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일명 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의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아시아 금융허브’로서 홍콩의 지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홍콩 경찰의 시위대 강경 진압으로 양측의 충돌이 본격화한 지난 7월 이후 자본이 빠져나가고 주가는 크게 떨어졌다. 미국 달러에 연동돼 있는 홍콩달러의 가치도 위협받고 있다.

자본 이탈 가속

송환법 반대 시위 격화로 홍콩의 미래에 대한 불안심리가 확산하면서 홍콩에서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자금이 급속히 늘고 있다. 홍콩 내 개인과 중소기업의 해외 자금 이전을 돕는 국제 송금 전문기업 트랜스퍼와이즈에 따르면 7월 한 달간 홍콩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유입된 자금보다 2.11배가량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홍콩 금융시장에 100달러가 들어오는 동안 211달러가 유출됐다는 의미다. 8월 들어선 유출액이 유입된 자금보다 2.64배 많았다. 홍콩에서 이탈한 자금은 대부분 미국과 영국, 싱가포르, 호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은행 계좌로 옮겨간 것으로 파악됐다.

기존엔 중국 정부의 통제 강화로 재산권이 침해당할 것을 걱정한 일부 부유층이 개인 자산을 빼내가는 정도였지만 최근엔 홍콩 리스크 자체가 부각되면서 아예 홍콩을 대체할 투자처를 찾아 글로벌 자금이 이탈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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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도 휘청

올해 들어 회복세를 보이던 홍콩 증시는 시위가 격렬해진 7월 들어 가파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지난 3일 기준 홍콩 항셍지수는 6월 말 대비 10.56% 하락했다. 같은 기간 중국 상하이지수 하락폭(1.64%)은 물론 미국 다우지수(1.81%), 일본 닛케이지수(3.06%), 유로 스톡스50지수(1.52%), 한국 코스피지수(7.75%) 낙폭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홍콩증권거래소에 기업공개(IPO)를 신청하는 기업도 크게 줄었다. 올해 1분기까지만 해도 홍콩거래소의 IPO 건수는 37건, 금액으로는 26억달러(약 3조원)로 세계 2위 규모를 유지했다. 하지만 시위가 격화한 지난달엔 단 한 개 기업만이 IPO를 했다. 홍콩거래소는 지난해 125개 기업의 상장을 유치하며 365억달러를 끌어들여 미국 뉴욕거래소를 제치고 IPO 시장 1위를 차지했다.

증시가 침체하면서 대형 기업들이 홍콩증시 상장을 머뭇거리고 있다. 홍콩증시에 상장할 것으로 예상되던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는 정치적 불안 등을 이유로 홍콩을 후보지에서 제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달 홍콩증시에서 최대 150억달러를 조달할 예정이던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는 상장을 무기한 연기했다.

위협받는 홍콩달러 페그제

홍콩 경제의 안정성을 뒷받침해온 페그제도 위협받고 있다. 일각에서 중국군이 투입되면 페그제가 36년 만에 무너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페그제는 홍콩달러 가치를 미국 달러에 고정한 것이다. 홍콩은 1983년부터 미국 달러당 7.75~7.85홍콩달러 범위에서 환율을 유지하고 있다. 페그제 상단과 하단이 뚫릴 움직임을 보이면 중앙은행격인 홍콩금융관리국(HKMA)이 보유한 홍콩달러를 사고파는 방법으로 페그제를 지탱한다.

6월 말까지 달러당 7.81홍콩달러 수준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던 홍콩달러 가치는 7월 초부터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홍콩달러 환율은 이달 들어 달러당 7.84홍콩달러까지 치솟으며 페그제 상단을 위협하고 있다. 시위 지속과 중국군 투입 여부가 페그제의 존속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중국군이 투입되면 미국이 홍콩에 대한 특별 지위를 철회할 것이며, 이는 페그제와 홍콩 경제를 붕괴시키는 기폭제가 될 것이란 예측이다. 미국 정부는 중국군 투입 때 이를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미 상원은 홍콩에 대한 특별 대우를 매년 재평가하도록 하는 법안을 6월 발의했다.

전문가들은 페그제가 붕괴하면 홍콩에서 자금 이탈이 가속화하고 실물경제도 침체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며 홍콩이 국제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할 때 주변국으로 위기가 번질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베이징=강동균 특파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