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자료 달랑 두쪽·브리핑도 절제…용의자 신상공개에도 소극적

최악의 미제사건이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실마리를 풀었다고 19일 경찰이 발표하던 순간, 언론에 배포된 보도자료는 달랑 두쪽짜리였다.

언론 브리핑 후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경찰은 공치사를 하기 보다는 쏟아지는 취재진의 질문에 대부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지나치리만큼 말을 아꼈다.
경찰, 화성사건 '큰 건' 하고도 말조심…피의사실공표 의식 탓?
경찰이 조국 법무장관 가족 사건과 관련된 일련의 '소나기' 언론 보도 이후 여권과 검찰 사이에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한 '피의사실 공표' 문제를 의식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이번 사건 수사는 일찌감치 함구령이 내려졌다.

배용주 경기남부경찰청장이 직접 "적절한 시점 이전에 언론에 보도되거나 주위에 알려진다면 유출자를 반드시 찾겠다"고 엄포를 놓았을 정도라고 한다.

이로 인해 최근 두세달 동안 경기남부청에선 극히 일부의 수사팀만 상황을 공유하면서 '스텔스 수사'를 해 왔다는 후문이다.

전산화하지 않은, 즉 수기로 작성된 수사 서류를 가져와 들춰보는 것도 옆 사무실 동료들이 모르게 할 정도로 극비리에 진행됐다는 것이다.

18일 저녁 갑작스러운 언론 보도로 떼밀리듯 다음날 오전 브리핑까지 열게 된 경찰은 사건의 파문이나 의미에 견주어 빈약할 정도인 21줄로 보도자료를 채우는 데 그쳤으며, '역사적인 개가'를 적극적으로 홍보해도 이상하지 않을 마당에 질의응답에서마저 함구에 가까운 절제를 보였다.

물론 용의자 A(56)씨의 DNA가 범행현장 3곳의 증거물 흔적과 일치한다는 것 외엔 자백, 사건 생존자 확인 조사 등이 이뤄지지 않은 탓에 '갈 길이 멀어서' 경찰이 말을 아낄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피의사실 공표 문제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었을 거라는 게 경찰 안팎의 분석이다.

그래서 심지어 언론에 실명으로까지 대서특필된 A씨의 신상도 개인정보보호를 이유로 들어 밝히지 않았다.

'최대의 서비스'는 성이 이씨임을 확인한 것이 전부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 듯 상당수 주요언론도 A씨를 실명 대신에 이모씨, 이아무개씨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 관계자는 "공소시효 만료로 기소도 할 수 없는 사건과 관련해 피의사실 공표 문제의 대상이 된다면 초대형 사건을 해결하고도 구설에 오를 수 있다고 판단해 말을 아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