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 전 국회의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8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하는 순간 가파른 레임덕이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의장은 이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문재인 대통령님께 드리는 고언(苦言)’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조 후보자의 임명은 철회해야 한다. 그 길 밖에 다른 길은 없다”며 이 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의 경남고 5년 선배인 김 전 의장은 “국정에 참여했던 경험에 비춰 조기 레임덕 만큼은 피해야 한다”며 “나라와 국민, 대통령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까닭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검찰 개혁 때문에 그를 임명하겠다는데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내가 생각하는 검찰 개혁과 대통령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대통령의 검찰 개혁도 이제 조씨는 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검찰에 약점 잡힌 사람이 어떻게 검찰의 환부를 도려낼 수 있겠나”라고 지적했다. 또 “더구나 자칭 만신창이가 된 사람으로 개혁 운운은 개혁을 않겠다는 뜻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며 “정권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지게 된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대통령은 3년 후 야인으로 돌아갈 사람”이라며 “3년 후를 생각해야 한다. 찢기고 갈리고 나뉘어지고…. 이런 모습의 나라를 물려주는 것은 대통령께서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을 위해 헌신 봉사하고 미련 없이 떠날 때 뒷모습이 아름답고, 훗날 존경 받을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조국씨가 스스로 물러나기에는 너무 늦었다”며 “대통령께서 용단을 내려 임명 철회를 한다면 윈윈 게임은 아니라도 최악의 상황은 피하는 것이다. 대통령께서 그런 결정을 함으로써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에게 다시 한번 신뢰감을 주고, 중간지대에 있는 국민들의 떠나는 마음을 돌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다음은 김 전 의장의 ‘문재인 대통령님께 드리는 고언’ 전문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립니다. 조국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 임명은 철회해야 합니다. 그 길밖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임명을 강행한다면 그로 인해 얻는 효과가 뭔가요. 진정 무엇을 얻으려는 건가요. 임명을 강행하는 순간 가파른 레임덕이 진행될 것입니다. 망설이던 내가 펜을 든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국정에 참여했던 경험에 비추어 조기 레임덕만큼은 피해야 합니다. 나라와 국민, 대통령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까닭입니다.

정치를 좀 한 사람들, 특히 야당과 그 지지자들은 586 운동권의 일그러진 민낯을 드러낸 조씨의 임명 강행을 은연중 바라고 있을 것입니다. 이유는 굳이 들지 않아도 잘 알 것입니다.

오직 검찰 개혁 때문에 그를 임명하겠다는데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내가 생각하는 검찰 개혁과 대통령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대통령의 검찰 개혁도 이제 조씨는 해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검찰에 약점 잡힌 사람이 어떻게 검찰의 환부를 도려낼 수 있겠습니까. 개혁은 어렵습니다. 더구나 자칭 만신창이가 된 사람으로 개혁 운운은 개혁을 않겠다는 뜻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권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지게 됩니다.

촛불로 일어선 정부 아닙니까. 촛불 민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국민은 정직하고 도덕적으로 신뢰할 만한 (능력 있는) 사람이 나라를 관리하기를 원합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분은 임기제 관리자일 뿐입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와이셔츠 차림으로 커피잔을 들고 격의 없이 담소하던 그 모습을 아련히 잊지 않는 국민들이 아직도 많습니다.

국민을 위해 헌신 봉사하고 미련 없이 떠날 때 뒷모습이 아름답고, 훗날 존경 받을 것입니다. 더 이상 나라가 헝클어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모쪼록 잘 관리하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입니다. 외교안보는 비상 시국이고, 경제 상황은 너무나 안 좋습니다. 나라를 지켜야 할 가치관이 흔들리는 데도 여야는 진영논리에 갇혀 있습니다.

대통령은 3년 후 야인으로 돌아갈 사람입니다. 정치를 더 이상 못합니다. 3년 후를 생각해야 합니다. 찢기고 갈리고 나뉘어지고... 이런 모습의 나라를 물려주는 것은 대통령께서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 진단이 전적으로 옳다고는 못하겠지만, 나도 그 안에서 5년간 참모 생활을 해봤습니다. 사직서를 품 안에 넣고 다녔습니다. 대통령과 가까이 있는 사람은 알든 모르든 실정을 대통령에게 곧이곧대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게 청와대입니다. 그래서 청와대를 옮겨야 한다고 일찍부터 주장해 왔습니다. 지금 옮기지 못한다면 자주 국민과 접촉이라도 하십시오. 형식적인 초청행사나 시장 방문, 공장 순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다방면에서 두루 접촉하십시오. 비공개로 만나고 솔직히 의논하십시오. 야당과도 만나고 여당과도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십시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조국 임명을 감정싸움이나 기싸움으로 보고 "밀리면 끝이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어린애 같은 참모가 있다면 한심한 일입니다(옛날에도 눈과 귀를 어둡게 하는 이런 자들이 있었습니다). 국민에게 이기려 한 정권은 죄다 실패했습니다. "국민이 내 마음을 모른다", "악의적 선전에 쏠렸다"는 등으로 밑바닥에 흐르는 분노와 허탈감을 외면한다면 정말 끝입니다. 국민에게 "회초리로 때려 달라, 이렇게까지 잘못된 줄 몰랐다, 내가 많이 부족했다, 남은 기간 앞으로 잘하겠다"고 진솔하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입니다.

국민이 때리는 회초리는 매섭고 아프지만 피하려 해선 안 됩니다. 더욱 고통스런 상황이 닥칩니다. 나라를 위한 결단, 그것이 모두가 다시 사는 길입니다. 5년 단임제 정권에서 레임덕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현행 헌법의 문제점 이지만 지금 이 문제로 인해 스스로 레임덕을 조기에 자초하지 않기를 거듭 바라마지 않습니다.

대통령께서 용단을 내려 임명 철회를 한다면 윈윈 게임은 아니라도 최악의 상황은 피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시간이 있으니 만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국씨가 스스로 물러나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대통령께서 그런 결정을 함으로써 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에게 다시 한번 신뢰감을 주고, 중간지대에 있는 국민들의 떠나는 마음을 돌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유는 앞서 말씀드렸기에 되풀이하지 않겠습니다. 국정의 혼란상이 불보듯 뻔한데 더 이상 침묵할 수가 없어 글을 썼다는 점을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대통령님의 건안을 기원합니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