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 상장주식을 전자증권으로 전면 대체하기로 한 뒤 한국예탁결제원에는 실물 주식을 가진 개인들의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A씨도 그런 경우다. 그는 “실물 주식을 전자증권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물었다. 코스닥시장 상장기업인 가업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부모에게 실물 주식을 물려받았는데 아직 상속·증여세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자증권으로 바꾸고 실소유주에 맞게 명의개서(주주명부상 주식 소유자의 이름을 바꾸는 것)를 하면 납세 의무가 생긴다. A씨는 예탁원에서 “주식 매매 등을 못할 뿐 주주로서의 기존 권리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답변을 듣고 납세 준비가 될 때까지 전자증권 전환을 유보하기로 했다.

상장주식 채권 등 증권을 실물 없이 전자로만 거래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의 전자증권제도가 지난 16일 본격 시행됐다. 실물 증권 소유자는 이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지 못한다. 실물 증권을 이용해 신탁 등 기타 법률행위를 하는 것도 금지됐다. 그럼에도 시중에는 아직 전자화하지 않은 종이 실물 상장주식이 상당하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전체 상장주식의 1%가량이지만, 주식 수로는 7억9000만 주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예탁결제원 관계자는 “오래전 실물 주식을 소량 보유해놓고 세월이 지나 보유 사실을 잊어버린 경우가 가장 많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매수한 사람이 사망한 뒤 상속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개연성도 있다. 한국보다 앞서 전자증권제를 도입한 일본에 이런 사례가 많았다. 국내에서 이런 유형의 상당수는 1980년대 말 발행된 한국전력(사진)과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의 국민주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10주 이하를 매수한 경우가 많았다.

두 번째는 본인이 주주인 건 알지만 이를 외부에 밝히기를 꺼리는 유형이다. 부모로부터 실물 주식을 상속받은 후 상속세를 내지 않은 A씨가 여기에 해당된다. 전자증권제 도입이 확정된 뒤 변호사를 앞세워 예탁결제원에 “전자증권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주주로서의 권리를 잃느냐”는 문의도 많았다. 이들은 예탁결제원이 “주주권이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안내하자 “계속 종이증권을 보유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실제로 종이증권 실물 보유자는 매매를 못할 뿐 종전처럼 배당권, 의결권 행사는 할 수 있다.

박종진 한국예탁결제원 전자증권개발지원단장은 “이런 경우는 매수 당시 명의신탁을 한 사례가 많을 것”이라며 “돈을 빌려주며 담보로 주식을 받았는데 이 관계를 밝히기 곤란한 사정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전자증권 등록을 위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해 이를 포기하는 유형이다. 자신이 주식을 매수한 건 기억하지만 실물을 잃어버린 경우, 부모가 소량의 주식을 남기고 사망해 자녀가 상속을 받아야 하는 경우 등이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