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평평하다"…평면은 인류문명의 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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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면의 역사
B.W. 힉맨 지음 / 박우정 옮김
소소의 책 / 324쪽 / 2만3000원
B.W. 힉맨 지음 / 박우정 옮김
소소의 책 / 324쪽 / 2만3000원
“평면(flatness)은 인류세의 근간이다.” 역사학자이자 지리학자인 B W 힉맨 호주국립대 역사학과 교수는 이렇게 단언한다. 인류세란 네덜란드의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크뤼천이 제안한 새로운 지질시대 개념으로, 인류의 자연환경 파괴로 지구환경 체계가 급격히 변화하게 된 20세기 이후를 가리킨다. 도로, 철도, 골목길, 운동장, 스크린, 종이, 비행기 활주로에 이르기까지 인류세를 야기한 인류문명의 급격한 발달은 평면, 즉 평평한 공간의 급증에 기초하고 있다는 얘기다.
아닌 게 아니라 현대의 일상은 대부분 평면에서 이뤄진다. 평평한 침대나 방에서 잠을 자고, 집을 나서면 평평한 도로를 걷거나 달리며 이동한다. 높이 솟은 빌딩의 사무공간도 각 층의 평면이다. 평면의 모니터로 일을 하고 정보를 주고받는다.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것부터 TV, 스크린, 책, 그림, 무대, 각종 경기장 등에 이르기까지 평면 없이는 잠시도 살 수 없다. ‘스몸비(스마트폰+좀비)족’들이 길을 걸으면서 휴대폰을 보는 건 길이 평평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데도 평평함에 대한 인식이나 평가는 야박하고 부정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막심 고리키는 러시아 소작농들의 정서를 표현하면서 “초가집과 오두막들이 들어선 작은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끝없이 펼쳐진 평평한 고장은 사람들을 황폐하게 만들고 희망을 모조리 앗아가는 해로운 특성이 있다”고 했다. 19세기 중반의 존 러스킨은 “네덜란드나 링컨셔, 롬바르디아처럼 풍경이 완전히 평평하고 모든 세세한 부분까지 평평함을 고집하는 곳은 내게 감옥같이 보인다”고 혹평했다.
힉맨 교수가 쓴 <평면의 역사-평평한 세계의 모든 것>은 단조로움, 단일성, 부재, 결핍, 무미건조, 무료함 등의 이미지로 표상돼온 평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탐색이다. 저자에 따르면 평면은 매끄럽고 굴곡이 없으며, 수평과 예측성을 암시한다. 따라서 평면은 실용성과 효율을 높이고 현대문명의 편의를 증진시키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저자는 평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어떻게 달라져왔고, 어떻게 평면을 창조해왔는지 다각도로 검토한다.
이를 위해 평면의 언어적 개념부터 지구는 평평하다는 고대인의 생각, 풍경에 대한 미학적 가치, 자연 그대로의 평평함과 인간이 만든 평평함, 스포츠와 예술에 재현된 평면성 등에 이르기까지 철학, 종교, 역사, 예술, 과학, 공학 등을 폭넓게 넘나들며 평평함의 세계를 펼쳐놓는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생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의 오랜 믿음이었다. 고대와 중세 초기 인도에서 편찬된 산스크리트어 문헌들은 지구를 달걀 모양의 우주 중심에 있는 ‘평평한 원판’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아프리카 신화들은 지구가 ‘깔개처럼 퍼지고 있다’고 했고, 성서의 시편에는 야훼가 ‘땅을 물 위에 폈다’고 했다. 조선 후기 필사본 고지도첩인 ‘천하제국도(天下諸國圖)’에는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묘사하면서 지평선은 원으로 그렸다.
지구에는 처음부터 평평한 땅들이 있다. 몰디브나 투발루, 호주처럼 낮고 평평한 땅부터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호처럼 높고 평평한 땅, 미국의 그레이트플레인스처럼 거대한 평원까지. 그러나 이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건 인간이 만들어낸 평면들이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고지의 풍경을 미학적으로 예찬하면서도 실제로는 지표면에 평지를 만들기 위해 애를 써왔다. 수레는 바퀴가 잘 굴러가도록 평평하고 매끄러운 표면을 필요로 했고, 건축물 또한 평지에 세워졌다. 산업혁명 이후 토목공사와 기계화는 산과 비탈을 깎고 구릉을 메워 평지를 만들었다. 세계적으로 1년에 370억t, 연간 1인당 6t의 흙과 돌이 옮겨진다고 한다. 새로운 경작지를 확보하기 위한 열대우림과 삼림의 파괴도 급증했다. 2010년 현재 세계의 도로는 5000만㎞가 넘고, 2050년까지 2500만㎞가 더 건설될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대략적으로 인간은 세계를 높이기보다 평평하게 만드는 일을 더 해왔지만 그런 평탄화 작업이 칭찬받을 만한 무언가로 여겨지는 경우는 드문 반면 높은 건축물에는 지위를 부여하고 긍지를 불어넣는다”고 꼬집는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부터 현대의 초고층빌딩까지 늘 그랬다.
평평함을 더해온 세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종교적인 예언들은 지구가 평평한 종말을 맞게 되리라고 예측한다. 저자는 지구 온난화의 직접적인 결과가 이런 최종적인 평평함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해수면이 1~2m만 상승해도 뉴욕부터 멜버른까지 많은 대도시가 심각하게 파괴될 수 있다. 핵전쟁도 최종적 평평함의 유발자다. 원래 그라운드제로는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건축물이 다 무너지고 평면화된 폭발 지점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평면성은 편리함과 효율을 확장시키는 한편 자연을 훼손하고 지구를 위협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저자가 “평평함은 열망의 대상이면서 두려운 무언가다”라고 결론 짓는 이유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아닌 게 아니라 현대의 일상은 대부분 평면에서 이뤄진다. 평평한 침대나 방에서 잠을 자고, 집을 나서면 평평한 도로를 걷거나 달리며 이동한다. 높이 솟은 빌딩의 사무공간도 각 층의 평면이다. 평면의 모니터로 일을 하고 정보를 주고받는다.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 것부터 TV, 스크린, 책, 그림, 무대, 각종 경기장 등에 이르기까지 평면 없이는 잠시도 살 수 없다. ‘스몸비(스마트폰+좀비)족’들이 길을 걸으면서 휴대폰을 보는 건 길이 평평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런데도 평평함에 대한 인식이나 평가는 야박하고 부정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막심 고리키는 러시아 소작농들의 정서를 표현하면서 “초가집과 오두막들이 들어선 작은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끝없이 펼쳐진 평평한 고장은 사람들을 황폐하게 만들고 희망을 모조리 앗아가는 해로운 특성이 있다”고 했다. 19세기 중반의 존 러스킨은 “네덜란드나 링컨셔, 롬바르디아처럼 풍경이 완전히 평평하고 모든 세세한 부분까지 평평함을 고집하는 곳은 내게 감옥같이 보인다”고 혹평했다.
힉맨 교수가 쓴 <평면의 역사-평평한 세계의 모든 것>은 단조로움, 단일성, 부재, 결핍, 무미건조, 무료함 등의 이미지로 표상돼온 평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탐색이다. 저자에 따르면 평면은 매끄럽고 굴곡이 없으며, 수평과 예측성을 암시한다. 따라서 평면은 실용성과 효율을 높이고 현대문명의 편의를 증진시키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저자는 평면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어떻게 달라져왔고, 어떻게 평면을 창조해왔는지 다각도로 검토한다.
이를 위해 평면의 언어적 개념부터 지구는 평평하다는 고대인의 생각, 풍경에 대한 미학적 가치, 자연 그대로의 평평함과 인간이 만든 평평함, 스포츠와 예술에 재현된 평면성 등에 이르기까지 철학, 종교, 역사, 예술, 과학, 공학 등을 폭넓게 넘나들며 평평함의 세계를 펼쳐놓는다.
지구가 평평하다는 생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부터의 오랜 믿음이었다. 고대와 중세 초기 인도에서 편찬된 산스크리트어 문헌들은 지구를 달걀 모양의 우주 중심에 있는 ‘평평한 원판’이라고 설명했다. 중앙아프리카 신화들은 지구가 ‘깔개처럼 퍼지고 있다’고 했고, 성서의 시편에는 야훼가 ‘땅을 물 위에 폈다’고 했다. 조선 후기 필사본 고지도첩인 ‘천하제국도(天下諸國圖)’에는 중국을 중심으로 세계를 묘사하면서 지평선은 원으로 그렸다.
지구에는 처음부터 평평한 땅들이 있다. 몰디브나 투발루, 호주처럼 낮고 평평한 땅부터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호처럼 높고 평평한 땅, 미국의 그레이트플레인스처럼 거대한 평원까지. 그러나 이보다 더 주목해야 하는 건 인간이 만들어낸 평면들이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고지의 풍경을 미학적으로 예찬하면서도 실제로는 지표면에 평지를 만들기 위해 애를 써왔다. 수레는 바퀴가 잘 굴러가도록 평평하고 매끄러운 표면을 필요로 했고, 건축물 또한 평지에 세워졌다. 산업혁명 이후 토목공사와 기계화는 산과 비탈을 깎고 구릉을 메워 평지를 만들었다. 세계적으로 1년에 370억t, 연간 1인당 6t의 흙과 돌이 옮겨진다고 한다. 새로운 경작지를 확보하기 위한 열대우림과 삼림의 파괴도 급증했다. 2010년 현재 세계의 도로는 5000만㎞가 넘고, 2050년까지 2500만㎞가 더 건설될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대략적으로 인간은 세계를 높이기보다 평평하게 만드는 일을 더 해왔지만 그런 평탄화 작업이 칭찬받을 만한 무언가로 여겨지는 경우는 드문 반면 높은 건축물에는 지위를 부여하고 긍지를 불어넣는다”고 꼬집는다.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부터 현대의 초고층빌딩까지 늘 그랬다.
평평함을 더해온 세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종교적인 예언들은 지구가 평평한 종말을 맞게 되리라고 예측한다. 저자는 지구 온난화의 직접적인 결과가 이런 최종적인 평평함을 낳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해수면이 1~2m만 상승해도 뉴욕부터 멜버른까지 많은 대도시가 심각하게 파괴될 수 있다. 핵전쟁도 최종적 평평함의 유발자다. 원래 그라운드제로는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건축물이 다 무너지고 평면화된 폭발 지점을 가리키는 용어였다. 평면성은 편리함과 효율을 확장시키는 한편 자연을 훼손하고 지구를 위협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저자가 “평평함은 열망의 대상이면서 두려운 무언가다”라고 결론 짓는 이유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