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추락하는 신뢰는 날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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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형 경제 딛고
지도에 없는 길 가야 하는데
'촛불'의 초심 간데없고
오만과 독선의 행태뿐
개혁에는 '신뢰'가 중요
미래세대에 등 돌려선 안 돼
최병일 < 이화여대 교수·한국국제경제학회장 >
지도에 없는 길 가야 하는데
'촛불'의 초심 간데없고
오만과 독선의 행태뿐
개혁에는 '신뢰'가 중요
미래세대에 등 돌려선 안 돼
최병일 < 이화여대 교수·한국국제경제학회장 >
지난 봄 학기가 절반쯤 지날 때였다. 평소 열심히 수업에 참여했던 한 학생이 찾아왔다. 휴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더 이상 수업을 들을 수 없다고 했다. 공공기관 인턴으로 채용돼 당장 일을 시작해야 해서 휴학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달만 지나면 졸업하는 그에겐 이력서에 쓸 인턴 경력 한 줄이 두 달간의 모든 수업보다 더 중요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압축성장으로 기적의 역사를 쓴 대한민국. 선진 산업국가 따라잡기 추격형 경제 운영으로 선진국에 진입한 대한민국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면서부터 방향을 상실했다. 이젠 지도에 없는 길을 가야 하는 대한민국. 그 대한민국의 주인공인 2030 세대는 불안하다. 지금까지 올라가기만 했던 부모 세대와 달리 자신의 미래에 그런 상승은 어림도 없는 듯해서다.
추격형 국가 운영으로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룬 한국이 길을 잃은 이유는 서구 선진국에 비해 제도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란 것이 국내외 많은 전문가의 분석이다. 무엇보다 정치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다. 그 부족한 신뢰는 여간해선 생겨나지도, 축적되지도 않는다.
국민소득 2만달러에 진입한 2006년부터 한국 사회의 담론은 ‘사다리 없는 사회’였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8년 한국은 국민소득 3만달러 사회에 진입했지만, 2030 세대의 현실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은 더 커졌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게 만드는 ‘삼포 세대’, 부모의 경제 수준이 자식의 학력과 경제 수준을 결정한다는 ‘흙수저’ ‘금수저’의 수저론까지 등장했다. 서울대 합격을 좌우하는 것은 수험생의 능력이 아니라 부모의 경제력이란 연구 결과까지 등장한 마당에, 기득권이 말로만 기회균등, 공정한 경쟁을 외쳐 신뢰를 더욱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제대로 된 인턴 자리 하나 구하기도 어려운 학생들, 인턴을 하기 위해 휴학까지 감수하는 그들에게는 인턴 이름만 걸어놓고 대학총장 표창장을 받아내고, 인턴 며칠 하고 과학논문에 제1저자로 버젓이 이름 올리는 상황은 ‘다른 나라 사람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 부모 세대의 경제력, 위세, 담합이 만들어낸 부조리, 불의 앞에 한국 사회의 미래는 무너지고 있다.
이번 여름을 유난히 무덥고 짜증나게 했던, 현재 진형형의 ‘조국 사태’는 좌우를 막론한 기성정치가 한국 사회에 부족한 신뢰라는 소중한 사회자본을 고갈시키고 있다. 다른 멋진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과 의지가 충만한 것처럼 보였던 정부에서 벌어지는 일탈과 폭주 사태다.
2016년 겨울을 뜨겁게 달군 광장의 촛불 시위. “이게 나라냐”고 외쳤던 국민은 “이런 나라를 만들려고 했나” 하는 자괴감에 빠져 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공정함이 가을하늘처럼 투명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2030 세대에 “이니 마음대로 해봐”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집권 3년차인 지금, 국정농단의 어두움을 대낮처럼 밝혀 추방했던 촛불의 정신은 독점됐고 모독됐다.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거꾸로 촛불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 처했다. 기득권을 이용해 불법과 편법으로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다른 경쟁자를 밟고 지나가는 행태를 보인 자들인데도 자신만이 개혁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런 오만과 독선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달을 가리켰는데 달은 보지 않고 가리키는 사람의 손가락을 본다고 했던가. 메시지가 아무리 훌륭해도 메신저를 신뢰할 수 없으면 소용없는 일. 혁명보다 더 어렵다는 개혁을 해내려면 그 개혁가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함은 불문가지다. 신뢰받지 못하는 개혁은 저항과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는 그냥 말뿐이었던가. 분노와 좌절이 대한민국을 마비시키고 있다. 투표자 41%의 지지를 받아 선출된 권력이 이토록 오만하고 독선적일 수 있을까. ‘내로남불’의 진영논리가 판치고 있다. 나라가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이리저리 휘둘리거나 말거나 “빨간불도 같이 건너면 안전하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지도에 없는 길을 가야 하는 대한민국. 그 미래의 주역인 2030 세대는 두 번째 배반의 정치에 분노하고 있다. 그들은 외친다. “제 맘대로는 이제 그만.”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압축성장으로 기적의 역사를 쓴 대한민국. 선진 산업국가 따라잡기 추격형 경제 운영으로 선진국에 진입한 대한민국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면서부터 방향을 상실했다. 이젠 지도에 없는 길을 가야 하는 대한민국. 그 대한민국의 주인공인 2030 세대는 불안하다. 지금까지 올라가기만 했던 부모 세대와 달리 자신의 미래에 그런 상승은 어림도 없는 듯해서다.
추격형 국가 운영으로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룬 한국이 길을 잃은 이유는 서구 선진국에 비해 제도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이란 것이 국내외 많은 전문가의 분석이다. 무엇보다 정치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다. 그 부족한 신뢰는 여간해선 생겨나지도, 축적되지도 않는다.
국민소득 2만달러에 진입한 2006년부터 한국 사회의 담론은 ‘사다리 없는 사회’였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18년 한국은 국민소득 3만달러 사회에 진입했지만, 2030 세대의 현실에 대한 불만과 미래에 대한 불안은 더 커졌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게 만드는 ‘삼포 세대’, 부모의 경제 수준이 자식의 학력과 경제 수준을 결정한다는 ‘흙수저’ ‘금수저’의 수저론까지 등장했다. 서울대 합격을 좌우하는 것은 수험생의 능력이 아니라 부모의 경제력이란 연구 결과까지 등장한 마당에, 기득권이 말로만 기회균등, 공정한 경쟁을 외쳐 신뢰를 더욱 바닥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제대로 된 인턴 자리 하나 구하기도 어려운 학생들, 인턴을 하기 위해 휴학까지 감수하는 그들에게는 인턴 이름만 걸어놓고 대학총장 표창장을 받아내고, 인턴 며칠 하고 과학논문에 제1저자로 버젓이 이름 올리는 상황은 ‘다른 나라 사람 이야기’처럼 들린다. 그 부모 세대의 경제력, 위세, 담합이 만들어낸 부조리, 불의 앞에 한국 사회의 미래는 무너지고 있다.
이번 여름을 유난히 무덥고 짜증나게 했던, 현재 진형형의 ‘조국 사태’는 좌우를 막론한 기성정치가 한국 사회에 부족한 신뢰라는 소중한 사회자본을 고갈시키고 있다. 다른 멋진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과 의지가 충만한 것처럼 보였던 정부에서 벌어지는 일탈과 폭주 사태다.
2016년 겨울을 뜨겁게 달군 광장의 촛불 시위. “이게 나라냐”고 외쳤던 국민은 “이런 나라를 만들려고 했나” 하는 자괴감에 빠져 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공정함이 가을하늘처럼 투명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은 2030 세대에 “이니 마음대로 해봐”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냈다.
집권 3년차인 지금, 국정농단의 어두움을 대낮처럼 밝혀 추방했던 촛불의 정신은 독점됐고 모독됐다. 촛불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는 거꾸로 촛불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 처했다. 기득권을 이용해 불법과 편법으로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다른 경쟁자를 밟고 지나가는 행태를 보인 자들인데도 자신만이 개혁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런 오만과 독선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달을 가리켰는데 달은 보지 않고 가리키는 사람의 손가락을 본다고 했던가. 메시지가 아무리 훌륭해도 메신저를 신뢰할 수 없으면 소용없는 일. 혁명보다 더 어렵다는 개혁을 해내려면 그 개혁가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함은 불문가지다. 신뢰받지 못하는 개혁은 저항과 반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는 그냥 말뿐이었던가. 분노와 좌절이 대한민국을 마비시키고 있다. 투표자 41%의 지지를 받아 선출된 권력이 이토록 오만하고 독선적일 수 있을까. ‘내로남불’의 진영논리가 판치고 있다. 나라가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이리저리 휘둘리거나 말거나 “빨간불도 같이 건너면 안전하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지도에 없는 길을 가야 하는 대한민국. 그 미래의 주역인 2030 세대는 두 번째 배반의 정치에 분노하고 있다. 그들은 외친다. “제 맘대로는 이제 그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