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민의 지금 유럽은] “헐크가 아니라 겁쟁이”…룩셈부르크서 굴욕당한 존슨 英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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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 야유에 기자회견 장소 변경 요청…거절당하자 불참
기자회견 홀로 참석한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 존슨 향해 조롱
베텔 총리, “시위는 민주주의 권리…모든 책임은 존슨에게 있다”
英 언론, “헐크가 아니라 겁쟁이” 야유
기자회견 홀로 참석한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 존슨 향해 조롱
베텔 총리, “시위는 민주주의 권리…모든 책임은 존슨에게 있다”
英 언론, “헐크가 아니라 겁쟁이” 야유
지난 16일(현지시간) 오후 룩셈부르크 총리궁에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자비에르 베텔 룩셈부르크 총리와의 정상회담이 열렸다. 존슨 총리는 이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관련 논의를 위해 베텔 총리와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룩셈부르크에서 연쇄 회동을 가졌다. 융커 위원장은 전직 룩셈부르크 총리 출신이다.
회담을 마친 존슨 총리가 총리 집무실 밖으로 나오자 인근에 모인 수백여명의 브렉시트 반대 시위대로부터 야유와 조롱이 쏟아졌다. 존슨 총리는 시위대를 힐끗 쳐다본 후 아무말 없이 총리궁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베텔 총리가 당황한 듯 서둘러 존슨 총리를 따라갔다. 당초 두 정상은 회담이 끝난 후 총리궁 안뜰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성명과 함께 기자들의 질문에 답할 예정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굳은 표정의 베텔 총리가 혼자서 기자회견장에 도착했다. 존슨 총리가 있어야 할 연단은 비어 있었다. 베텔 총리는 마이크를 잡자마자 “시위는 민주주의의 권리다. 서로 소통하고 듣는 것도 중요하다”고 운을 뗐다. 그는 존슨 총리가 시위대를 의식해 기자회견에 불참했다고 전했다. 이 모습은 영국 BBC 등을 통해 유럽 전역에 생중계됐다.
영국 총리실 관계자에 따르면 존슨 총리는 당초 예정된 기자회견장을 시위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기자고 룩셈부르크 정부에 요청했다. 시위대가 내는 소음 때문에 기자회견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는 것이 총리실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룩셈부르크 정부는 이 요청을 거부했다. 기자회견을 열 정도의 큰 내부 공간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자 영국 총리실은 몇 명의 기자만을 추려 내부에서 진행하자는 의견을 다시 제시했다. 하지만 룩셈부르크 정부는 ‘불공평한 처사’라며 이 제안도 거부했다. 결국 존슨 총리는 당초 예정된 공식 기자회견에 불참하기로 했다. 대신 시위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BBC와의 비공개 인터뷰를 통해 브렉시트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존슨 총리는 다음달 31일 예정된 브렉시트 시한을 앞두고 “브렉시트 합의를 이뤄낼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다음달 17~18일 예정된 EU 정상회의까지 브렉시트 합의를 위한 적당한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존슨 총리의 주장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EU가 ‘백스톱(backstop·안전장치)’ 조항 유지 방침을 바꿔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백스톱은 영국이 EU를 떠나더라도 1년 이상 EU의 관세동맹에 잔류토록 해 충격을 줄이는 방안을 뜻한다. 당장 브렉시트로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 국경에서 통행·통관 절차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하드 보더’(hard border)에 따른 충격을 피하기 위해 마련했다.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와 EU는 지난해 11월 브렉시트와 상관없이 영국 전체가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 당분간 잔류하도록 하는 백스톱 조항을 담은 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존슨 총리는 백스톱이 브렉시트의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이유로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EU는 존슨 총리의 이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혼자서 기자회견을 진행한 베텔 총리는 존슨 총리에 대해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영국과 EU 국민들은 6주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며 “국민들에겐 확실성과 안정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존슨 총리가 불참해 텅 빈 연단을 가리키며 “당신은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국민들의 미래를 볼모로 잡을 수 없다”며 “그래서 이제 그것은 ‘미스터 존슨’에게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베텔 총리는 존슨 총리가 며칠 전 언론을 통해 EU와의 브렉시트 협상에서 ‘큰 진전’(big progress)이 있었다고 밝힌 것과 함께 자신을 슈퍼히어로 만화 주인공 ‘헐크’에 빗댄 것을 비꼬기도 했다. 존슨 총리는 지난 15일 영국 데일리매일과의 인터뷰에서 마블 영화 속 캐릭터인 헐크를 거론하며 “배너 박사(헐크의 변신 전 캐릭터)는 족쇄에 묶여 있을지 모르지만, 자극을 받으면 그것을 부숴버린다”며 “헐크는 화날수록 강해진다”고 말했다. 다음달 31일까지 브렉시트를 무조건 이행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베텔 총리는 “며칠 전에 존슨 총리의 브렉시트 발언이 ‘큰 진전’에서 ‘헐크’로, 이어 ‘제2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제안하는 데이비드 캐머런’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며 “이 기사에 대해 존슨 총리에게 직접 물어봤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존슨 총리는 두 번째 국민투표는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며 “아마도 내가 질문한 것 때문에 (존슨 총리가)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EU와의 브렉시트 협상에 대해 자신의 입장만을 강조하는 존슨 총리를 비꼰 것이다. 그러면서 베텔 총리는 “브렉시트 합의를 위해선 단순한 말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이날 존슨 총리의 제안에 구체적인 내용이 전혀 없었던 것에 매우 당혹스러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FT는 EU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영국 정부가 향후 일주일 동안은 어떤 공식적인 제안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EU는 다음달 17~18일 열리는 정상회의까지 양측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영국 언론은 존슨 총리의 룩셈부르크 방문에 대해 잇따라 비판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FT와 가디언 등 대부분의 영국 언론들은 존슨 총리가 룩셈부르크에서 굴욕을 당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일간 인디펜던트는 시위대를 의식해 기자회견에 불참한 존슨 총리를 향해 ‘겁쟁이’(Chicken)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회담을 마친 존슨 총리가 총리 집무실 밖으로 나오자 인근에 모인 수백여명의 브렉시트 반대 시위대로부터 야유와 조롱이 쏟아졌다. 존슨 총리는 시위대를 힐끗 쳐다본 후 아무말 없이 총리궁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베텔 총리가 당황한 듯 서둘러 존슨 총리를 따라갔다. 당초 두 정상은 회담이 끝난 후 총리궁 안뜰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성명과 함께 기자들의 질문에 답할 예정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굳은 표정의 베텔 총리가 혼자서 기자회견장에 도착했다. 존슨 총리가 있어야 할 연단은 비어 있었다. 베텔 총리는 마이크를 잡자마자 “시위는 민주주의의 권리다. 서로 소통하고 듣는 것도 중요하다”고 운을 뗐다. 그는 존슨 총리가 시위대를 의식해 기자회견에 불참했다고 전했다. 이 모습은 영국 BBC 등을 통해 유럽 전역에 생중계됐다.
영국 총리실 관계자에 따르면 존슨 총리는 당초 예정된 기자회견장을 시위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기자고 룩셈부르크 정부에 요청했다. 시위대가 내는 소음 때문에 기자회견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는 것이 총리실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룩셈부르크 정부는 이 요청을 거부했다. 기자회견을 열 정도의 큰 내부 공간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자 영국 총리실은 몇 명의 기자만을 추려 내부에서 진행하자는 의견을 다시 제시했다. 하지만 룩셈부르크 정부는 ‘불공평한 처사’라며 이 제안도 거부했다. 결국 존슨 총리는 당초 예정된 공식 기자회견에 불참하기로 했다. 대신 시위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BBC와의 비공개 인터뷰를 통해 브렉시트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존슨 총리는 다음달 31일 예정된 브렉시트 시한을 앞두고 “브렉시트 합의를 이뤄낼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다음달 17~18일 예정된 EU 정상회의까지 브렉시트 합의를 위한 적당한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 존슨 총리의 주장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EU가 ‘백스톱(backstop·안전장치)’ 조항 유지 방침을 바꿔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했다.
백스톱은 영국이 EU를 떠나더라도 1년 이상 EU의 관세동맹에 잔류토록 해 충격을 줄이는 방안을 뜻한다. 당장 브렉시트로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 국경에서 통행·통관 절차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하드 보더’(hard border)에 따른 충격을 피하기 위해 마련했다.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와 EU는 지난해 11월 브렉시트와 상관없이 영국 전체가 EU 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 당분간 잔류하도록 하는 백스톱 조항을 담은 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존슨 총리는 백스톱이 브렉시트의 의미를 퇴색시킨다는 이유로 폐기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EU는 존슨 총리의 이런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혼자서 기자회견을 진행한 베텔 총리는 존슨 총리에 대해 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영국과 EU 국민들은 6주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며 “국민들에겐 확실성과 안정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존슨 총리가 불참해 텅 빈 연단을 가리키며 “당신은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국민들의 미래를 볼모로 잡을 수 없다”며 “그래서 이제 그것은 ‘미스터 존슨’에게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베텔 총리는 존슨 총리가 며칠 전 언론을 통해 EU와의 브렉시트 협상에서 ‘큰 진전’(big progress)이 있었다고 밝힌 것과 함께 자신을 슈퍼히어로 만화 주인공 ‘헐크’에 빗댄 것을 비꼬기도 했다. 존슨 총리는 지난 15일 영국 데일리매일과의 인터뷰에서 마블 영화 속 캐릭터인 헐크를 거론하며 “배너 박사(헐크의 변신 전 캐릭터)는 족쇄에 묶여 있을지 모르지만, 자극을 받으면 그것을 부숴버린다”며 “헐크는 화날수록 강해진다”고 말했다. 다음달 31일까지 브렉시트를 무조건 이행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베텔 총리는 “며칠 전에 존슨 총리의 브렉시트 발언이 ‘큰 진전’에서 ‘헐크’로, 이어 ‘제2의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제안하는 데이비드 캐머런’으로 바뀌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읽었다”며 “이 기사에 대해 존슨 총리에게 직접 물어봤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존슨 총리는 두 번째 국민투표는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다”며 “아마도 내가 질문한 것 때문에 (존슨 총리가)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했다. EU와의 브렉시트 협상에 대해 자신의 입장만을 강조하는 존슨 총리를 비꼰 것이다. 그러면서 베텔 총리는 “브렉시트 합의를 위해선 단순한 말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이날 존슨 총리의 제안에 구체적인 내용이 전혀 없었던 것에 매우 당혹스러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FT는 EU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영국 정부가 향후 일주일 동안은 어떤 공식적인 제안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EU는 다음달 17~18일 열리는 정상회의까지 양측의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영국 언론은 존슨 총리의 룩셈부르크 방문에 대해 잇따라 비판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FT와 가디언 등 대부분의 영국 언론들은 존슨 총리가 룩셈부르크에서 굴욕을 당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일간 인디펜던트는 시위대를 의식해 기자회견에 불참한 존슨 총리를 향해 ‘겁쟁이’(Chicken)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