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환 포스텍 신임 총장(61)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포스텍과 함께 걸었다. 포스텍이 첫 신입생을 받던 1987년, 그는 29세의 나이에 기계공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20대 교수’의 등장은 당시 지역 언론에 오르내릴 만큼 파격적인 인사였다. 그리고 3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꿈 많던 20대 청년 김무환은 제8대 포스텍 총장이 됐고, 포스텍은 세계 대학 평가에서 100위권에 진입한 세계적인 명문대로 성장했다. 김 총장은 지난 30여 년간 포스텍이 쌓아온 역사를 ‘기적’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비영어권 국가, 비수도권에 있는 사립대가 짧은 시간에 이처럼 가파르게 성장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30년, 포스텍이 다시 한번 도약하기 위해선 기본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며 “겉만 그럴싸한 비전을 내세우는 대신 건학이념에 충실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도 엄중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김 총장은 “4차 산업혁명은 국가의 흥망성쇠가 걸린 문제”라며 “혁명의 파고를 제대로 넘은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는 이후 상황이 정반대로 뒤바뀌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스텍 학생들을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AI) 역량을 갖춘 인재로 키우겠다는 포부도 내비쳤다. 지난 10일 경북 포항시 지곡동 포스텍 총장실에서 김 총장을 만났다. 지난 1일 취임 이후 언론과의 첫 인터뷰다.
김무환 포스텍 신임 총장은 지난 1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 분야에서 뒤처지면 4차 산업혁명 시대 전 산업에서 경쟁력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포스텍 제공
김무환 포스텍 신임 총장은 지난 10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 분야에서 뒤처지면 4차 산업혁명 시대 전 산업에서 경쟁력을 잃게 된다”고 말했다. /포스텍 제공
▶총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4년간 어떤 마음가짐으로 학교를 이끌어갈 계획입니까.

“총장은 조정경기의 ‘타수(舵手)’ 역할을 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리더가 모든 구성원을 이끌고 갈 수는 없습니다. 대신 모든 이가 스스로 역량을 발휘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수는 있습니다. 또한 모두가 한 방향으로 가도록 유도하는 것이 총장의 역할입니다. 혁신은 학생과 교수, 교직원 등 모든 학내 구성원이 함께 지향점을 향해 능동적으로 나아갈 때 이뤄집니다. 총장으로서 포스텍의 ‘자주관리형 혁신’을 이뤄내는 것이 제1의 목표입니다.”

▶최근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요.

“당연히 AI입니다. AI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모든 산업의 기본이 되는 기술입니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에서 ‘혁명’이란 단어에 주목해야 합니다. 1, 2, 3차 혁명을 돌이켜보더라도 혁명의 파고를 제대로 넘은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는 이후 상황이 정반대로 뒤바뀌었습니다. 혁명은 국가의 흥망성쇠가 걸린 문제라는 얘기입니다. 예를 들어 하이브리드카 제조 기술이 부족한 국가는 전기차에 집중하면 됩니다. 하지만 AI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모든 산업의 근간이 되기 때문에 여기서 뒤처지면 전 산업에서 경쟁력을 잃게 됩니다. 긴장을 늦춰선 안 되는 이유입니다.”

▶한국의 AI 경쟁력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할 때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올초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내놓은 AI 경제 활성화 계획을 살펴보면 AI 전문인력을 5년간 1만 명 길러내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당장 가까운 나라인 일본, 중국과 비교해도 턱없이 모자란 수준입니다. 일본은 이공계와 의료 분야에서 18만 명, 인문계에서 7만 명의 인재를 키워 매년 25만 명의 AI 전문인력을 육성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중국은 국가적 차원에서 35개 대학에 AI학과를 신설하고, 대학 자체적으로도 AI학과 개설을 추진해 329개의 AI학과가 허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미국과의 격차는 더 벌어져 있습니다. AI 관련 특허는 미국이 세계에서 47%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특허는 3%에 불과합니다. AI 전문인력도 미국의 10분의 1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인력 양성과 연구개발 모두 서둘러 뒤쫓아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포스텍은 학생들의 AI 역량을 키우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포스텍 총장으로서 한국의 AI 경쟁력이 주요 선진국에 비해 뒤처져 있는 것에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우선 내년부터 입학하는 모든 신입생에게 1학기와 2학기 첫째주에 1주일간 AI 집중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습니다. 원하는 학생은 누구나 한 주 동안 매일 150분간 AI 관련 기초 수업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기초 수업(학기당 1학점, 총 2학점)과 심화 AI 수업 세 과목(9학점)을 이수하면 졸업할 때 ‘AI 코스 인증서’(가칭)도 수여할 계획입니다.”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로 기초 소재산업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체감하고 있습니다. 포스텍은 소재산업 강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포스텍의 건학이념 중 하나가 ‘교육·연구·산학협동을 통해 국가와 인류에 봉사한다’는 것입니다. 포스텍은 그간 축적한 소재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일본의 수출규제로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들을 적극 지원할 계획입니다. 포스텍 기술자문단은 115명의 교수가 참여하는 중소기업지원단과 산학일체연구센터 중심의 대기업지원단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기업의 자문요청이 들어오면 자문교수를 선정해 자문에 응하고 필요 시 공동연구 과제도 수행합니다.”

▶산업 현장에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주요 대학에 계약학과 설립 열풍이 불고 있는데요.

“대학 교육은 학생의 일생을 책임져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인력이 부족할 정도로 반도체산업이 활황을 보이지만 30년 뒤 미래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반도체만 공부한 학생이 학교를 졸업하고 30년이 지난 뒤에도 그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100세 시대입니다. 또한 세상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평생 서너 번 직업을 바꿔야 할지도 모릅니다. 특정 전공에 몰입하는 교육보다 오히려 전공교육에 유연성을 더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의 대학 입시 관련 의혹이 불거지면서 정시 전형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포스텍은 학생부종합전형으로 모든 신입생을 선발하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입학사정관제(현 학생부종합전형)를 도입하기 전 학생들의 입학 때 수능 점수와 졸업 학점을 비교해보면 연관성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수능은 실수를 안 하는 사람을 뽑는 시험입니다. 하지만 포스텍이 뽑고 싶은 인재는 실수하더라도 적극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학생입니다. 교육부가 입시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지난해 정시모집 인원을 30% 이상으로 확대하라고 권고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충분히 공감합니다. 하지만 모든 대학이 일률적으로 같은 비율의 학생을 정시로 선발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대학의 다양성을 인정해줘야 합니다.”

▶학생부종합전형의 취지엔 동감하지만 공정성과 관련해선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는 이가 많습니다.

“포스텍의 학생부종합전형 제도도 완벽하게 공정하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지금도 입시 코디네이터라 불리는 이들과 끝없는 진실게임을 벌이고 있습니다. 다만 포스텍은 학생이 거둔 실적보다 배경에 집중합니다. 수상과 논문 실적을 제출한 수험생에겐 ‘왜 학교 공부를 안 하고 논문을 썼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평가합니다. 논문 한 개, 수상실적 한 개에 5점씩 점수를 매기는 것이 겉으로는 공정해 보입니다. 하지만 실은 그 동기를 판단하는 게 더 공정합니다. 한국의 학생부종합전형 제도는 이제 걸음마 수준입니다. 30년의 역사는 쌓여야 제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김무환표(標)’ 포스텍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겉만 그럴싸한 새로운 비전은 없습니다. 총장이 바뀔 때마다 학교의 비전이 바뀌는 것도 옳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에는 건학이념이 있습니다. 학생이 필요로 하는 교육, 산업체와 미래가 필요로 하는 연구, 포스텍의 현재가 필요로 하는 대학 경영. 이 세 가지가 포스텍의 건학이념을 기반으로 한 포스텍의 목표고, 가치관입니다.”

인문학 강조한 이공계 총장
"디지털 기술이 강조될수록 올바른 가치관 확립이 중요"


김무환 포스텍 총장은 인터뷰하는 내내 “학생들은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고 윤리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기술이 강조될수록 도덕적 가치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는 것이 김 총장의 지론이다.

포스텍은 이공계 연구중심대학이지만 개교 때부터 교양학부(현 인문사회학부)를 운영해왔다. 자기 분야에서 우수한 전문가를 넘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고차원적인 사고능력과 도덕성을 갖춘 인재로 학생들을 키워내기 위해서다. 포스텍 인문사회학부는 인문학과 사회과학뿐만 아니라 어학과 예술, 글쓰기 등 다양한 기본 교과수업을 개설하고 있다. 올해 1학기부터는 융합문명과 경제·금융, 과학기술학 등 세 분야의 융합 부전공도 운영 중이다.

포스텍은 입학생을 처음 선발할 때부터 윤리성을 중요한 잣대로 삼는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의 정시 모집 대신 학생부종합전형을 고집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숫자로 표시된 수능 점수에 드러나지 않는 인간의 됨됨이를 면접 과정에서 면밀하게 평가한다.

김 총장은 “인간의 그릇된 가치관이 인공지능(AI)에 반영되면 대재앙으로 치달을 우려가 있다”며 “올바른 가치관과 윤리의식의 확립을 돕는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AI를 설계하는 것은 결국 인간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 약력

△1958년 부산 출생
△1976년 경기고 졸업
△1980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졸업
△1982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석사
△1986년 미국 매디슨 위스콘신대 박사
△1987년~ 포스텍 기계공학과·첨단원자력공학부 교수
△2007~2011년 포스텍 학생·입학처장
△2008~2012년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자문위원회 자문위원
△2013~2016년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원장
△2014~2017년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 위원 및 분과위원장
△2019년 9월~ 포스텍 총장


포항=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