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영국인이다"…홍콩 시위에 영국 여권 등장한 까닭은 [강경민의 지금 유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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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권 없는 英 여권…홍콩 시민 17만여명 효력
英 정치권서 "BNO 소지자에게 영국 시민권 부여" 주장도
중국은 '내정간섭'이라며 거센 반발
英 정치권서 "BNO 소지자에게 영국 시민권 부여" 주장도
중국은 '내정간섭'이라며 거센 반발
지난 1일(현지시간) 홍콩 중심가 애드미럴티에 있는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이날 시위에 참여한 홍콩 시민 500여명은 영국 국기인 유니온 잭과 함께 ‘British National Overseas(BNO)’라고 쓰여진 여권을 일제히 꺼내들었다. 이들은 여권을 손에 들고 흔들며 “우리는 영국인이다. 영국은 우리를 버리지 말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이 꺼낸 여권인 BNO는 영국 해외시민여권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현지시간) BNO를 소지한 홍콩 시민들의 반중 시위가 거세지면서 자칫 중국과의 외교관계가 악화되는 등 영국 정부가 최악의 정치적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정부는 1987년부터 홍콩 시민들을 대상으로 BNO 발급을 시작했다. 1980년대 홍콩을 비롯한 해외에 있는 영국령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BDTC(영국 해외영토여권·British Dependent Territory Citizen) 여권만 발급받으면 됐다. 문제는 홍콩이 1997년 7월1월 중국에 주권 반환을 앞두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영국 정부는 홍콩 주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반환 시점인 1997년 7월1일 이전 태어난 홍콩 주민들에게 BNO를 발급해 줬다. 이 여권을 소지하면 준영국인으로 간주돼 다른 여권에 비해 영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그러나 영국 내에서 거주하거나 일할 권리는 없다. 사실상 반쪽짜리 영국 시민권인 셈이다.
FT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BNO를 발급받은 홍콩 시민은 340만여명에 달한다. 발급 건수로만 보면 전체 홍콩 시민(750만여명)의 절반에 육박한다. 그러나 지난해 말 기준으로 실제로 유효한 BNO를 보유한 홍콩 시민은 17만명뿐이다. BNO는 10년마다 갱신해야 효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초기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홍콩인들은 1997년 7월부터 중국 정부가 공식 발급하는 홍콩특별행정구(SAR) 여권과 함께 BNO 여권을 동시 소지했다. 그러나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후 BNO는 SAR 여권에 비해 인기가 시들어졌다.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해외 여행시 BNO보다 SAR 여권을 사용하는 홍콩 시민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SAR 여권을 소지하면 세계 각국에 있는 중국 공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더욱이 BNO 여권은 효력을 유지하려면 발급 후 10년마다 갱신해야 한다. 갱신 비용은 평균 1100달러(약 133만원)로, SAR 여권 갱신비의 세 배가 넘는다. 발급건수에 비해 실제 효력을 지닌 BNO를 소지한 홍콩인들이 적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의 본격적인 간섭과 함께 홍콩 정세가 불안해지자 2010년대 중반부터 BNO를 갱신하는 홍콩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홍콩 현지 언론에 따르면 2000년대 후반 한 해 평균 1만건에도 미치지 못했던 BNO 갱신건수는 2015년엔 3만건에 육박했다. 특히 홍콩 경제·금융계를 장악하고 있는 홍콩인들의 대부분이 만약을 대비해 BNO을 갱신하고 있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설명이다. 지난달 말 홍콩 접경 지역인 중국 광둥성 선전(深圳)에서 중국 공안에 구류됐다가 풀려났던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직원인 사이먼 쳉도 BNO 소지자다.
톰 투겐다트 영국 하원 외교위원장(보수당)이 지난달 13일 BNO를 소지한 홍콩 시민들에게 영국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논란은 더욱 불거졌다. 투겐다트 위원장은 “영국은 1997년 홍콩 반환 이전의 홍콩 시민에 대한 책임이 있다”며 “영국이 당시 홍콩인들에게 해외시민권을 발급한 건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영국 정부는 당시의 잘못을 바로잡고 미래가 매우 불안할 수밖에 없는 홍콩 시민들에게 확신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거세게 반발했다. 류 샤오밍 영국 주재 중국대사는 투겐다트 위원장의 발언 관련 기자 설명회를 통해 “영국 정치인들이 여전히 식민주의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정부도 영국 외교부에 홍콩 시위에 대한 간섭을 중단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영국 정부는 홍콩 시위에 대한 중국 정부의 무력 진압에 대해선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다만 BNO 소지자들의 영국 시민권 요구에 대해선 공식 입장 표명을 삼가고 있다. FT와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홍콩 시위와 중국 정부와의 경제협력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고 전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현지시간) BNO를 소지한 홍콩 시민들의 반중 시위가 거세지면서 자칫 중국과의 외교관계가 악화되는 등 영국 정부가 최악의 정치적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정부는 1987년부터 홍콩 시민들을 대상으로 BNO 발급을 시작했다. 1980년대 홍콩을 비롯한 해외에 있는 영국령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BDTC(영국 해외영토여권·British Dependent Territory Citizen) 여권만 발급받으면 됐다. 문제는 홍콩이 1997년 7월1월 중국에 주권 반환을 앞두고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영국 정부는 홍콩 주민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반환 시점인 1997년 7월1일 이전 태어난 홍콩 주민들에게 BNO를 발급해 줬다. 이 여권을 소지하면 준영국인으로 간주돼 다른 여권에 비해 영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그러나 영국 내에서 거주하거나 일할 권리는 없다. 사실상 반쪽짜리 영국 시민권인 셈이다.
FT에 따르면 지난해 말까지 BNO를 발급받은 홍콩 시민은 340만여명에 달한다. 발급 건수로만 보면 전체 홍콩 시민(750만여명)의 절반에 육박한다. 그러나 지난해 말 기준으로 실제로 유효한 BNO를 보유한 홍콩 시민은 17만명뿐이다. BNO는 10년마다 갱신해야 효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초기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홍콩인들은 1997년 7월부터 중국 정부가 공식 발급하는 홍콩특별행정구(SAR) 여권과 함께 BNO 여권을 동시 소지했다. 그러나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후 BNO는 SAR 여권에 비해 인기가 시들어졌다. 중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해외 여행시 BNO보다 SAR 여권을 사용하는 홍콩 시민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SAR 여권을 소지하면 세계 각국에 있는 중국 공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더욱이 BNO 여권은 효력을 유지하려면 발급 후 10년마다 갱신해야 한다. 갱신 비용은 평균 1100달러(약 133만원)로, SAR 여권 갱신비의 세 배가 넘는다. 발급건수에 비해 실제 효력을 지닌 BNO를 소지한 홍콩인들이 적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의 본격적인 간섭과 함께 홍콩 정세가 불안해지자 2010년대 중반부터 BNO를 갱신하는 홍콩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홍콩 현지 언론에 따르면 2000년대 후반 한 해 평균 1만건에도 미치지 못했던 BNO 갱신건수는 2015년엔 3만건에 육박했다. 특히 홍콩 경제·금융계를 장악하고 있는 홍콩인들의 대부분이 만약을 대비해 BNO을 갱신하고 있다는 것이 현지 언론의 설명이다. 지난달 말 홍콩 접경 지역인 중국 광둥성 선전(深圳)에서 중국 공안에 구류됐다가 풀려났던 홍콩 주재 영국 총영사관 직원인 사이먼 쳉도 BNO 소지자다.
톰 투겐다트 영국 하원 외교위원장(보수당)이 지난달 13일 BNO를 소지한 홍콩 시민들에게 영국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논란은 더욱 불거졌다. 투겐다트 위원장은 “영국은 1997년 홍콩 반환 이전의 홍콩 시민에 대한 책임이 있다”며 “영국이 당시 홍콩인들에게 해외시민권을 발급한 건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영국 정부는 당시의 잘못을 바로잡고 미래가 매우 불안할 수밖에 없는 홍콩 시민들에게 확신을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는 거세게 반발했다. 류 샤오밍 영국 주재 중국대사는 투겐다트 위원장의 발언 관련 기자 설명회를 통해 “영국 정치인들이 여전히 식민주의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정부도 영국 외교부에 홍콩 시위에 대한 간섭을 중단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영국 정부는 홍콩 시위에 대한 중국 정부의 무력 진압에 대해선 지속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다만 BNO 소지자들의 영국 시민권 요구에 대해선 공식 입장 표명을 삼가고 있다. FT와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홍콩 시위와 중국 정부와의 경제협력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고 전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