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류핑 중국 디이자동차 회장(맨 오른쪽)이 지난 10일 개막한 독일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전기자동차 브랜드 훙치의 스포츠 하이브리드카 S9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쉬류핑 중국 디이자동차 회장(맨 오른쪽)이 지난 10일 개막한 독일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전기자동차 브랜드 훙치의 스포츠 하이브리드카 S9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국 자동차회사들이 ‘미래 차 굴기’를 향한 파상공세에 나섰다. 줄줄이 유럽 전기차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미래 차 시장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환경규제가 가장 센 유럽에서 먼저 ‘승부’를 보겠다는 구상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창성자동차와 디이자동차, 바이턴 등이 지난 10일 개막한 독일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 참가해 2021년 유럽 전기차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발표했다. 친환경차의 본고장인 유럽에서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과 본격 경쟁하겠다는 ‘선전포고’란 평가가 나왔다. 다니엘 키르케르트 바이턴 사장은 “2021년 유럽에 이어 미국에도 진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국 업체들의 잇단 유럽 진출 선언의 배경에는 자신감이 녹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을 등에 업고 내수시장을 키우면서 유럽에서도 통할 만큼 기술력을 쌓았다는 것이다.

獨서 '전기차 기술' 뽐낸 中 업체…"유럽·美에도 공장 세운다"

14일(현지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정문에 들어서자 로비 한가운데 전시된 하얀 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중국 전기자동차(EV)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아이웨이즈의 중형 전기차 U5였다. 내년 상반기 처음으로 유럽 시장을 공략하는 모델이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신형 SUV 옆에 나란히 전시됐다. 하루 약 35만 명, 독일에서 가장 많은 열차 승객이 오가는 프랑크푸르트의 ‘심장부’에 중국 신생 업체가 깃발을 꽂고 유럽 진출을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장면이었다.

‘자동차 굴기’를 향한 중국 전기차업체들의 파상공세가 거세다. 침체를 겪고 있는 내수 시장을 벗어나 유럽을 비롯해 중동, 남미 등지로 빠르게 영역을 넓히고 있다. 단순히 중국에서 제작한 전기차를 수출하는 수준이 아니다. 현지에 생산라인을 깔고 전기차를 생산해 팔려는 업체가 늘고 있다.

중국 전기자동차업체 바이턴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엠-바이트.  /연합뉴스
중국 전기자동차업체 바이턴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엠-바이트. /연합뉴스
잇단 유럽 진출 선언

중국 업체들의 ‘야심’은 이번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모터쇼에 참가한 중국 업체들은 줄줄이 ‘2021년 유럽 진출’을 선언했다. 중국 SUV 점유율 1위인 창성자동차는 고급 SUV 브랜드 웨이를, 디이자동차는 고급차 브랜드인 훙치를 앞세워 유럽 시장에 뛰어들겠다고 했다. ‘중국의 테슬라’로 불리는 바이턴도 전기차 SUV 엠-바이트를 세계 처음으로 공개하고 유럽 진출을 공식화했다. 상하이자동차는 올 하반기, 아이웨이즈는 내년 상반기 유럽 진출을 예고했다.

의욕만 앞선 게 아니었다. 중국 업체의 한층 높아진 기술력도 화제를 모았다. 훙치 브랜드의 하이브리드 스포츠카 S9은 V8 가솔린 엔진과 모터를 얹어 최대 1400마력의 성능을 내 관람객을 깜짝 놀라게 했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에 도달하는 시간인 ‘제로백’은 1.9초에 불과하다. 창성자동차가 내놓은 SUV 웨이-S는 제로백 4.9초, 350마력의 성능을 갖췄다. 한 번 충전으로 400㎞를 달릴 수 있다. 운전자 없이 주행할 수 있는 수준(레벨 4)의 자율주행 성능도 갖췄다.

중국 업체들은 해외 시장 확대를 위한 생산 기반 구축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웨이젠쥔 창성자동차 회장은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공격적인 할인 마케팅과 홍보에 나설 것”이라며 “유럽 판매량이 연 5만 대를 넘어서면 현지 공장 설립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올 6월 러시아에 진출하기 위해 현지에 연산 8만 대 규모의 첫 해외 공장을 짓기도 했다.

볼보를 인수한 지리자동차는 동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2017년 벨라루스에 공장을 설립했다. 베이징자동차는 지난해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상하이자동차는 인도네시아와 태국에 공장을 세웠다.

창성자동차의 고급 SUV 브랜드인 웨이의 하이브리드카 VV7.  /박상용  기자
창성자동차의 고급 SUV 브랜드인 웨이의 하이브리드카 VV7. /박상용 기자
갈 길 바쁜 한국 전기차

달라진 중국 업체들의 위상은 시장 점유율에서도 나타난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가 올 들어 7월까지 세계 전기차 시장 점유율을 조사한 결과 1~10위 가운데 1·3·6·10위를 제외하고 모두 중국 업체가 꿰찼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기존에는 중국 업체들의 해외 진출 지역이 중동과 남미 등 신흥국 시장에 그쳤지만, 최근 내수 시장을 토대로 기술력을 끌어올리면서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이 뛰는 와중에 한국 자동차업계는 ‘제자리걸음’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에선 완성차업체 5개사 중 현대·기아자동차만 유일하게 유럽에서 전기차를 판다. 한국 내수 시장의 전기차 성장세가 더디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말 기준 국내에 등록된 순수 전기차는 7만8660대로 5년 전인 2014년(2775대)보다 늘었지만, 전체 등록 차량 중 비중은 0.3%에 불과하다. 중국 정부는 신차 판매량 중 전기차 목표 비중을 2030년 40%, 2035년 60%까지 끌어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존 내연기관 기반 자동차 경쟁력도 쪼그라들고 있다. 한국의 연간 자동차 생산 규모는 2008년 약 382만 대에서 지난해 약 402만 대로 20만 대가량 증가한 데 그쳤다. 세계 시장 비중은 5.4%에서 4.2%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중국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5.4%(약 382만 대)에서 13.1%(약 929만 대)로 높아졌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기차 및 수소차 대중화를 위한 정부 차원의 과감한 지원이 없으면 한국이 미래 친환경차 시장 주도권을 쥐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랑크푸르트=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