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한국, IASB 위원국 탈락…'회계 외교' 실패
마켓인사이트 9월 4일 오후 4시3분

한국이 국제회계기준(IFRS)을 정하는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 위원국 지위를 잃게 됐다. 2012년 민관 합동 노력으로 IASB 위원직을 따냈으나 자리를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국제회계기준 제·개정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전달할 핵심 통로가 막힐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내년 하반기 위원국 지위 잃을 듯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IASB 위원을 선정하는 IFRS재단 이사회는 최근 한국 정부가 추천한 IASB 위원 후보인 A교수에게 탈락을 통지했다. 현 IASB 한국 대표인 서정우 위원 임기는 내년 6월 끝난다. 예상치 못한 탈락에 정부는 IFRS재단이 있는 영국 런던에 관계자들을 급파했지만 결과를 되돌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IASB는 위원장을 포함해 14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IASB 위원국이 되면 국제회계기준 제·개정 과정에서 자국 기업의 이해를 반영할 수 있어 주요 국가들이 치열하게 자리 확보 경쟁을 하고 있다. 회계업계 고위 관계자는 “IASB가 ‘투자기관 또는 기업 관계자’를 뽑겠다는 자격 요건을 공지했음에도 정부가 요건에 맞지 않는 인사를 추천한 게 패착”이라고 지적했다. “투명하지 못한 밀실 인사와 안이한 대처로 IASB 위원 자리를 내놓게 됐다”는 설명이다.

올해 초 IASB는 임기 만료를 앞둔 서 위원의 후임을 공개 모집하면서 ‘투자자 또는 기업 관계자(재무제표 작성자)’라는 자격 요건을 내걸었다. 한국이 단독 후보로 내세운 A교수는 투자자나 기업인이 아니어서 이 요건에 맞지 않았다. 이번 IASB 위원 후보 추천에는 IFRS 기구에 진출해 있는 한국 측 위원들과 금융위원회, 한국회계기준원 등이 관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IASB 위원 후보로 거론된 전문가들은 10여 명이었다. 이 중 국제 업무에 능숙한 2명이 후보로 압축됐다. 후보군에는 A교수뿐 아니라 삼성생명 소속으로 국제보험회계기준(IFRS17) 작업을 위해 국제기구 활동을 한 B씨가 포함됐다. 그러나 최종 후보로 A교수만 추천됐다. 지난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으로 삼성 인사를 추천하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마켓인사이트] 한국, IASB 위원국 탈락…'회계 외교' 실패
IASB 재진출 장담 어려워

국제회계기준 변경은 기업 경영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보험 부채를 원가가 아니라 시가로 평가하는 IFRS17 변경에 따라 국내 보험업계에 수천억원대의 자본 확충이 필요해 재무건전성이 낮은 보험사들은 무더기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IFRS를 도입한 세계 각국이 IASB 위원국이 되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펼치는 이유다. 정부는 IASB 위원국 진출을 다시 시도한다는 계획이지만 장담하기 어렵다.

IASB는 지역, 성별, 직군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 위원회를 구성한다. 유럽과 미국이 다수석이다. 아시아권에선 IFRS를 채택하지 않은 중국, 일본도 위원직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은 해외에 진출한 자국 기업을 위해 IASB에 대규모 기부금을 내고 있다. 지난해 기부금은 중국 343만달러, 일본 269만달러로 유럽연합(EU·572만달러) 다음으로 많다. 한국이 낸 기부금은 70만달러에 그친다. 이번에 뺏긴 한국 자리는 유럽에서 추가로 가져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위 관계자는 “IFRS재단 이사회 측과 관련 사안을 놓고 지속적으로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IFRS재단은 연말께 IASB 위원 선임 결과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국제회계기준위원회

International Accounting Standards Board. 국제적으로 통일된 국제회계기준(IFRS)을 제·개정할 목적으로 세계 각국이 협력해 영국 런던에 설립한 IFRS 재단 산하 기구.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