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몸 노인·새터민·외국 노동자 "가족이 그리워요"

"명절이 싫어. 찾아올 가족도 없고, 세상에 나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 더 서글프기만 해…"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추석이 더 외로운 사람들
청주시 상당구에 사는 박모(74) 할머니는 추석인 13일 헛헛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남들에게 추석은 가족들이 오랜만에 모이는 반가운 명절이지만, 그에게는 외로움만 더 크게 느끼는 힘든 날이다.

자식이 있지만, 몇 년 전부터 연락이 끊긴 탓에 추석에 찾아올 사람이 없다.

평소 다니는 복지관이나 노인정도 명절에는 나오는 사람이 없어 좁은 방에서 TV를 친구 삼아 고독과 싸워야 한다.

그는 "평소에는 잘 모르다가도 명절만 되면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는 내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진다"며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허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말을 더는 잇지 못하는 그의 주름진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비쳤다.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추석이 더 외로운 사람들
대전에 사는 오모(82) 할머니도 추석을 혼자 보낸다.

자식이 없는 오 할머니는 7년 전 함께 살던 남편과도 사별했다.

인근에 남동생이 살지만, 조카들 눈치가 보여 명절에도 일부러 가지 않는다.

오 할머니는 "7남매인데 다 죽고 동생 하나 남았지만, 동생도 나이가 여든이 다 됐다"며 "명절이면 조카들이 모두 동생 집에 오는데 내가 밥 한 끼 얻어먹겠다고 거기에 어떻게 가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경로당에서 친구들과 함께 지내는 게 낙이지만, 명절 연휴는 그것마저 하지 못한다.

"추석에는 경로당에도 오는 사람이 없다"는 오 할머니는 '함께 할 가족이 없다'는 현실이 서럽기만 하다.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추석이 더 외로운 사람들
흥겨운 분위기로 들썩이는 추석이 더 외로운 이웃들이 적지 않다.

함경북도 출신인 새터민 김한오(가명·43)씨는 광주시에 정착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명절 때마다 고향에 두고 온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음이 무겁다.

김씨는 "명절이 다가오면 10년 동안 단 한 번도 뵙지 못한 아버지와 고향이 더 많이 생각난다"고 고향에 가지 못하는 심경을 토로했다.

가정을 꾸리고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김씨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가정이 없거나 탈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터민들의 명절은 외로움 그 자체다.

코리안드림을 기대하고 한국을 찾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도 추석은 야속하다.

경기도 시흥의 한 철강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인도네시아 국적의 헨드라 아산(33) 씨는 연휴에도 일한다.

흥겨운 분위기로 들썩거리는 추석이 그에게는 오히려 곤욕이다.

문을 열지 않는 식당이 많아 끼니를 챙기기 어려운 불편은 견딜만하지만, 고향에 두고 온 가족들을 생각할 때 드는 외로움은 이겨내기 힘들다.

그는 지난해 아내와 어린 두 아들을 고국에 두고 한국행을 택했다.

가족들에게 다달이 돈을 보낸다는 사실이 다행이지만, 명절처럼 긴 연휴를 맞게 되면 가족들 얼굴이 더 아른거린다.

그는 "공장이 연휴에도 가동해 고국에 다녀오기 어렵다"며 "아내, 아들과 화상 통화를 하며 얼굴을 보는 것으로 그리움을 달랜다"고 말했다.
"차라리 명절이 없었으면"…추석이 더 외로운 사람들
복지시설의 추석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도 파주의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는 이은우(86) 할아버지는 "예전에는 명절이 즐거웠는데, 이곳에 온 뒤에는 찾아오는 가족도 없어 우울하다"며 "몸이라도 성했으면 여기저기 다닐 텐데"라고 서글픈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자식들이 먹고살기 힘드니까 찾아오기 힘들겠지"라며 애써 위안을 하지만 "그래도 명절에는 아이들 얼굴 한 번 봤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복지시설 관계자는 "요즘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아 기관이나 단체 등의 복지시설에 대한 지원도 예전만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명절에 외로움을 많이 타고,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보면 몹시 애처롭다"고 안타까워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