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경제를 ‘트리플 마이너스(금리·경제성장률·물가 마이너스)의 공포’로 몰아넣은 건 미·중 무역전쟁, 홍콩 시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3대 악재였다. 미·중 협상이 파국으로 끝나고, 아시아·유럽 금융허브(홍콩과 런던)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는 글로벌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공포를 부채질했다. 이 여파로 안전자산 쏠림현상이 가속화되면서 우량 국채를 중심으로 마이너스 금리가 확산됐다. 이 같은 공포의 바탕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넘게 지속된 호황이 막을 내릴 것이란 우려가 깔려 있다.

일단 3대 악재는 5일 다소 진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미국과 중국은 다음달 초 미국 워싱턴DC에서 고위급 무역협상을 하기로 했다. 앞서 이달 중순엔 실무협상이 열린다. 꽉 막혔던 협상 자체가 재개되는 것이 호재로 인식됐다. 홍콩 시위는 전날 캐리 람 행정장관이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일명 송환법) 공식 철회를 발표하면서 한고비를 넘겼다. 영국에선 보리스 존슨 총리가 추진해온 ‘노딜 브렉시트(합의 없는 유럽연합 탈퇴)’ 방안이 하원에서 일단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불안감이 사라진 건 아니다. 미·중 무역전쟁은 양측의 이견이 워낙 첨예해 협상 타결까지는 갈 길이 멀다. 홍콩 시위도 시위대가 행정장관 직선제, 시위 강경진압 전면 조사 등을 요구하면서 새로운 고비를 맞았다. 영국은 존슨 총리의 리더십이 흔들리고 있다. 세계 경제를 짓누르는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더 큰 불안은 글로벌 장기호황이 끝물을 맞고 있다는 우려다. 이미 유럽에선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유럽 경제의 버팀목인 독일과 영국이 올 2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독일은 10년 만의, 영국은 6년여 만의 마이너스 성장이다. 한국도 1분기 기준으론 16년 만에 성장률이 뒷걸음질쳤다. 일본은 만성적인 저성장을 겪고 있다.

그동안 세계 경제 성장을 주도해온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전쟁 여파로 올 2분기 27년 만에 최저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나마 미국이 탄탄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마냥 안심하긴 어렵다. 지난달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10년 만에 경기수축을 의미하는 50선 밑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 중앙은행(Fed)이 너무 빨리 금리를 올리고 양적긴축(QT)을 했다”며 공격적 금리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Fed가 올 상반기까지 기준금리 인상과 금융위기 이후 경기부양 차원에서 풀린 유동성 회수(리와인딩) 기조를 이어가면서 경기에 부담을 줬다는 지적이다.

실제 경기침체가 닥치면 Fed를 비롯한 세계 중앙은행이 얼마나 신속하게 기준금리 인하와 양적완화(QE·돈풀기) 정책을 펴느냐가 관건이다. 문제는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가 너무 낮거나 심지어 마이너스인 경우도 있어 경기침체에 대응할 ‘실탄(대응여력)’이 부족할 수 있다는 점이다. Fed도 마찬가지다.

주요국 경제가 만성적 수요 부족으로 ‘구조적 장기침체’에 빠졌다는 진단도 있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구조적 장기침체 상황에선 통화정책이 힘을 발휘할 수 없으며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