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공포와 시련 속에서 한 줄기 빛이 된 음악
‘음악이 그에게 이렇게 느끼게 하는데 그가 어찌 한 마리 비천한 짐승일 수 있단 말인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기서 ‘그’는 어느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버린 그레고르 잠자다. ‘음악’은 그의 누이동생이 슬픈 눈으로 악보의 행을 좇으며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다.

영국의 저명한 음악평론가이자 클래식 음악 저술가인 스티븐 존슨이 쓴 <쇼스타코비치는 어떻게 내 정신을 바꾸었는가>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이 구절을 알고 있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가족의 무관심 속에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을 찾지 못하던 그레고르에게 문득 들려온 바이올린 소리는 한 줄기 빛으로 다가간다. 저자는 카프카를 좋아했다는 쇼스타코비치도 스탈린 정권의 공포 속에서 예술적 진정성은 고사하고 인간의 근본적 가치에 대한 회의에 시달릴 때마다 그의 음악이 한 줄기 빛이 됐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이 책은 누이의 바이올린 연주가 그레고르에게 그랬듯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느끼며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위안을 받은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들’ 중에는 조울증 진단을 세 차례나 받고도 살아남는 과정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생명줄로 삼았던 저자가 포함돼 있다. 스탈린 정권의 무자비한 비난과 냉대 속에서 완성된 교향곡 4번의 혼란스러운 음악은 10대 중반 극심한 정신적 고립에 빠져 있던 저자에게 평소 접근할 수 없던 깊은 감정을 향한 문을 열어줬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 봉쇄돼 극한 공포에 떨고 있던 레닌그라드 사람들은 그 공포를 그대로 비추는 ‘레닌그라드’ 교향곡에 전율을 느끼며 열광했다.

저자는 정신이 무너질 만큼 고통이 지독할 때, 그 지독한 감정을 선명하고 정확하게 반영한 음악을 들은 사람들은 카프카와 비슷한 질문을 던진다고 말한다. “음악이 우리에게, 그러니까, ‘이렇게’ 느끼게 하는데 어찌 우리가 비루하고 한심한 존재일 수 있단 말인가?” (김재성 옮김, 220쪽, 1만4000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