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경증 환자의 대학병원 진료비가 더 비싸진다. 사진은 세브란스병원 진료실 전경.  한경DB
내년부터 경증 환자의 대학병원 진료비가 더 비싸진다. 사진은 세브란스병원 진료실 전경. 한경DB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문재인 케어’ 정책을 발표한 지 2년 만에 대형병원 환자쏠림 보완책을 내놨다. 지금까지는 환자가 마음대로 대형 대학병원을 선택했지만 내년부터는 의사가 인근 대학병원을 골라 환자를 보내도록 하는 게 골자다. 하지만 이 역할을 맡는 동네 병·의원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방안은 후순위로 밀려 의료 환경이 좋은 수도권에 비해 지방 환자들이 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학병원 종이의뢰서 단계적 폐지

복지부가 4일 발표한 의료전달체계 개선 단기대책의 핵심은 환자 마음대로 대학병원을 선택하던 구조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지금은 환자가 동네의원을 찾아 진료의뢰서만 받으면 대학병원을 마음대로 골라 진료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대학병원 진료가 불필요한 경증 환자까지 대학병원으로 몰리는 등 부작용이 컸다.

복지부는 42개 대형 대학병원의 수익구조를 바꾸기로 했다. 대학병원이 증상이 심하지 않은 환자를 진료하면 건강보험공단에서 주는 의료수가를 깎고 증상이 심한 환자를 진료하면 돈을 더 줘 자연히 중증환자를 많이 보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복지부가 증상이 심하지 않은 100개 질환으로 분류한 것은 위장염, 결막염, 무좀, 합병증을 동반하지 않은 당뇨병, 만성 비염, 대상포진, 치핵(치질) 등이다. 이를 대형 대학병원 평가에도 반영할 계획이다. 대학병원 진료를 받다 좋아진 환자를 동네 병·의원으로 보내면 점수를 더 주고 이렇게 동네 병·의원으로 간 환자가 증상이 심해져 대학병원으로 오면 빨리 진료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동네 병·의원에서 대학병원으로 가는 절차도 좀 더 까다로워진다. 의사가 환자 상태를 보고 추가 치료가 필요할 때만 대학병원으로 의뢰하고 이렇게 의뢰한 환자는 다른 환자보다 먼저 진료하도록 바꾼다. 수도권 대형 대학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지방 병·의원이 환자를 같은 지역 대학병원으로 보내면 인센티브를 줄 계획이다. 노홍인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상급종합병원이 중증환자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동네 병·의원 의사가 상급종합병원에서 진료받을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할 때만 적절한 의료기관으로 직접 진료를 연계해 주는 체계로 전환할 것”이라고 했다.
“동네 병·의원 역량 키워야” 지적도

정부가 의료전달체계 개선 대책을 발표했지만 의료계에서는 환자쏠림을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정호 충북의대 교수(내과)는 “경증과 중증 중간 단계 환자가 가야 할 중소병원, 경증 환자가 갈 동네의원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 대책이 먼저 나와야 하는데 이런 내용은 부족하다”며 “현재 상황에서 상급종합병원 진료만 제한하면 다른 풍선효과가 생기거나 국민 불만 때문에 좌초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는 “일본은 동네의원의 경우 연간 3억원 이상 매출부터 과세하는 제도를 둬 적게 벌고 적게 투자하는 작은 의원이 골목 깊숙이까지 분포하도록 유도해왔다”며 “환자 집 앞에 있는 동네의원 기능을 살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도 대형 대학병원은 동네병원의 진료 의뢰 없이 건강검진센터, 응급실, 가정의학과 등을 통해 외래 환자를 볼 수 있다. 진료의뢰시스템을 강화하면 응급실 등으로 환자가 쏠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금도 증상이 심하지 않거나 비응급 환자가 응급실을 가면 응급의료관리료를 전액 환자가 내도록 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런 환자는 응급실 후속진료나 후속입원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지방 환자의 수도권 대학병원 이용을 어렵게 해 지방 환자들의 진료권만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의료계 관계자는 “상급종합병원 절반이 수도권에 분포하고 있는 데다 의료 인력 수준 차이도 커 일부 지방에는 간단한 암 수술조차 제대로 못하는 상급종합병원도 있다”며 “지방 환자를 지역 상급종합병원으로 유도할 때 인센티브를 주면 오히려 환자가 병원을 떠도는 일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