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과오를 인정하는 게 두려운가
“북유럽 국가들을 사회주의 성공 사례로 꼽는 것은 만연해 있는 대표적 오류”라고 강조한 사람은 스페인 경제학자 다니엘 라카예다. 그는 지난해 오스트리아 미제스연구소 학회지에 기고한 글(‘노르딕 국가들은 사회주의체제가 아님을 직시하라’)에서 “북유럽 국가들이 정부 개입과 평등주의 정책으로 최고 단계의 사회복지국가를 실현했다”는 좌파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북유럽 국가들은 세계에서 자유의 가치를 가장 존중하는 나라다. 사유재산권이 엄정한 법치로 보장되며, 꾸준한 감세정책을 편 결과 법인세율이 미국보다도 낮다.”

라카예에 따르면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는 헤리티지재단의 경제자유지수에서 선도적 국가이며 세계은행 분석에서도 투자 및 사업규제가 가장 완화된 나라다. 건강보험제도도 자율적으로 운영된다. 국영 의료보험과 민간 서비스 가운데 국민이 선택할 수 있다. 국영기업 효율화를 위한 민영화에 과감하게 나서 통신과 전력은 물론 우정사업과 산림 관리도 민간부문으로 넘겼고, 노동시장 유연성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그런데 분명히 해둬야 할 게 있다. “북유럽 국가들은 사회주의체제가 아니다”는 라카예의 단언에는 한 가지 빠진 게 있다. ‘더 이상’이라는 부사(副詞)다. 1990년대 들어 사활을 건 ‘개조’에 나서기 이전까지 북유럽 국가들은 대표적인 ‘고(高)부담 고복지’의 유사 사회주의체제였다. 스웨덴이 특히 그랬다. 좌파 사회민주당이 1932년부터 1991년까지 60년 동안 단 6년(1976~1982)을 빼고 장기 집권하는 동안 모든 국민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것에 더해 보육수당 아동수당 실업수당을 이중삼중으로 얹어주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복지체계를 구축했다. 막대한 재원은 살인적 세율의 소득세와 법인세, 부유세 등을 통해 조달했다. 견디다 못한 기업과 고소득자들의 ‘세금 망명’이 잇따랐다.

이런 상황이 오래갈 수는 없었다. 1991년부터 3년 동안 성장률이 -6%로 뒷걸음질하고 실업률이 1.5%에서 8.2%로 치솟는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았다. 스웨덴이 선택한 건 ‘잘못된 체제와의 결별’이었다. 57%에 달했던 법인세율을 30%로 끌어내리고 부유세는 폐지했다. 복지제도도 수술했다. 기초연금을 없애고 돈이 없는 노인으로 지급 대상을 한정했다. 실업수당 지급액도 확 깎아 ‘일해야 먹고살 수 있는 나라’로 탈바꿈했다.

이런 개혁을 주도한 정당이 사회민주당이었다. 방만한 재정팽창을 제도적으로 막기 위한 재정준칙을 도입하고 상속세를 폐지하는 등 보수정당의 전유물을 과감하게 채택했다. 익숙해 있던 이념과 강령(綱領)을 깨고 변신에 나서는 일이 쉬울 리 없다. 복지 혜택에 중독된 지지계층을 설득해 ‘기득권’을 내려놓게 하는 일부터가 난제다. 스웨덴 사민당 정부는 ‘결자해지(結者解之)’를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북유럽 얘기를 늘어놓은 것은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며칠 전 발언이 마음에 걸려서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정부가 지난 2년 동안 줄기차게 노력해 온 결과 고용 상황이 양과 질 모두에서 뚜렷하게 개선되고 있다”고 했다. 시장에서 체감하는 현실과 동떨어진 강변(强辯)이라는 논란을 낳았고, 많은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제조업과 금융·보험업 일자리가 갈수록 줄어들고, 그 자리를 정부가 재정을 퍼부어 급조한 60세 이상 고령자 대상 단기 일자리가 메우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게 논란의 요지다.

정부가 관제(官製) 일자리와 각종 선심성 복지정책을 늘리면서 내년에는 초유의 대규모 적자국채 발행이 불가피해졌다. 그 부담이 두고두고 나라를 짓누를 것임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국민 1인당 실질 국가채무가 내년 766만7000원으로 올해보다 18%나 급증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왔다. 북유럽 국가들은 “해보니 아니더라”는 고백과 함께 과감한 ‘개조’ 수준의 정책 대전환을 선택했지만, 모든 나라가 그랬던 건 아니다. 시행착오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정책궤도를 수정하는 용기를 내지 못한 아르헨티나와 그리스, 베네수엘라는 헤어나기 어려운 늪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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