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의'ASEAN 톺아보기' (27)] 20억 할랄시장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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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할랄(halal)에 대한 칼럼을 기고한 적이 있다. “서울에 할랄 불고기 식당을 열면 대박날 것”이라는 인도네시아 외교관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할랄은 문화이며 삶의 방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썼다. 그런데 이 칼럼에 대한 일반인의 반응에 놀랐다. 기독교인인 친구로부터 ‘어떻게 그런 글을 쓸 수 있느냐’는 항의를 받았을 때는 섬뜩했다. 그는 할랄을 특정 종교의 신념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인도네시아가 2014년 8월 제정한 ‘할랄제품보장법’이 다음달 17일 시행에 들어간다. 앞으로 인도네시아에 제품을 수출하거나 유통하기 위해서는 할랄제품의 경우 반드시 할랄인증을 취득해야 한다. 할랄제품이 아닌 경우는 제품 라벨에 할랄이 아니라는 표식을 해야 한다. 인도네시아는 2억7000만 인구의 87%가 무슬림인 동남아시아 최대 할랄시장인 까닭에 이에 대한 철저한 대응책이 요구된다. 다만, 관련 시행세칙이 아직 마련되지 않아 일정 기간의 유예 또는 계도 기간이 주어질 것이라고 한다. 다행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불이익이나 차질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신(新)할랄인증법에 따른 대비를 조속히 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전 세계 할랄시장을 내다봐야 한다. 현재 20억 명 수준인 무슬림 인구가 2030년에는 22억 명으로 증가하고, 할랄산업 규모도 2조5000억달러에서 2021년에는 3조달러(이슬람금융 3조5000억달러 제외)에 이를 것이라고 하니 할랄산업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허용되는 것' '깨끗한 것'을 의미
할랄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허용되는 것’ 또는 ‘깨끗한 것’을 의미한다. ‘허용되지 않는 것’은 하람(haram)이라 하는데 돼지 관련 성분, 알코올, 동물의 피나 사체 등이 하람 물질이다. 인도네시아 할랄제품보장법은 할랄 조건 적용 대상을 식음료, 의약품, 화장품, 화학제품 등 광범위한 분야의 제품과 아울러 도축, 가공, 유통 및 판매 등 서비스 분야까지 포함하고 있다. 또 할랄인증 주체를 민간단체인 인도네시아 울라마협의회(MUI)의 산하기관으로부터 정부기관, 즉 종교부 산하의 할랄제품보장청(BPJPH)으로 이관해 세계 할랄시장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려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할랄문제가 대중적인 이슈로 부각된 것은 1988년 폭로성 기사 때문이었다. 시장에 유통되는 인스턴트 라면과 분유에 돼지기름이 함유돼 있다는 보도는 무슬림 소비자를 경악시켰고 대규모 불매운동과 시위를 촉발했다. 이를 계기로 할랄인증 제도가 1994년 처음 시작됐다. 하람제품에 대한 거부감은 2001년 인도네시아 조미료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아지노모토에 대해서도 분출됐다. 이 회사 공장 검사에서 돼지 추출물 사용이 확인되자 공장 가동이 중지되고 관련 직원이 구속됐다. 아지노모토의 시장 점유율은 55.5%에서 5.6%로 폭락했다.
할랄에 대한 무슬림 소비자의 관심은 동남아의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잘 나타난다. 이들이 할랄제품에 매우 높은 선호도와 신뢰를 보이는 것은 종교적인 이유에 국한되지 않는다. 할랄인증에 대한 관심이 정부의 이슬람화 정책에 영향받은 것은 사실이나, 할랄제품이 위생적이고 안전하며 좋은 품질이라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런 소비문화의 동태적 변화와 트렌드를 잘 읽어야 한다.
문화이자 생활방식으로 이해해야
국가관리 차원에서 할랄인증제를 가장 먼저 체계적으로 실행한 국가는 다종족·다종교 사회인 말레이시아다. 1994년 정부부처인 이슬람진흥부(JAKIM)의 할랄인증제가 도입됐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비무슬림인 중국계 소유 기업, 네슬레 등 말레이시아에 생산시설을 둔 다국적기업, 맥도날드, 켄터키치킨, 피자헛 등 다국적 패스트푸드 체인점이었다. 비무슬림 기업들은 할랄인증을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한 전략으로 활용했는데, 특히 네슬레의 전략은 향후 우리의 무슬림 시장 진출에 유용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네슬레 말레이시아는 할랄인증 요건에 맞춰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현지화하고, 이를 전 세계 지사와 공유해 글로벌 표준으로 발전시켰다. 각국의 생산시설을 전문화·차별화해 통합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초국적 전략을 추진했다.
최근 우리 기업들이 한국이슬람중앙회 할랄인증과 말레이시아 및 인도네시아의 할랄인증을 통해 식음료, 화장품, 의약품 시장에 적극 진출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한류 열풍에 더해 할랄인증을 통해 깨끗하고 안전하며 무슬림 문화를 이해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
할랄은 문화이며 생활방식이고 소비패턴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고 인식할 필요가 있다. K팝, K푸드, K뷰티 등 한류가 외국에서 호응을 얻듯이 할랄도 쌍방향 문화 교류라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는 없을까. 산업적 측면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할랄제품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고, 20억 무슬림 시장을 겨냥해 많은 나라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
인도네시아가 2014년 8월 제정한 ‘할랄제품보장법’이 다음달 17일 시행에 들어간다. 앞으로 인도네시아에 제품을 수출하거나 유통하기 위해서는 할랄제품의 경우 반드시 할랄인증을 취득해야 한다. 할랄제품이 아닌 경우는 제품 라벨에 할랄이 아니라는 표식을 해야 한다. 인도네시아는 2억7000만 인구의 87%가 무슬림인 동남아시아 최대 할랄시장인 까닭에 이에 대한 철저한 대응책이 요구된다. 다만, 관련 시행세칙이 아직 마련되지 않아 일정 기간의 유예 또는 계도 기간이 주어질 것이라고 한다. 다행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불이익이나 차질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신(新)할랄인증법에 따른 대비를 조속히 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는 전 세계 할랄시장을 내다봐야 한다. 현재 20억 명 수준인 무슬림 인구가 2030년에는 22억 명으로 증가하고, 할랄산업 규모도 2조5000억달러에서 2021년에는 3조달러(이슬람금융 3조5000억달러 제외)에 이를 것이라고 하니 할랄산업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허용되는 것' '깨끗한 것'을 의미
할랄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허용되는 것’ 또는 ‘깨끗한 것’을 의미한다. ‘허용되지 않는 것’은 하람(haram)이라 하는데 돼지 관련 성분, 알코올, 동물의 피나 사체 등이 하람 물질이다. 인도네시아 할랄제품보장법은 할랄 조건 적용 대상을 식음료, 의약품, 화장품, 화학제품 등 광범위한 분야의 제품과 아울러 도축, 가공, 유통 및 판매 등 서비스 분야까지 포함하고 있다. 또 할랄인증 주체를 민간단체인 인도네시아 울라마협의회(MUI)의 산하기관으로부터 정부기관, 즉 종교부 산하의 할랄제품보장청(BPJPH)으로 이관해 세계 할랄시장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려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할랄문제가 대중적인 이슈로 부각된 것은 1988년 폭로성 기사 때문이었다. 시장에 유통되는 인스턴트 라면과 분유에 돼지기름이 함유돼 있다는 보도는 무슬림 소비자를 경악시켰고 대규모 불매운동과 시위를 촉발했다. 이를 계기로 할랄인증 제도가 1994년 처음 시작됐다. 하람제품에 대한 거부감은 2001년 인도네시아 조미료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아지노모토에 대해서도 분출됐다. 이 회사 공장 검사에서 돼지 추출물 사용이 확인되자 공장 가동이 중지되고 관련 직원이 구속됐다. 아지노모토의 시장 점유율은 55.5%에서 5.6%로 폭락했다.
할랄에 대한 무슬림 소비자의 관심은 동남아의 무슬림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잘 나타난다. 이들이 할랄제품에 매우 높은 선호도와 신뢰를 보이는 것은 종교적인 이유에 국한되지 않는다. 할랄인증에 대한 관심이 정부의 이슬람화 정책에 영향받은 것은 사실이나, 할랄제품이 위생적이고 안전하며 좋은 품질이라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런 소비문화의 동태적 변화와 트렌드를 잘 읽어야 한다.
문화이자 생활방식으로 이해해야
국가관리 차원에서 할랄인증제를 가장 먼저 체계적으로 실행한 국가는 다종족·다종교 사회인 말레이시아다. 1994년 정부부처인 이슬람진흥부(JAKIM)의 할랄인증제가 도입됐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비무슬림인 중국계 소유 기업, 네슬레 등 말레이시아에 생산시설을 둔 다국적기업, 맥도날드, 켄터키치킨, 피자헛 등 다국적 패스트푸드 체인점이었다. 비무슬림 기업들은 할랄인증을 소비자의 신뢰를 얻기 위한 전략으로 활용했는데, 특히 네슬레의 전략은 향후 우리의 무슬림 시장 진출에 유용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네슬레 말레이시아는 할랄인증 요건에 맞춰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현지화하고, 이를 전 세계 지사와 공유해 글로벌 표준으로 발전시켰다. 각국의 생산시설을 전문화·차별화해 통합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초국적 전략을 추진했다.
최근 우리 기업들이 한국이슬람중앙회 할랄인증과 말레이시아 및 인도네시아의 할랄인증을 통해 식음료, 화장품, 의약품 시장에 적극 진출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한류 열풍에 더해 할랄인증을 통해 깨끗하고 안전하며 무슬림 문화를 이해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줄 수 있다.
할랄은 문화이며 생활방식이고 소비패턴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하고 인식할 필요가 있다. K팝, K푸드, K뷰티 등 한류가 외국에서 호응을 얻듯이 할랄도 쌍방향 문화 교류라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는 없을까. 산업적 측면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할랄제품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있고, 20억 무슬림 시장을 겨냥해 많은 나라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