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LG·SK 소송의 위험한 훈수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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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유출 소송, 이중잣대 안돼
정부 개입 말고 기업에 맡겨야
일본 이기려면 지재권 존중을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정부 개입 말고 기업에 맡겨야
일본 이기려면 지재권 존중을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이 양수기 발명은 저의 재산입니다. 뼈를 깎는 노력과 많은 비용이 들어갔습니다. 아무 대가 없이 모든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것은 견딜 수 없으니 삼가 부탁드립니다.” 이탈리아 과학자 갈릴레이가 왕에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에서 수입하는 소재·부품도 파고들어 가면 지식재산권 문제로 귀결된다. 일본 기업이 핵심기술과 노하우를 특허로, 영업비밀로 확보한 독점적 시장지배력이 우리의 대응을 어렵게 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경쟁하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소송전에 들어갔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핵심인력을 빼가면서 기술을 유출했다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SK이노베이션도 LG화학과 LG전자를 ITC와 연방법원에 제소한다고 발표했다. 지재권이 무기인 시대에 이런 소송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시시비비는 법원에서 가리면 될 일이다. 어쩌면 두 기업이 소송 중간에 합의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걱정되는 것은 LG·SK 소송전이 아니라 이를 보는 일부의 시각들이다. 지재권 소송은 로펌이나 좋아할 ‘낭비’란 주장부터 그렇다. 기업이 소송을 택하는 것은 소송을 하지 않을 경우와 득실을 비교하고, 소송 시 위험과 비용 등을 따져서 나온 합리적 의사결정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합의가 안 되는 상황에서 소송을 낭비로 몰아가면 지재권을 보호할 수단이 제한돼 지재권 자체가 무력화되고 말 것이다.
국내 기업끼리 싸울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도 있다. 우리 기업 간에는 지재권을 침해해도 문제 삼지 말라면 한국에서는 어떤 기업도 먼저 연구개발 투자에 나서려 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기업 간 지재권 소송을 국가 대항전으로 바라보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다.
LG·SK 소송전이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는 관점은 그럴듯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 배터리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만 해도 합당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 어느 한 회사가 소송에 지면 미국 배터리 시장에서 판로가 막힐 것이란 지적도 그렇다. 그럴 위험이 가시화되면 불리한 쪽에서 합의를 모색하는 게 기업들의 세계다. 국내 기업끼리는 특허소송 시 국익을 따지라는 식으로 가면 각국 경쟁당국부터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앞에서 국내 기업들이 손을 잡아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마찬가지다. 손을 잡아도 지재권을 살리는 쪽이어야지, 죽이는 쪽이면 일본을 따라잡을 수 없다. 일본의 경험과 노하우, ‘모노즈쿠리(최고의 물건 만들기)’가 그냥 나왔겠나. 소재·부품 국산화를 한다지만 지재권을 보호하지 않으면 한우물 파기와 암묵지, 장수기술을 기대하기 어렵다. 일본을 이기려면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지재권에 사활을 걸어야 할 판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정부와 청와대가 중재에 나서라는 주장이다. 이미 중재를 시도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부는 2012년 삼성·LG 디스플레이 소송 중재를 떠올리는 모양이지만 그때의 개입이 한국 디스플레이산업에 득이 됐는지, 중국의 추격에 대응하는 데 효과가 있었는지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개입하기 시작하면 지재권은 무슨 의미가 있고 특허법원은 왜 있는지도 의문이다. 합의를 해도 기업 자율로 하고 그 결과는 향후 유사 소송에 인용 기준이 돼야지, 그러지 않으면 해외기업이 지재권을 침해해도 치열하게 싸우기 어렵다. 만약 해외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하는데 상대국 정부가 우리 정부에 중재를 압박해 오면 어찌할 것인가.
지재권 보호 정도는 민간 연구개발 투자를 좌우한다. 지재권 소송이 존중받아야 기술거래도, 인수합병(M&A)도 살아난다. 공유·협력의 가치도 보호가 뒷받침될 때 높아진다. 반대로 지재권이 흔들리면 혁신성장은 공염불이 되고 만다.
ahs@hankyung.com
우리나라가 일본에서 수입하는 소재·부품도 파고들어 가면 지식재산권 문제로 귀결된다. 일본 기업이 핵심기술과 노하우를 특허로, 영업비밀로 확보한 독점적 시장지배력이 우리의 대응을 어렵게 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경쟁하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소송전에 들어갔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핵심인력을 빼가면서 기술을 유출했다며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SK이노베이션도 LG화학과 LG전자를 ITC와 연방법원에 제소한다고 발표했다. 지재권이 무기인 시대에 이런 소송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시시비비는 법원에서 가리면 될 일이다. 어쩌면 두 기업이 소송 중간에 합의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걱정되는 것은 LG·SK 소송전이 아니라 이를 보는 일부의 시각들이다. 지재권 소송은 로펌이나 좋아할 ‘낭비’란 주장부터 그렇다. 기업이 소송을 택하는 것은 소송을 하지 않을 경우와 득실을 비교하고, 소송 시 위험과 비용 등을 따져서 나온 합리적 의사결정으로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합의가 안 되는 상황에서 소송을 낭비로 몰아가면 지재권을 보호할 수단이 제한돼 지재권 자체가 무력화되고 말 것이다.
국내 기업끼리 싸울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도 있다. 우리 기업 간에는 지재권을 침해해도 문제 삼지 말라면 한국에서는 어떤 기업도 먼저 연구개발 투자에 나서려 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기업 간 지재권 소송을 국가 대항전으로 바라보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다.
LG·SK 소송전이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는 관점은 그럴듯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 배터리산업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만 해도 합당한 근거를 찾기 어렵다. 어느 한 회사가 소송에 지면 미국 배터리 시장에서 판로가 막힐 것이란 지적도 그렇다. 그럴 위험이 가시화되면 불리한 쪽에서 합의를 모색하는 게 기업들의 세계다. 국내 기업끼리는 특허소송 시 국익을 따지라는 식으로 가면 각국 경쟁당국부터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앞에서 국내 기업들이 손을 잡아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마찬가지다. 손을 잡아도 지재권을 살리는 쪽이어야지, 죽이는 쪽이면 일본을 따라잡을 수 없다. 일본의 경험과 노하우, ‘모노즈쿠리(최고의 물건 만들기)’가 그냥 나왔겠나. 소재·부품 국산화를 한다지만 지재권을 보호하지 않으면 한우물 파기와 암묵지, 장수기술을 기대하기 어렵다. 일본을 이기려면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지재권에 사활을 걸어야 할 판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정부와 청와대가 중재에 나서라는 주장이다. 이미 중재를 시도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부는 2012년 삼성·LG 디스플레이 소송 중재를 떠올리는 모양이지만 그때의 개입이 한국 디스플레이산업에 득이 됐는지, 중국의 추격에 대응하는 데 효과가 있었는지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정부가 개입하기 시작하면 지재권은 무슨 의미가 있고 특허법원은 왜 있는지도 의문이다. 합의를 해도 기업 자율로 하고 그 결과는 향후 유사 소송에 인용 기준이 돼야지, 그러지 않으면 해외기업이 지재권을 침해해도 치열하게 싸우기 어렵다. 만약 해외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하는데 상대국 정부가 우리 정부에 중재를 압박해 오면 어찌할 것인가.
지재권 보호 정도는 민간 연구개발 투자를 좌우한다. 지재권 소송이 존중받아야 기술거래도, 인수합병(M&A)도 살아난다. 공유·협력의 가치도 보호가 뒷받침될 때 높아진다. 반대로 지재권이 흔들리면 혁신성장은 공염불이 되고 만다.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