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커 박사 "영변은 북핵의 심장…비핵화는 영변서 시작돼야"

"영변 폐기로 핵능력 완전히 사라지지 않지만 극적으로 감축"
"北, 우라늄 계속 농축…핵무기 최대 37개 보유"

미국의 핵 과학자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는 19일 북한 비핵화의 첫 단계로 거론되는 영변 핵시설 폐기에 대해 "영변 대부분을 가동 중단하고 폐기하는 것은 큰 일이며 매우 긍정적인 조치"라고 밝혔다.

해커 박사는 이날 서울 더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 핵비확산군축 리더십네트워크(APNL)-동아시아재단(EAF) 초청 세미나에서 "비핵화는 북한 핵 프로그램의 심장인 영변에서 시작돼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해커 박사는 2010년 11월 북한 당국의 초청을 받아 영변의 우라늄농축시설 내부까지 들어가 보고 온 몇 안 되는 미국인이며 북핵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영변이 오래된 시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미국 핵무기 연구의 산실)에 있는 시설보다 신형"이라며 "또 북한은 계속 영변에 새로운 건물을 건설하고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영변을 폐기해도 다른 시설에서 우라늄을 농축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플루토늄은 더 생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플루토늄 생산은 영변에만 있는 원자로가 필요하다.

그는 영변을 폐기할 경우 북한 비핵화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영변만 폐기한다고 북한 핵 프로그램을 끝낼 수 없지만, 인간의 기억을 지우지 않는 이상 비가역적(irreversible)이란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질문은 지금 이 상태로 계속 가면 북한이 더 위험한 핵무기를 개발할 가능성"이라며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중단하고 영변이 없다면 북한 핵 능력이 극적으로 감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해커 박사는 영변에 민간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이 포함돼 있어 폐기할 군사용 시설과 남겨둘 민간용을 구별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해커 박사는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계속 가동하고 있다고 추정했다.

해커 박사 분석에 따르면 북한은 2017년 말 기준 무기급 플루토늄 20∼40kg, 고농축 우라늄 250∼500kg, 소량의 트라이튬, 핵무기 25∼30개를 보유했다.

당시 북한은 핵탄두를 스커드와 노동 미사일에 탑재할 수준의 기술까지 개발했지만, 아직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인 화성-12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화성-14, 15에 탑재할 능력은 없는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2019년 9월 현재 북한의 핵 능력은 플루토늄 25∼48kg, 고농축 우라늄 450∼700kg, 핵무기 37개로 증가한 것으로 해커 박사는 추정했다.

또 IRBM 및 ICBM에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지만, 군사적 효용이 있으려면 추가 실험이 필요할 것으로 봤다.

북한은 2017년 11월 화성-15 이후 중장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실험을 하지 않고 있다.

조셉 윤 전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향후 북미 실무협상에서 미국이 영변 외 추가 핵시설 폐기나 비핵화 로드맵, 검증 절차 등을 논의할 수 있으며 실질적인 핵 동결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북한은 일부 제재 완화와 함께 종전 선언이나 연락사무소 설치 등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