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이춘재(오른쪽)가 1994년 경찰조사를 받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이춘재(오른쪽)가 1994년 경찰조사를 받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사건 유력 용의자로 지목된 이모 씨가 30년 전에도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사실이 알려졌다.

25일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1987년 5월 9일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 한 야산에서 6차 사건 피해자 박모(당시 29세) 씨가 발견된 후 용의자로 추정됐다. 당시 경찰은 이 씨와 관련한 주변 진술 등을 통해 "유력한 용의자로 보이는 인물이 있다"며 지휘부에 보고까지 한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당시 과학수사 기술의 한계로 현장에서 확보한 체액 등 증거물이 이 씨와 일치하는지 확인할 수 없었고, 이전까지 확보한 증거물로 유치한 용의자의 혈액형과 이 씨의 혈액형이 달랐다는 점, 족적 또한 일치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수사 선상에서 제외됐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몽타주 /사진=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몽타주 /사진=연합뉴스
당시 수사에 활용된 과학기술은 혈흔을 분석하고 혈액형을 파악하는 정도였다. 당시 경찰이 추정한 용의자의 혈액형은 B형이었고, 이 씨는 O형이었다.

화성연쇄살인사건 중 모방범죄로 드러난 8차 범행을 제외한 나머지 9차례 범행이 모두 이모 씨의 본가가 있던 진가리 반경 10km에서 이뤄졌다. 2·6차 사건은 이씨의 본적지인 태안읍 진안리에서 피해자들의 시신이 발견됐고, 1·3차 사건은 이 씨가 일했던 태안읍 안녕리 전기설비공장 근방에서 발생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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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씨는 1994년 처제를 성폭행 후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받기 전 강도예비와 폭력 등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청주 경찰은 이 씨의 화성 본가를 압수수색까지 했다.

그럼에도 이 씨가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되지 않았던 이유 역시 혈액형 때문으로 추정되고 있다. 청주 경찰에게 화성 연쇄살인사건 수사 팀이 "화성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직접 데려가라"고 답하자 더이상 수사를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조사했던 경찰들도 이 씨를 기억하지 못했다. 당시 경찰은 205만을 동원해 2만1280명을 수사했다.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3000여 명이었고, "누명을 썼다"며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람도 4명이나 됐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대상자가 워낙 많았고 이 가운데 용의자로 의심받은 사람도 이 씨 한 사람이 아니어서 이를 일일이 기억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언론에 알려진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관 외에 이 씨를 기억하거나 이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한 사람들을 찾았다"고 말했다.

경찰이 집착했던 B형 혈액형은 잘못된 정보로 드러났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이 7월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의 의뢰로 화성의 현장증거물을 조사한 결과 사건 당시 물품에서 채취된 성분의 혈액형은 O형이었다. 국과수 관계자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 피해자의 감정물에서 오염되지 않는 순수한 용의자의 DNA를 분리했다"며 "용의자의 혈액형이 O형으로 나왔다"고 말해 이 씨가 범인일 가능성은 더욱 높아졌다.

당시 B형이 나왔던 이유에 대해서는 시료 체성분이 오염됐거나 혼합됐을 가능성을 배제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DNA 검사 결과 등을 토대로 1994년 1월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해 부산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 중인 A(56) 씨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하고 관련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DNA 검사 결과 등을 토대로 1994년 1월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해 부산교도소에서 무기수로 복역 중인 A(56) 씨를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특정하고 관련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편은 경찰은 지난 20일까지 총 3차례 이 씨와 대면 조사를 진행했다. 이 씨는 "하는 화성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화성연쇄살인사건 외에 같은 기간 태안읍 일대에서 발생한 7건의 성폭행 사건도 이 씨가 저질렀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해 진행 중이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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