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지나친 경기 낙관론…결과는 '디플레이션' 논쟁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04%로 떨어짐에 따라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이하 디플레)’ 국면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는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월별 지표는 3개월간 지속 여부로 경기를 판단하는 점을 감안하면 이른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마이너스 물가 상승률은 통계 작성 이래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에 디플레 논쟁 그 자체는 의미가 크다.

국내 경기 논쟁은 작년 4월부터 시작됐다. 당시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경기 침체 가능성을 본격 제기하자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시간을 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신중론으로 대응했다. 이때만 해도 국민은 반신반의 속에서도 정부의 낙관론을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한상춘의 국제경제읽기] 지나친 경기 낙관론…결과는 '디플레이션' 논쟁
경기 논쟁의 정점은 작년 10월이었다. 성장률이 둔화하고 코스피지수 2000선이 무너지자 경기 침체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소득주도성장에 수정을 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장하성 전 정책실장(현 주중대사)은 조만간 경기가 본격 회복될 것이라고 신경질적으로 반박했다. 경기 비관론자를 ‘가짜 세력’으로까지 몰아세웠다.

한국은행의 금리인상도 문제였다. 작년 11월 말에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제1선 목표인 물가가 너무 낮고 경기와 고용이 악화되는 여건에서도 ‘대내외 불균형 시정’이란 모호한 이유를 들어 금리를 전격 올렸다. 올해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국면으로 추락하자 한은은 지난 7월 금리를 슬그머니 내렸다.

지난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나온 뒤에도 2분기 이후 경기가 나아질 것이라는 낙관론을 폈다. 2분기 성장률이 ‘플러스’로 나오긴 했지만 재정이 인위적으로 끌어올린 성장률이었다. 일본의 수출통제가 시작된 3분기 이후에는 성장률이 재차 둔화하면서 장기침체를 예고하는 ‘W’자형 경기순환 국면을 예상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디플레가 무서운 점은 일본 경제의 사례에서 보듯이 장기화할 경우 ‘좀비’ 국면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좀비 국면은 정책당국이 어떤 신호를 보낸다 하더라도 국민이 전혀 반응하지 않는 ‘죽은 시체’와 같은 상황을 말한다. 좀비 국면엔 ‘5대 함정(정책 함정·유동성 함정·불확실성 함정·구조조정 함정·부채 함정)’이 뒤따른다.

한은은 여전히 우리 경제가 디플레 국면에 빠졌다고 단정하긴 이르다는 입장이다. 올 들어 0%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개월간 지속되는 상황에서 디플레 우려가 제기되자 디플레 취약지수를 들어 강하게 반박했다. 디플레 취약지수의 허구성 논쟁 속에 물가상승률은 마이너스로 추락했다.

통화정책의 시차는 9~12개월 내외로 추정된다. 재정정책과 달리 ‘선제성(preemptive)’이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경제지표가 괜찮게 나온다 하더라도 국민이 미래를 불확실하게 생각하거나 시장이 불안하면 금리를 내리는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를 중시한다.

한국 경기는 디플레 논쟁이 일 만큼 악화됐다. ‘지나친 낙관론의 오류’다. 정책목표에 부합하는 경제지표가 좋은 점만 들어 경기를 낙관적으로 보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일부 정책당국자와 진보학자가 어려울 때마다 거론하는 ‘국민’의 편에서 경기를 판단하고 경제정책을 추진했더라면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텍스트 마이닝(text mining) 기법’으로 우리 국민이 느끼는 경기를 파악해보면 1년 전부터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텍스트 마이닝 기법이란 국민이 경기가 좋아진다는 어조는 ‘+1’, 나빠진다는 어조는 ‘-1’로 빅데이터 지수를 산출해 체감경기를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경제정책을 추진하는 기법을 말한다.

지나친 낙관론의 무서운 점에 대해 저명한 경기 예측론자인 웨슬리 미첼은 “그릇된 낙관론이 위기에 봉착하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이 과정에서 태어난 그릇된 비관론이 문제가 된다”며 “새로 탄생한 비관론은 신생아가 아니라 거인의 위력을 발휘한다”고 경고했다. 경착륙, 중진국 함정, 제2 외환위기, 일본형 복합불황 등 각종 위기론이 그것이다.

밤낮없이 경기 살리기에 부심하는 경제 각료의 고충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경제정책은 ‘타이밍’이 생명이다. 실기(失機)하면 이후에 엄청난 정책비용을 치른다. ‘정치꾼(다음 선거와 자신의 자리만 생각)’보다 ‘정치가(다음 세대와 국민을 우선)’, ‘정책당국’보다 ‘국민’ 편에서 좀 더 솔직하게 경기를 보고 경제정책을 추진해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