배우와 스태프가 쌓은 호흡, 맷집이 다음 작품에 도움을 주거든요.
"
그러면서 박 프로듀서는 사무실 벽을 가리켰다.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제작됐던 창작 뮤지컬 '아리랑' 포스터가 다른 숱한 인기작을 제치고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우리 이야기잖아요.
2017년 재연 때 다소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낸 건 맞아요.
앞으로 어떻게 재구성하고 마케팅할지는 저희 몫이겠죠. 매일 저 포스터를 보면서 반성하고, 또 뿌듯해합니다.
" ◇ "경영 일선 물러난 지 오래…젊은 감각 수혈해야"
박 프로듀서는 신시컴퍼니 대표를 맡은 지 20주년이던 2009년, 후배인 최은경 대표에게 경영 전반을 맡기고 물러났다.
후배들이 적절한 시기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그래서인지 이직이 잦은 공연업계에서 신시는 근속연수가 높기로 유명하다.
"미국 브로드웨이를 안 간 지 12년쯤 됐습니다.
이제는 제가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라이선스 계약을 맺을 필요가 없습니다.
일일이 지시하면 언제 후배들이 일을 배웁니까? 후진들이 훨씬 트랜드에 민감한걸요.
젊은 감각을 수혈해야 작품도 잘 나옵니다.
제 역할은 후배들이 끙끙 앓는 실무적인 일을 풀어주는 정도입니다.
후방 지원이죠. 가족에게 회사를 승계하는 게 아니라, 함께 회사를 일궈온 스태프와 전문경영인들에게 넘기는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어요.
"
박 프로듀서는 뮤지컬 업계가 더욱 커질 거라고 내다봤다.
지난 2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공개한 '2018년 문화향수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지난 1년간 뮤지컬 관람률은 13.0%로 전년 대비 2.8%포인트 상승했다.
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되면서 평일 관람객도 증가세다.
"한국 뮤지컬 시장이 이보다 줄어들지는 않을 거예요.
젊은 컴퍼니들이 생겨났고 작품도 다양해졌죠. 여기서 한단계 도약하려면 창작 뮤지컬을 키워야 해요.
해외작 수입에는 한계가 있어요.
어차피 들어올 만한 작품은 다 들어왔어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요즘 신작은 여기서도 생소해요.
새로운 라이선스를 들여올 바에야 우리 콘텐츠 개발에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있어요.
"
신시컴퍼니는 9월 14일 '맘마미아!' 서울 공연을 마치는 대로 지방 투어에 돌입한다.
오는 11월에는 '아이다' 개막을 앞뒀다.
진도 씻김굿을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 개발과 연극 '푸르른 날에'를 뮤지컬로 각색하는 작업도 병행 중이다.
환갑을 내다보는 1세대 프로듀서의 눈이 새내기 연극인처럼 반짝였다.
/연합뉴스
'맘마미아!' 200만명 돌파 주역 박명성 신시컴퍼니 프로듀서 인터뷰 쪼르륵, 차 따르는 소리가 맑다.
지난달 30일 서울 양재동 신시컴퍼니의 박명성(56) 프로듀서 사무실에 보이차 달이는 향이 퍼졌다.
자그마한 공간에 각양각색 다기(茶器)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요즘은 후배들과 차담을 하는 게 중요한 일과"라고 했다.
최근 신시컴퍼니에는 경사가 있었다.
뮤지컬 '맘마미아!'가 국내 초연 15년 7개월 만에 누적 관객 200만 명을 돌파한 것. 뮤지컬 티켓 단가가 10만원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영화의 2천만 관객 돌파에 비견할 기록이다.
공연계 1세대 프로듀서인 그에게 뮤지컬의 오늘과 내일을 물었다.
◇ "실패했다고 주저앉을 이유 없다…맷집 키워"
박 프로듀서는 1982년 단역배우로 연극에 입문했다.
1987년 김상열(1941~1998년) 대표가 창단한 극단 '신시'에 합류하며 제작자로 물꼬를 텄다.
'신시'는 정우 스님이 지어준 이름. '환웅천왕이 풍백·우사·운사를 거느리고 백두산 신단수로 내려와 최초의 마을 신시(神市)를 열었다'는 단군신화에서 따왔다.
박 프로듀서가 1999년 극단을 물려받아 '신시컴퍼니'로 키우면서 본격적인 뮤지컬 프로덕션을 시작했다.
신시컴퍼니가 지난 20년간 선보인 라인업은 화려하다.
'맘마미아!', '아이다', '시카고', '마틸다' 등 뮤지컬을 비롯해 '푸르른 날에, '나와 아버지와 홍매와', '레드', '렛 미 인' 등 연극도 놓지 않았다.
대체로 10년 안팎의 공연 수명을 자랑한다.
단발성 공연으로 그친 적도, 손익분기점을 한참 밑도는 성적을 낼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붙잡아준 게 '맘마미아!'였다.
빚을 져도 '맘마미아!'를 무대에 올리면 재기할 수 있었다.
그룹 아바(ABBA)의 명곡이 추억을 자극한 것은 물론이고, 엄마와 딸의 애틋한 이야기가 한국인의 정서와 맞아떨어졌다.
배우들의 열연도 빼놓을 수 없다.
주인공 '도나' 역의 최정원이 2007년 담석증으로 고생하면서도 무대를 지킨 것은 유명한 일화다.
"'맘마미아!'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최정원 씨 덕분입니다.
6개월간 원캐스트(한 배역에 한 배우만 출연)로만 한 적도 있어요.
요즘 누가 그렇게 해주겠어요? 담석증으로 아파서 앉았다 일어났다도 못하던 사람이, 낮에는 병원에서 쉬다가 밤에는 무대로 돌아와서 공연했어요.
후배 배우들도 그런 사명감을 보고 배웠죠. 신이 아닌 이상 모든 공연에서 성공할 수는 없습니다.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랬다고 낙담해선 안 됩니다.
배우와 스태프가 쌓은 호흡, 맷집이 다음 작품에 도움을 주거든요.
"
그러면서 박 프로듀서는 사무실 벽을 가리켰다.
2015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제작됐던 창작 뮤지컬 '아리랑' 포스터가 다른 숱한 인기작을 제치고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우리 이야기잖아요.
2017년 재연 때 다소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낸 건 맞아요.
앞으로 어떻게 재구성하고 마케팅할지는 저희 몫이겠죠. 매일 저 포스터를 보면서 반성하고, 또 뿌듯해합니다.
" ◇ "경영 일선 물러난 지 오래…젊은 감각 수혈해야"
박 프로듀서는 신시컴퍼니 대표를 맡은 지 20주년이던 2009년, 후배인 최은경 대표에게 경영 전반을 맡기고 물러났다.
후배들이 적절한 시기에 걸맞은 책임을 져야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그래서인지 이직이 잦은 공연업계에서 신시는 근속연수가 높기로 유명하다.
"미국 브로드웨이를 안 간 지 12년쯤 됐습니다.
이제는 제가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라이선스 계약을 맺을 필요가 없습니다.
일일이 지시하면 언제 후배들이 일을 배웁니까? 후진들이 훨씬 트랜드에 민감한걸요.
젊은 감각을 수혈해야 작품도 잘 나옵니다.
제 역할은 후배들이 끙끙 앓는 실무적인 일을 풀어주는 정도입니다.
후방 지원이죠. 가족에게 회사를 승계하는 게 아니라, 함께 회사를 일궈온 스태프와 전문경영인들에게 넘기는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어요.
"
박 프로듀서는 뮤지컬 업계가 더욱 커질 거라고 내다봤다.
지난 2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공개한 '2018년 문화향수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지난 1년간 뮤지컬 관람률은 13.0%로 전년 대비 2.8%포인트 상승했다.
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되면서 평일 관람객도 증가세다.
"한국 뮤지컬 시장이 이보다 줄어들지는 않을 거예요.
젊은 컴퍼니들이 생겨났고 작품도 다양해졌죠. 여기서 한단계 도약하려면 창작 뮤지컬을 키워야 해요.
해외작 수입에는 한계가 있어요.
어차피 들어올 만한 작품은 다 들어왔어요.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의 요즘 신작은 여기서도 생소해요.
새로운 라이선스를 들여올 바에야 우리 콘텐츠 개발에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있어요.
"
신시컴퍼니는 9월 14일 '맘마미아!' 서울 공연을 마치는 대로 지방 투어에 돌입한다.
오는 11월에는 '아이다' 개막을 앞뒀다.
진도 씻김굿을 소재로 한 창작 뮤지컬 개발과 연극 '푸르른 날에'를 뮤지컬로 각색하는 작업도 병행 중이다.
환갑을 내다보는 1세대 프로듀서의 눈이 새내기 연극인처럼 반짝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