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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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히 일해서 모은 돈과 차곡차곡 쌓은 청약통장으로 아파트에 당첨이 된다. 그리고 낮은 금리에 대출의 힘을 보태 내 집 마련을 한다. 이 과정과 규칙은 이미 정해져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시작조차 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성실히 모은 돈으로 마련할 집값의 문턱은 높고, 새로 대출을 받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요건이 필요해서다.

지난해 정부가 내놓은 9·13대책에 대출규제가 포함되면서 무주택자들의 내 집 마련은 더욱 어려워졌다. 집값은 뛰는데 빌릴 돈은 줄어들었으니 당연한 분위기다. 부동산114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13대책 이후 1년간 거래된 서울지역 아파트 실거래가격은 평균 7억5814만원이었다. 9·13대책 이전 1년 평균 실거래가(6억6603만원)보다 13.8% 상승했다.

내 집 마련의 기회는 대출이 필요없는 여유있는 사람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그래서 궁금했다. 전세금을 빼지 않고 대출없이 10억원을 조달할 수 있는 30대는 누구일까? 지난 20일 문을 연 '래미안 라클래시' 모델하우스에는 이러한 30~40대의 젊은 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여러 커플들이 있었다. 노부부, 친정엄마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 젊은 부부…. 어르신들은 무주택 자녀들을 위해 미리 둘러보거나 함께 알아보기 위해 발걸음을 했다.

의사 아들을 둔 어머니는 며느리와 모델하우스를 찾았다. 아들은 일만 하지 집에는 관심이 없단다. 병원 가까이에 있는 청담동에서 부부와 애들이 월세로 지내다가 이제 손주들이 학교갈 때가 되니 아파트 하나 사야겠다는 것이었다.
서울 삼성동 상아아파트2차 주택재건축정비사업 부지에 삼성물산이 건설하는 '래미안 라클래시' 모델하우스 모습. (자료 한경DB)
서울 삼성동 상아아파트2차 주택재건축정비사업 부지에 삼성물산이 건설하는 '래미안 라클래시' 모델하우스 모습. (자료 한경DB)
친정 부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같이 살고 있는 딸도 엄마와 모델하우스를 찾았다. 친정과 가까운 새 집을 찾다가 과천까지 가봤던 얘기도 전했다. 여윳돈이 그리 많지 않다보니 과천에 집을 살까 했다고, 그러다가 '과천 집값에 삼성동에서 분양받을 수 있으니 당연히 왔다'고 말했다.

그랬다. 궁금했던 30대는 자수성가 보다는 여유있는 집에서 자라온 30대들이었다. 일반 서민들에게 로또 아파트의 기회는 애시당초 태어날 때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어찌됐건 당첨되는 이들은 분양가 상한제 덕을 보게 된다.

강남구 삼성동 상아아파트 2차를 재건축하는 래미안 라클래시는 분양가 상한제 시행으로 후분양에서 선분양으로 변경한 단지다. 679가구 중 112가구가 일반분양되는데, 특별공급없이 모두 일반공급에 통장 점수로 당락이 결정된다. 평균 분양가는 3.3㎡당 4750만원대로, 전용 84㎡는 16억원대다. 주변 아파트와 비교하면 최소 5억원에서 10억원까지 차이가 난다. 당장만 봐도 '로또'인데, 향후 시세가 상승한다면 로또금액은 더 벌어질 수 있다.

로또까지는 아니더라도 집값이 뛰기 전에 대출로 집을 샀던 사람들에게 최근 희소식이 전해졌다. 정부가 나서서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을 최저 연 1%대 고정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는 상품을 내놓은 것이다. 바로 서민형 안심전환대출이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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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한도인 20조원으로 오는 29일까지 신청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신청을 받은 지 8일 만인 23일 신청액 약 26조원을 넘어섰다.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이 대환상품을 두고 말이 많다. 신청하기 위한 시스템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지적은 물론 고정금리 대출자에 대한 역차별이나, 주택금액 9억원을 상한선으로 둔 점 등이다.

어찌보면 무주택자들에게는 이마저도 부럽다. 고정금리 대출이라도 여하튼 내집이 있다는 얘기니 말이다. 전세자금 대출은 신용대출로 아예 리스트에 오르지도 못했다. 무주택자들은 과거처럼 집을 늘려가기도 쉽지 않다. 방 1칸짜리 집에서 2칸으로 3칸으로…. 가족이 늘어나면서 집의 면적을 키웠던 과거와는 다르다. 정부가 사실상 1주택자에게만 혜택을 몰아주고 있다보니, 첫 집을 마련은 곧 평생 살집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니 '새 아파트 30평대'가 인기를 끌 수 밖에 없다.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로 집값을 잡겠다고 나섰다. 이제 무주택자들은 분양가 상한제로 나오는 집을 놓고 '청약하고 기도'하는 일을 반복해야 한다. 그나마 충분히 집이 나온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살고 있는 전셋집은 전세계약을 한번 더 갱신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한다고 한다. 4년 같은 집에 전세로 살면 뭐가 달라지랴. 그래 그건 있을 수 있다. 무주택 기간이랑 청약통장 점수 정도가 많이 쳐서 4점은 올라가겠다. 하늘에서 내집이라는 동아줄을 내려달라는 게 아니다. 무주택자들에겐 '시작'이라도 해볼 수 있는 공급이라는 '기회'와 '대출'의 힘이 필요하다.

김하나 한경닷컴 기자 ha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