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과 건축 디자인 접목시킨 '괴짜' 버질 아블로 오프화이트 창립자 겸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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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신발·가방에 독특한 서체 새겨
가장 잘나가는 브랜드로 키워내다
건축학 전공한 패션 디자이너
'누가 살까' 싶은데 불티나게 팔려
"디자인이냐 사기냐" 갑론을박
20개 브랜드와 협업 릴레이
가장 잘나가는 브랜드로 키워내다
건축학 전공한 패션 디자이너
'누가 살까' 싶은데 불티나게 팔려
"디자인이냐 사기냐" 갑론을박
20개 브랜드와 협업 릴레이
“현재 가장 잘나가는 패션 브랜드.”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오프화이트에 대해 내린 평가다. 오프화이트는 제품 이름과 용도를 영문 헬베티카 서체로 새기는 게 특징이다. 단순하게 생긴 흰 부츠에 ‘걸을 때 신는 것’이란 문구를 검은 색으로 크게 적어 150만원 가까운 가격에 판다. 앞판에 ‘안에 돈 있음’이라고 적힌 가방, 신발끈에 ‘신발끈’ 이름표가 달린 운동화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선 “이걸 이 가격에 누가 사겠느냐”는 얘기도 나오지만 시장에선 날개 돋친 듯 팔린다. 버질 아블로 오프화이트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의 독특한 디자인 콘셉트와 마케팅 덕분이다.
건축학 공부한 디자이너
아블로 CEO는 패션 디자인을 배운 적이 없는 디자이너다. 미국 위스콘신 매디슨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일리노이공대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건축가 렘 콜하스가 명품 브랜드 프라다의 수장인 미우치아 프라다와 협업하는 걸 보면서 패션에 관심을 가졌다.
동네 프린트 티셔츠 가게에 직접 만든 도안을 보낸 걸 계기로 2002년 음악인 카니예 웨스트를 만나 그의 앨범 커버를 디자인했다. 이후 웨스트는 아블로 CEO에게 앨범과 무대세트 이미지 기획, 마케팅 등을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맡겼다.
아블로 CEO가 패션 브랜드를 선보인 건 2012년 임시 프로젝트 브랜드 ‘파이렉스 비전’부터다. 재고가 대량 쌓여 40달러(약 4만7000원)에 반값 할인 판매 중인 랄프로렌 셔츠를 사다가 등판에 ‘파이렉스 23’이라는 로고를 크게 프린트하고, 550달러(약 65만5000원)에 되팔았다. 이를 새롭고 천재적인 판매 전략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일부는 “디자인이 아니라 사기”라고 비난했다. 갑론을박이 오가는 동안 브랜드는 유명세를 탔다. 판매량이 늘어나자 아블로 CEO는 파이렉스 비전 브랜드를 접고 오프화이트를 출범시켰다.
오프화이트는 아블로 CEO의 전공인 건축을 디자인에 접목했다. 브랜드 로고인 화살표 모양은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한 건물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디자인에 주로 쓰는 검은색과 흰색 사선 줄무늬, 케이블 끈 등도 건축 현장에서 본 것들이다.
협업 통해 소비자층 늘려
오프화이트가 빠르게 인기를 끈 또 다른 비결은 협업이다. 다른 브랜드와 협업 제품을 내놓으면서 소비자층을 늘렸다. 작년 5월부터 12개월간 오프화이트가 협업한 브랜드는 20개가 넘는다. 협업을 통해 패션 이외 다른 제품 시장에서도 폭넓게 이름을 알렸다. 이케아(가구), 모에샹동(샴페인), 맥도날드(패스트푸드), 리모와(가방), 바이레도(향수)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경쟁하는 브랜드와도 공동 작업을 하고 있다. 자체 운동화 제품이 있는 오프화이트는 아디다스, 나이키, 반스 등 운동화 브랜드와 협업 제품을 출시했다. 이 중 나이키와는 2017년부터 지난 1월까지 약 2년에 걸쳐 같이 일했다. 나이키와 나이키 자매사인 컨버스 운동화 10종을 협업으로 선보였다.
오프화이트는 여러 업체와 공동 작업을 하지만 브랜드 정체성은 지킨다. 나이키와 함께 만든 운동화는 나이키 모델의 기본 모양을 살렸지만 곳곳에 오프화이트 특유의 글씨체 문구를 넣었다. 나이키 에어 제품엔 신발 옆쪽에 ‘에어’를, 나이키 로고 뒤편엔 ‘에어조던1’이 첫 출시된 해를 뜻하는 ‘85’를 새겼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마케팅에도 열심이다. 아블로 CEO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진 SNS가 가장 중요하다”며 “실제 제품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SNS에서 보이는 브랜드 이미지를 소비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프화이트는 나이키와 협업 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추첨 응모를 받았다. 제품 출시 정보를 본인 계정에 공유한 소비자에게만 당첨 기회를 주는 식으로 소비자가 스스로 제품을 홍보하게 유도했다. 작년 7월 이 방식을 통해 홍보한 ‘나이키 에어 프레스토 오프화이트’ 한정판은 SNS 언급 건수가 25만 건을 넘겼다. 이 한정판의 리셀(정식 유통채널이 아니라 판매자나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한 뒤 재판매) 가격은 정가의 열 배 넘게 올랐다.
제품에 개념과 메시지 담아
아블로 CEO는 “제품을 파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제품을 그냥 파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제품에 개념이나 메시지를 더해 뭔가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레디메이드 오프화이트’ 마케팅은 제품에 뭔가를 더해 판 좋은 예다. 1910년대 프랑스 예술가 마르셀 뒤샹이 변기와 술병걸이 등 기성품을 예술품으로 전시한 것에서 착안했다. 소비자 맞춤형 제품을 내놓는 대신 소비자가 오프화이트 제품을 사서 맞춤형으로 꾸미도록 이끈다.
아블로 CEO는 지난해 SNS에 흰색 운동화를 자기 멋대로 염색한 사진을 올리고 레디메이드 오프화이트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운동화 구매자들이 각자 개성에 맞게 신발을 염색하고 이를 예술품처럼 SNS에 자랑하면서 브랜드 입소문이 늘었다. 아블로 CEO는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소비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이제 옷을 사입는 일은 놀이에 가깝다”고 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오프화이트에 대해 내린 평가다. 오프화이트는 제품 이름과 용도를 영문 헬베티카 서체로 새기는 게 특징이다. 단순하게 생긴 흰 부츠에 ‘걸을 때 신는 것’이란 문구를 검은 색으로 크게 적어 150만원 가까운 가격에 판다. 앞판에 ‘안에 돈 있음’이라고 적힌 가방, 신발끈에 ‘신발끈’ 이름표가 달린 운동화도 마찬가지다. 일각에선 “이걸 이 가격에 누가 사겠느냐”는 얘기도 나오지만 시장에선 날개 돋친 듯 팔린다. 버질 아블로 오프화이트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의 독특한 디자인 콘셉트와 마케팅 덕분이다.
건축학 공부한 디자이너
아블로 CEO는 패션 디자인을 배운 적이 없는 디자이너다. 미국 위스콘신 매디슨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일리노이공대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건축가 렘 콜하스가 명품 브랜드 프라다의 수장인 미우치아 프라다와 협업하는 걸 보면서 패션에 관심을 가졌다.
동네 프린트 티셔츠 가게에 직접 만든 도안을 보낸 걸 계기로 2002년 음악인 카니예 웨스트를 만나 그의 앨범 커버를 디자인했다. 이후 웨스트는 아블로 CEO에게 앨범과 무대세트 이미지 기획, 마케팅 등을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맡겼다.
아블로 CEO가 패션 브랜드를 선보인 건 2012년 임시 프로젝트 브랜드 ‘파이렉스 비전’부터다. 재고가 대량 쌓여 40달러(약 4만7000원)에 반값 할인 판매 중인 랄프로렌 셔츠를 사다가 등판에 ‘파이렉스 23’이라는 로고를 크게 프린트하고, 550달러(약 65만5000원)에 되팔았다. 이를 새롭고 천재적인 판매 전략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일부는 “디자인이 아니라 사기”라고 비난했다. 갑론을박이 오가는 동안 브랜드는 유명세를 탔다. 판매량이 늘어나자 아블로 CEO는 파이렉스 비전 브랜드를 접고 오프화이트를 출범시켰다.
오프화이트는 아블로 CEO의 전공인 건축을 디자인에 접목했다. 브랜드 로고인 화살표 모양은 건축가 루트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한 건물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디자인에 주로 쓰는 검은색과 흰색 사선 줄무늬, 케이블 끈 등도 건축 현장에서 본 것들이다.
협업 통해 소비자층 늘려
오프화이트가 빠르게 인기를 끈 또 다른 비결은 협업이다. 다른 브랜드와 협업 제품을 내놓으면서 소비자층을 늘렸다. 작년 5월부터 12개월간 오프화이트가 협업한 브랜드는 20개가 넘는다. 협업을 통해 패션 이외 다른 제품 시장에서도 폭넓게 이름을 알렸다. 이케아(가구), 모에샹동(샴페인), 맥도날드(패스트푸드), 리모와(가방), 바이레도(향수)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경쟁하는 브랜드와도 공동 작업을 하고 있다. 자체 운동화 제품이 있는 오프화이트는 아디다스, 나이키, 반스 등 운동화 브랜드와 협업 제품을 출시했다. 이 중 나이키와는 2017년부터 지난 1월까지 약 2년에 걸쳐 같이 일했다. 나이키와 나이키 자매사인 컨버스 운동화 10종을 협업으로 선보였다.
오프화이트는 여러 업체와 공동 작업을 하지만 브랜드 정체성은 지킨다. 나이키와 함께 만든 운동화는 나이키 모델의 기본 모양을 살렸지만 곳곳에 오프화이트 특유의 글씨체 문구를 넣었다. 나이키 에어 제품엔 신발 옆쪽에 ‘에어’를, 나이키 로고 뒤편엔 ‘에어조던1’이 첫 출시된 해를 뜻하는 ‘85’를 새겼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마케팅에도 열심이다. 아블로 CEO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진 SNS가 가장 중요하다”며 “실제 제품을 구매하지 않더라도 SNS에서 보이는 브랜드 이미지를 소비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오프화이트는 나이키와 협업 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추첨 응모를 받았다. 제품 출시 정보를 본인 계정에 공유한 소비자에게만 당첨 기회를 주는 식으로 소비자가 스스로 제품을 홍보하게 유도했다. 작년 7월 이 방식을 통해 홍보한 ‘나이키 에어 프레스토 오프화이트’ 한정판은 SNS 언급 건수가 25만 건을 넘겼다. 이 한정판의 리셀(정식 유통채널이 아니라 판매자나 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한 뒤 재판매) 가격은 정가의 열 배 넘게 올랐다.
제품에 개념과 메시지 담아
아블로 CEO는 “제품을 파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제품을 그냥 파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제품에 개념이나 메시지를 더해 뭔가 특별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레디메이드 오프화이트’ 마케팅은 제품에 뭔가를 더해 판 좋은 예다. 1910년대 프랑스 예술가 마르셀 뒤샹이 변기와 술병걸이 등 기성품을 예술품으로 전시한 것에서 착안했다. 소비자 맞춤형 제품을 내놓는 대신 소비자가 오프화이트 제품을 사서 맞춤형으로 꾸미도록 이끈다.
아블로 CEO는 지난해 SNS에 흰색 운동화를 자기 멋대로 염색한 사진을 올리고 레디메이드 오프화이트라는 캠페인을 벌였다. 운동화 구매자들이 각자 개성에 맞게 신발을 염색하고 이를 예술품처럼 SNS에 자랑하면서 브랜드 입소문이 늘었다. 아블로 CEO는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소비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이제 옷을 사입는 일은 놀이에 가깝다”고 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