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만에 해외 채권 발행에 나선 SK하이닉스가 희망 모집액의 11배가 넘는 투자 수요를 확보했다. 반도체업황 부진과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등에 따른 우려를 딛고 흥행에 성공했다.

1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가 5년 만기 해외 채권 3억달러(약 3500억원)어치를 발행하기 위해 전날 실시한 수요예측(사전 청약)에 해외 196개 기관투자가가 35억달러(약 4조1700억원)의 매수 주문을 냈다. 올해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발행한 외화 채권 중 가장 높은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다. SK하이닉스는 수요가 몰리자 채권 발행금액을 5억달러(약 5900억원)로 늘리기로 결정했다.

조달 비용도 기대 이상으로 절감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채권 발행금리는 5년 만기 미국 국채금리(연 1.532%)에 1.625%포인트를 더한 연 3.157%로 결정됐다. 희망금리보다 0.275%포인트 낮은 수준이다. 이 회사의 글로벌 신용등급은 무디스 기준으로는 10개 투자적격등급 중 아홉 번째로 높은 Baa2(부정적),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기준으로는 가장 낮은 투자적격등급인 BBB-(안정적)다.

한국 반도체산업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두터운 신뢰를 확인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SK하이닉스는 반도체 가격 하락, 미·중 무역분쟁 장기화 등으로 올 들어 실적이 크게 둔화됐다.

이 회사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2조4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0% 줄었다. 하반기 들어선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로 추가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잇따랐다. 그럼에도 매년 조(兆) 단위 이익을 내며 양호한 현금 창출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투자자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내년부터 업황이 바닥을 찍고 돌아설 것이란 전망이 하나둘씩 나오는 것도 투자 열기의 원인이 됐다는 분석이다. 5세대(5G) 이동통신 상용화 등으로 서버용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가 형성되고 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