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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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연휴에 근무 쉴 거면 알바 그만두래요.”

서울로 상경해 취업을 준비하는 A 씨(29)는 긴 고민 끝에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타지생활을 하며 생계비 충당을 위해 그간 주말에만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하지만 취업 준비 기간이 늘어나자 평일까지 근무 스케줄을 늘렸던 것이 화근이었다. 추석 연휴가 다가오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귀경할 것이냐, 아르바이트를 할 것이냐 두 가지 선택에 놓인 A 씨는 결국 고향에 내려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한편 대학생 B 씨(24)은 친구들과 함께 6개월 전부터 올 추석 연휴를 맞아 러시아행 비행기 표를 예약해 놨다. B 씨가 성인이 된 후 추석 설 등 명절 때 갔던 여행에 이번을 포함하면 벌써 5번째다. 유년시절 항상 가족들과 명절을 보냈다던 B 씨는 “학업과 업무 때문에 연휴기간이 아니면 개인적인 시간을 내기 어렵다”며 “같이 여행가는 사람들 다 같이 시간을 맞출 수 있는 게 사실상 명절뿐”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스스로 혼명족(혼자 명절을 보내는 사람)을 택하는 젊은 세대가 크게 늘고 있다. 잡코리아, 알바몬 설문조사에 따르면 5명 중 1명꼴로 올 추석을 혼자 보낼 것이라 밝혔다. 명절을 누구와 보내고 싶냐는 질문에는 28.8%가 혼자 지내겠다고 응답했다.

흥미로운 점은 혼명족의 증가와 더불어 혼명족의 양극화 현상도 기존에 비해 뚜렷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혼명족은 크게 두 부류다. 명절 연휴를 휴식의 기회로 삼아 여행이나 여가 생활을 통해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는 ‘여유형 혼명족’부터 아르바이트로 명절을 보내는 ‘생계형 혼명족’으로 나뉜다.

직장인 C 씨(26)는 대표적인 ‘여유형 혼명족’이다. 이번 추석에 고향에 가지 않기로 했다. 연휴 기간 동안 여행을 가거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 별 다른 이유는 없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 게임 등 취미를 하며 소소하게 연휴를 보낼 계획이다.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최근 업무가 너무 많아서 연휴 땐 집에서 푹 쉬고 싶다”며 “굳이 친하지도 않은 친척들이 모인 불편한 자리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여유형 혼명족’의 수는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가족 관계에 대한 인식 변화, 핵가족에서 성장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젊은 세대에게 명절은 하나의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11일 취업포털 인쿠르트는 아르바이트 O2O 플랫폼 알바콜과 함께 조사한 ‘2019 추석 스트레스’에 따르면 10명 중 9명이나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생계형 혼명족’ 역시 증가세다. 직장인과 아르바이트생 절반 가까이는 추석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출근을 할 것으로 보인다. 잡코리아가 1192명의 근로자(아르바이트생+직장인)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알바생의 64.7%, 직장인 45,0%가 올 추석 연휴에도 출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눈 여겨볼 점은 아르바이트생은 자발적으로 근무한다는 점이다. 아르바이트생 그룹에서는 44.6%의 인원이 ‘추가수당 등 돈을 벌기 위해 자발적으로 출근’한다는 답변하며 가장 많았다. 최근 궁핍해지는 젊은 세대의 호주머니 사정이 연휴에도 근무지로 이끄는 것이다. ‘여유형 혼명족’을 두고 일각에서는 버릇없는 젊은 세대라는 핀잔의 목소리에 ‘생계형 혼추족’은 억울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와 같이 ‘혼명족’의 이면에는 극심한 취업난과 경기 불황, 가족에 관한 가치관의 변화 등 사회 문제와 깊게 연관돼 있다.

강희경 충북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대가족 중심의 농업사회에서 핵가족 중심의 현대사회로 바뀌면서 명절 문화가 변하는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라며 “이러한 시대적 흐름이 향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사회구성원들이 현실적인 명절 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고민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배성수 한경닷컴 인턴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