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동의 4명 vs 반대 8명
'적폐' 낙인에 중복규제까지
지난달 27일 강원 양양군민 2000여 명은 청와대 앞에서 상경 집회를 벌이며 이 같은 구호를 외쳤다. 주민들은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위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조속히 승인해달라고 촉구했다. 김진하 양양군수 등 10여 명은 삭발식도 했다. 환경부 원주지방환경청이 16일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설치사업 환경영향평가에 대해 ‘부동의’ 결정을 내리면서 지역주민의 ‘20년 숙원사업’은 결국 수포로 돌아갈 처지에 놓였다.
대안 없이 ‘부동의’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이날 부동의 결정 직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연 브리핑을 통해 “케이블카 설치·운영으로 인한 환경훼손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소하기는 어렵다고 봤다”며 “양양군에 부동의 의견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양양군이 2001년부터 추진해온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설악산국립공원 3.5㎞ 구간(오색약수터~끝청)에 케이블카와 전망대 등을 설치하는 사업이다. 관광산업을 통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것은 물론 장애인·노약자 등의 국립공원 탐방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목적이다. 지난달 청와대 집회 당시 한국지체장애인협회 등 장애인 단체도 참가한 이유다.
원주지방환경청 관계자는 부동의 배경에 대해 “오색케이블카 사업예정지는 산양을 비롯해 멸종위기종 13종, 천연기념물 6종, 희귀식물 26종 등의 서식지·분포지로, 사업이 시행되면 악영향이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원주지방환경청이 구성한 환경영향갈등 조정 협의회에서 논의한 결과 외부위원 12명의 의견은 ‘부동의’ 4명, ‘보완미흡’ 4명, ‘조건부 동의’ 4명이었다. 이번 발표에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대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조 장관은 브리핑에서 “지역발전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원사업을 적극 발굴할 것”이라면서도 “구체적인 대안사업을 밝히는 건 부처의 업무 영역에서 벗어난다”고 말했다. 겹겹 규제에 소관 부처도 제각각
환경부의 발표 직후 지역사회는 들끓고 있다. 송형근 환경부 자연환경정책실장은 이날 오후 최문순 강원지사를 만나 부동의 결정 배경 등을 설명하려 했지만 최 지사의 거부로 면담조차 하지 못했다.
최종 결정까지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위원회, 적폐청산위원회(환경정책제도개선위원회), 문화재청 등 여러 소관부처를 거치며 시간을 끌었던 것도 지역주민의 반발이 큰 이유다. 산악 케이블카는 자연공원법과 문화재보호법, 산림보호법, 궤도운송법 등 10여 개 법률의 적용을 받는다. 국립공원 지정 여부,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 지정 여부에 따라 소관 부처도 제각각이다.
당장 오색케이블카만 해도 2012, 2013년 두 차례 국립공원위가 설치계획을 부결하면서 노선을 두 번이나 변경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후 문화재청 산하 문화재위원회가 현상변경 안건을 부결하자 행정심판을 냈고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또다시 환경부의 결정에 가로막히게 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집중 추진하던 오색케이블카 사업이 ‘적폐’로 낙인찍혀 좌초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적폐 청산’을 목적으로 환경부에 구성된 환경정책제도개선위는 지난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정권 차원에서 자연환경영향평가서, 민간위원회 검토보고서 등을 조작해 승인으로 결정했다”며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고 양양군이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요청해 오면 부동의 처리하라”고 권고했다.
국내에서는 산악 케이블카 사업이 각종 규제에 묶여 표류하는 반면 스위스 융프라우, 호주 케언스 등 세계적인 관광지는 케이블카를 설치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는 약 2600개의 케이블카가 설치돼 연간 이용객이 6600만 명, 이를 통해 발생하는 수익은 1조원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변우혁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 명예교수는 “국립공원마다 정상을 오르내리는 등산객으로 등산로 주변 자연환경 훼손이 심각하다”며 “케이블카를 설치하면 자연을 지키면서 외국인 등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