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적용 일주일 남았지만 '눈치보기'에 대부분 노사합의는 불발
예산부족에 근무시간 손으로 쓰기도…연구자 자율성 제약·성과 저하 우려


정책팀 = 국책 연구기관의 주 52시간제 본격 적용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노사합의는 지연되고 한정된 예산 탓에 시스템도 구축하지 못하면서 현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주 52시간제 도입과 함께 연구직에 대한 근무시간 관련 통제가 심해질 것에 대한 우려는 물론 일률적인 근로시간 단축이 연구직 특성에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구는 제조업이 아닌데…" 근로시간 단축 앞두고 국책硏 진통
22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산하 연구기관과 공공연구노동조합 등에 따르면 다음달 1일로 예정된 주 52시간제 본격 적용을 놓고 연구기관 상당수가 노사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원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가장 큰 쟁점 사항은 근무자 자율성 침해 문제다.

부처 자문회의나 연구용역, 현장 조사가 많은 연구직의 특성상 외부활동이 많고, 출퇴근 시간도 자유로운 편이다.

하지만 주 52시간제를 본격 적용하면 출퇴근을 포함한 근무시간 관리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연구기관들도 주 52시간제 도입 노사협의 테이블에 연구성과 평가와 근무시간 관리 등을 강화하는 방안을 올려놓고 있다.

정상협 공공연구노동조합 정책국장은 "자율성을 주려고 도입한 제도가 오히려 연구자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며 "출퇴근 시간이나 외출 기록이 모두 남고 업무 및 연구 평가가 엄격해지는 부분 등이 우려된다"고 설명했다.
"연구는 제조업이 아닌데…" 근로시간 단축 앞두고 국책硏 진통
정부는 연구직에 주 52시간제를 도입하는 것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업무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연구개발업이 근로시간이 길지 않은 것으로 나왔다"며 "연구용역 막바지에 일시적으로 근로시간이 긴 것은 있지만 실제로는 야근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현장의 목소리는 이와 다르다.

A 연구원 관계자는 "연구직은 근로시간을 딱 정해서 하는 업무가 아니고 연구를 밤에 하든 주말에 하든 상관없이 업무량만 맞추면 됐다"라며 "그동안 출퇴근 제재도 하지 않았고 야근 수당도 없었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할지가 문제"라고 설명했다.

B 연구원 연구위원은 "3교대로 돌아가는 제조업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가 유의미하겠지만 이를 모든 직종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정부에서 당장 하루 이틀 안에 자료를 요청하는 경우도 있는데 52시간제가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논란 속에 연구기관들이 선뜻 나서지 않고 눈치를 보면서 노사합의가 막판까지 안 되고 있는 셈이다.

정상협 정책국장은 "지난해부터 (도입 일정은) 알려진 것이었고 충분히 논의 시간이 있었는데도 (사용자 측이) 늑장을 부렸다"며 "계도기간이 끝날 때까지 안을 제대로 주지 않다가 이제는 통제가 심해지는 근무조건만 가져오고 합의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A 연구원 관계자는 재량 근무제를 도입하더라도 연구직에 적용할지, 일정 직급이나 연구책임자에 한정할지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기관들도 다들 눈치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연구는 제조업이 아닌데…" 근로시간 단축 앞두고 국책硏 진통
노동시장 연구 전문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마저도 관련 노사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정부 용역으로 정부 산하 연구기관 특성에 맞는 주 52시간제 관련 연구를 진행 중이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52시간제 도입 방안은 마련하지 못한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노동연구원 노동조합 관계자는 "사측이 특정 직군에 대해서만 재량 근로를 적용하려고 해 논의가 거의 멈춘 상태"라며 "기형적인 재량근로제일 뿐만 아니라 '성실 근로의 의무'를 주겠다며 출퇴근도 하라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노동연구원이 모범적으로 선도해야 하는 입장인데 특정 직군만 차별적인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구성원 갈등을 불러일으킨다"고 덧붙였다.

한편 주52시간제 관련 예산이 없는 탓에 근무시간을 전산으로 입력하지 못하고 손으로 써야 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

C 연구원 관계자는 "따로 예산이 없는데 (근무관리) 시스템 가격은 4천만∼5천만원 선이라서 당장 도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현재는 유연근무제인 경우 수기로 쓰고 있는데 인원수가 많지 않아 관리가 가능하지만, 전 직원이 한꺼번에 수기로 작성할 경우 관리에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