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VIP 취미 돕고 자녀 맞선 주선…'PB 집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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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사업가 김모씨는 최근 주거래 은행의 최우수고객(VVIP) 전용 프라이빗뱅킹센터를 찾았다. 조국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의 뉴스가 계기였다. 정 교수의 전담 프라이빗뱅커(PB)는 증거 인멸을 위해 사무실 PC를 옮길 때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PB가 어떤 존재길래 그런 개인적인 일까지 맡아 처리해주는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PB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과거에는 PB가 단순히 자산을 전담 관리해주는 역할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재테크부터 문화·여가생활까지 책임지는 ‘종합 집사’로 진화하고 있다는 게 금융권의 설명이다.
은행과 증권회사는 VVIP를 위한 PB 조직을 별도로 꾸리고 있다. 통상 은행은 30억원, 증권사에는 10억원가량의 자산을 맡기면 VVIP 대열에 오른다.
PB가 VVIP에게 제공하는 혜택은 ‘상상 이상’이다. 부동산·세무·법률을 포함한 금융 관련 상담은 기본이다. VVIP 자녀 간 1 대 1 만남을 주선하는가 하면, 각종 여가생활까지 돕는다. 경조사를 함께 챙기고 발품이 드는 잔심부름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VVIP의 격에 맞는 ‘토털 라이프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요즘 PB들의 목표”라고 말했다.
30억 맡기면 PB가 '특급 서비스'…자녀 숙제 돕고, 경매 대리 구매도
국민은행이 전국 프라이빗뱅커(PB)센터에서 굴리는 자산은 연 10조원 수준(지난해 기준)이다. 이 중 30%가량이 최우수고객(VVIP)에게서 나온다. 주요 은행이 VVIP를 유치하는 데 열을 올리는 이유다. ‘큰손’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느냐는 은행의 수익성을 재는 잣대다. 은행과 증권사는 이런 VVIP를 사로잡기 위해 ‘PB’라는 별동대를 운영한다.
은행 최우수고객(VVIP)가 되면 전담 프라이빗뱅커(PB)가 생긴다. PB는 평범한 은행 직원이 아니다. 자산관리 경력이 길고 성과가 우수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와 국제재무분석사(CFA) 자격증도 따야 한다. 자산관리 전문 교육을 비롯해 인성 교육까지 받은 PB만이 VVIP를 챙길 ‘자격’이 생긴다. VVIP를 상대하는 PB는 자산가의 금융비서 격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PB의 세계
국내 4대 은행(신한·국민·KEB하나·우리은행)은 VVIP 전담 조직을 따로 뽑아 관리한다. VVIP 전용센터 전담 PB는 신한은행이 128명으로 가장 많고 국민은행(99명), KEB하나은행(97명), 우리은행(52명) 순이다. PB 한 명이 평균 20명 안팎의 VVIP를 상대한다는 게 은행권 얘기다.
VVIP 고객과 전담 PB는 ‘상상 이상’으로 끈끈하다. 한 시중은행 PB팀장은 “VVIP와 자산관리 얘기만 하는 게 아니다”며 “집안 사정과 자녀교육 문제를 비롯한 사생활을 모두 터놓고 얘기할 정도로 친분을 쌓게 된다”고 말했다.
VVIP의 사정을 꿰뚫고 있기 때문에 금융 업무를 넘어서는 일을 챙기는 때도 종종 있다. VVIP가 상을 치를 때, 이사할 때 찾아가 거들고 자녀의 공부 및 숙제를 도와주기도 한다. 한 증권사 PB는 “전담 PB가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도와 PC를 옮겼다는 소식이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며 “고객과 가까운 PB라면 충분히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PB가 이토록 VVIP를 ‘밀착 관리’하는 것은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VVIP를 상대하는 PB들의 연봉은 수억원대로 알려졌다. 기본급에 성과에 따른 보너스가 더해지는 식이다. 은행마다 최상위급 PB 한 명이 관리하는 자산은 보통 수천억원에 달한다. 또 다른 PB는 “신뢰를 쌓아야 돈을 계속 맡기기 때문에 사소한 것까지 살뜰하게 챙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천차만별 특급 서비스
은행 자체적으로도 고액 자산가의 눈높이에 맞춰 매년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중은행 PB팀장은 “VVIP는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어지간한 사은품은 의미가 없다”며 “돈을 들여도 제대로 누리기 어려울 만한 서비스를 발굴하는 게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연상케 한다. 신한은행과 KEB하나은행은 VVIP의 자녀 중 미혼 남녀의 1 대 1 만남을 주선하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 커플매니저가 대면상담을 통해 최적의 상대를 추천해준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결혼정보업체의 고가 서비스 수준의 커플 매칭을 무료로 제공한다”며 “2006년부터 현재까지 이 서비스를 통해 39쌍이 결혼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VVIP 자녀를 대상으로 한 단체 미팅 서비스인 ‘신한PWM 2세스쿨’도 운영 중이다.
우리은행은 자녀 유학·해외 이민과 관련한 상담·대행 서비스를 해준다. 자녀를 유학 보내고 싶은 나라를 결정하면 은행이 대신 정보를 알아보고 계약·거래까지 도와준다. 출국을 결정하면 미리 현지 계좌를 개설하고 원하는 만큼 환전도 해놓는다.
VVIP에게 격식있는 여가 생활의 기회도 개설해준다. 연주회와 콘서트, 전시회 등은 기본. 고급 미술품 경매에 나올 물건을 미리 보여주기도 하고, 대리 구매를 해준다. 신한은행은 유명 여자 프로골프 선수(이정은)로부터 원포인트 레슨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도 마련했다.
VVIP 어떻게 선정하나
VVIP가 되려면 은행에 맡기는 돈이 최소 10억원 이상이어야 한다. VVIP 문턱이 가장 낮은 우리은행의 기준점이 10억원이다. 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은 30억원 이상 자산을 보유한 고객을 VVIP로 우대한다. 신한은행은 50억원 이상 초고자산가를 VVIP로, 3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은 고액자산가로 분류한다.
이들에게는 전용 PB센터를 이용하는 권한이 주어진다. 대부분 서울에 있는 VVIP 전용 PB센터는 건물 외관부터 고급스럽다. 세련된 디자인의 의자에 편의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VVIP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우대 문턱을 낮추는 곳도 있다. 신한은행은 1억원 이상 3억원 미만의 준자산가를 대상으로도 PB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미래 VVIP’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큰돈이 생기면 이 은행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심어둔다는 얘기다.
정지은/정소람 기자 jeong@hankyung.com
‘조국 사태’를 계기로 PB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과거에는 PB가 단순히 자산을 전담 관리해주는 역할에 머물렀다면, 최근에는 재테크부터 문화·여가생활까지 책임지는 ‘종합 집사’로 진화하고 있다는 게 금융권의 설명이다.
은행과 증권회사는 VVIP를 위한 PB 조직을 별도로 꾸리고 있다. 통상 은행은 30억원, 증권사에는 10억원가량의 자산을 맡기면 VVIP 대열에 오른다.
PB가 VVIP에게 제공하는 혜택은 ‘상상 이상’이다. 부동산·세무·법률을 포함한 금융 관련 상담은 기본이다. VVIP 자녀 간 1 대 1 만남을 주선하는가 하면, 각종 여가생활까지 돕는다. 경조사를 함께 챙기고 발품이 드는 잔심부름을 해주는 경우도 있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VVIP의 격에 맞는 ‘토털 라이프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요즘 PB들의 목표”라고 말했다.
30억 맡기면 PB가 '특급 서비스'…자녀 숙제 돕고, 경매 대리 구매도
국민은행이 전국 프라이빗뱅커(PB)센터에서 굴리는 자산은 연 10조원 수준(지난해 기준)이다. 이 중 30%가량이 최우수고객(VVIP)에게서 나온다. 주요 은행이 VVIP를 유치하는 데 열을 올리는 이유다. ‘큰손’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고 있느냐는 은행의 수익성을 재는 잣대다. 은행과 증권사는 이런 VVIP를 사로잡기 위해 ‘PB’라는 별동대를 운영한다.
은행 최우수고객(VVIP)가 되면 전담 프라이빗뱅커(PB)가 생긴다. PB는 평범한 은행 직원이 아니다. 자산관리 경력이 길고 성과가 우수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국제공인재무설계사(CFP)와 국제재무분석사(CFA) 자격증도 따야 한다. 자산관리 전문 교육을 비롯해 인성 교육까지 받은 PB만이 VVIP를 챙길 ‘자격’이 생긴다. VVIP를 상대하는 PB는 자산가의 금융비서 격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PB의 세계
국내 4대 은행(신한·국민·KEB하나·우리은행)은 VVIP 전담 조직을 따로 뽑아 관리한다. VVIP 전용센터 전담 PB는 신한은행이 128명으로 가장 많고 국민은행(99명), KEB하나은행(97명), 우리은행(52명) 순이다. PB 한 명이 평균 20명 안팎의 VVIP를 상대한다는 게 은행권 얘기다.
VVIP 고객과 전담 PB는 ‘상상 이상’으로 끈끈하다. 한 시중은행 PB팀장은 “VVIP와 자산관리 얘기만 하는 게 아니다”며 “집안 사정과 자녀교육 문제를 비롯한 사생활을 모두 터놓고 얘기할 정도로 친분을 쌓게 된다”고 말했다.
VVIP의 사정을 꿰뚫고 있기 때문에 금융 업무를 넘어서는 일을 챙기는 때도 종종 있다. VVIP가 상을 치를 때, 이사할 때 찾아가 거들고 자녀의 공부 및 숙제를 도와주기도 한다. 한 증권사 PB는 “전담 PB가 정경심 동양대 교수를 도와 PC를 옮겼다는 소식이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며 “고객과 가까운 PB라면 충분히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PB가 이토록 VVIP를 ‘밀착 관리’하는 것은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VVIP를 상대하는 PB들의 연봉은 수억원대로 알려졌다. 기본급에 성과에 따른 보너스가 더해지는 식이다. 은행마다 최상위급 PB 한 명이 관리하는 자산은 보통 수천억원에 달한다. 또 다른 PB는 “신뢰를 쌓아야 돈을 계속 맡기기 때문에 사소한 것까지 살뜰하게 챙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천차만별 특급 서비스
은행 자체적으로도 고액 자산가의 눈높이에 맞춰 매년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중은행 PB팀장은 “VVIP는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어지간한 사은품은 의미가 없다”며 “돈을 들여도 제대로 누리기 어려울 만한 서비스를 발굴하는 게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연상케 한다. 신한은행과 KEB하나은행은 VVIP의 자녀 중 미혼 남녀의 1 대 1 만남을 주선하는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전문 커플매니저가 대면상담을 통해 최적의 상대를 추천해준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결혼정보업체의 고가 서비스 수준의 커플 매칭을 무료로 제공한다”며 “2006년부터 현재까지 이 서비스를 통해 39쌍이 결혼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은 VVIP 자녀를 대상으로 한 단체 미팅 서비스인 ‘신한PWM 2세스쿨’도 운영 중이다.
우리은행은 자녀 유학·해외 이민과 관련한 상담·대행 서비스를 해준다. 자녀를 유학 보내고 싶은 나라를 결정하면 은행이 대신 정보를 알아보고 계약·거래까지 도와준다. 출국을 결정하면 미리 현지 계좌를 개설하고 원하는 만큼 환전도 해놓는다.
VVIP에게 격식있는 여가 생활의 기회도 개설해준다. 연주회와 콘서트, 전시회 등은 기본. 고급 미술품 경매에 나올 물건을 미리 보여주기도 하고, 대리 구매를 해준다. 신한은행은 유명 여자 프로골프 선수(이정은)로부터 원포인트 레슨을 받을 수 있는 이벤트도 마련했다.
VVIP 어떻게 선정하나
VVIP가 되려면 은행에 맡기는 돈이 최소 10억원 이상이어야 한다. VVIP 문턱이 가장 낮은 우리은행의 기준점이 10억원이다. 국민은행과 KEB하나은행은 30억원 이상 자산을 보유한 고객을 VVIP로 우대한다. 신한은행은 50억원 이상 초고자산가를 VVIP로, 3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은 고액자산가로 분류한다.
이들에게는 전용 PB센터를 이용하는 권한이 주어진다. 대부분 서울에 있는 VVIP 전용 PB센터는 건물 외관부터 고급스럽다. 세련된 디자인의 의자에 편의시설까지 갖추고 있다.
VVIP 혜택을 볼 수 있도록 우대 문턱을 낮추는 곳도 있다. 신한은행은 1억원 이상 3억원 미만의 준자산가를 대상으로도 PB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미래 VVIP’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큰돈이 생기면 이 은행에 넣어야겠다’는 생각을 심어둔다는 얘기다.
정지은/정소람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