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해석 가능한 역사…끊임없이 묻고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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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역사를 배워야 할까?
샘 와인버그 지음 / 정종복·박선경 옮김
휴머니스트 / 300쪽 / 1만7000원
샘 와인버그 지음 / 정종복·박선경 옮김
휴머니스트 / 300쪽 / 1만7000원
요즘 아이들이 역사를 모른다는 기성세대의 인식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미국 의회는 ‘미국사 교육(TAH) 프로그램’을 개발, 실행, 강화하는 데 5000만달러를 지원하도록 2000년 교육비 예산에 포함시켰다. 그해 6월 발간된 미국대학재단이사 및 동문협의회(ACTA)의 보고서 ‘잃어버린 미국의 기억: 21세기의 역사적 문맹’이 도화선이 됐다. 한마디로 학생들의 역사 지식이 형편없고, 그 결과 미국인들이 공유해온 기억이 붕괴되고 시민적 유대감이 느슨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미국사 TAH 프로그램’은 미국사에 대한 교사들의 지식, 이해, 적용 능력을 증진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향상시키는 걸 목표로 삼았다. 2010년까지 10억달러가 TAH 예산으로 투입됐지만 학생들의 학업성취 효과는 검증되지 않았다. 다양한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교재로 공부하고 선다형 시험으로 평가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역사를 배워야 할까?>는 역사교육의 권위자인 샘 와인버그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학생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책이다. 책 제목이 ‘왜 배워야 할까’인 것은 역사 수업, 역사 공부의 목표가 단지 지식을 암기하는 데 있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선다형 시험으로 그 결과를 평가하는 것으로는 역사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를 이끌어낼 수 없다. 교과서는 공부를 시작하는 마중물일 뿐, 학생들로 하여금 1차 사료를 읽으며 교과서의 해석에 문제를 제기하고 같은 사건을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짜 정보가 넘쳐나는 디지털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2015년 스탠퍼드대 연구팀이 미국 12개 주의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78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중학생의 82%는 광고성 기사와 실제 기사를 구별하지 못했다. 후원자가 드러내지 않은 채 특정 목적에 맞는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의 실체를 알아챈 대학생은 10%도 되지 않았다. 역사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사이비 학자들이 각주와 조작한 이미지로 그럴듯하게 만든 ‘가짜 역사’가 흘러넘친다. 저자는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와 교과서 집필자까지도 가짜 역사의 희생양으로 전락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역사적 사실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고’를 통해 이런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말하는 ‘역사적 사고’의 핵심은 의문을 품는 것이다. 그러려면 ‘역사가처럼’ 텍스트를 읽어야 한다. 역사가들은 주어진 텍스트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출처 확인, 맥락화, 증거 사용, 확정 등의 과정을 거친다.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맥락을 이해하고, 편견을 찾아내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역사적 사고 능력이다.
저자가 개발한 ‘중요한 역사적 사고’라는 이름의 웹사이트는 이 같은 ‘역사적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이 웹사이트에서는 학생이 어떤 문헌을 찾았을 때 역사가들이 그 문헌을 읽고 논평하는 영상이 실시간으로 재생된다. 단어의 정의, 모호한 참고문헌에 대한 설명도 음성파일로 담겨 있다. 역사가와 교육 전문가의 추가설명도 제공해 더 넓은 맥락에서 이해하도록 돕는다. 교육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학생들은 의심하고 토론하는 역사 공부를 즐거워했고, 쉽다고 여겼다.
책에는 흥미로운 사례가 실려 있다. 저자는 수천 명의 중·고등학생에게 20세기 초반 그려진 ‘1621년 첫 추수감사절’이란 그림을 보여줬다. 레이스 앞치마를 두른 여인이 상의를 입지 않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칠면조 요리를 대접하는 그림이었다. 저자는 이 그림을 역사가들이 1621년 왐파노아그족과 청교도 정착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하는 데 자료로 쓸 수 있을지 물었다.
답은 둘로 갈렸다. 추수감사절을 축제로 생각하는 학생들은 이 삽화가 유용하다고 했고, 정착민과 원주민 사이의 호의에 의심을 품은 학생들은 이 그림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사건과 삽화가 그려진 시기 사이에 약 300년의 시차가 있음을 알고 화가의 동기나 지식에 의문을 제기한 학생은 10%에 불과했다.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배제한 교과서와 교재는 물론 특정 이념, 주장에 대한 맹신은 요주의 대상이다. 그런 예로 저자는 미국의 진보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베스트셀러 <미국민중사>를 든다. 이 책은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미국 역사의 진보에 대한 내러티브를 바로잡는 ‘반(反)교과서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하워드 진은 자료를 충실히 연구하지 않고 2차 사료에만 의존했으며, 새롭게 드러난 증거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답만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대립하는 두 개의 내러티브가 만나게 되면 역사는 유럽 축구 무대로 변하게 된다”며 “역사에 대한 근거없는 확신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또한 “진실이라고 여기는 좌나 우의 이분법적 역사는 회색지대를 혐오하고,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같은 것을 보고 다른 결론을 낼 수 있다는 민주적 통찰력을 깔아뭉갠다”고 강조한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올바른 역사 공부를 경험하지 못한 성인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이에 따라 ‘미국사 TAH 프로그램’은 미국사에 대한 교사들의 지식, 이해, 적용 능력을 증진해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를 향상시키는 걸 목표로 삼았다. 2010년까지 10억달러가 TAH 예산으로 투입됐지만 학생들의 학업성취 효과는 검증되지 않았다. 다양한 역사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교재로 공부하고 선다형 시험으로 평가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왜 역사를 배워야 할까?>는 역사교육의 권위자인 샘 와인버그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학생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제시하는 책이다. 책 제목이 ‘왜 배워야 할까’인 것은 역사 수업, 역사 공부의 목표가 단지 지식을 암기하는 데 있지 않다는 걸 말해준다.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선다형 시험으로 그 결과를 평가하는 것으로는 역사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를 이끌어낼 수 없다. 교과서는 공부를 시작하는 마중물일 뿐, 학생들로 하여금 1차 사료를 읽으며 교과서의 해석에 문제를 제기하고 같은 사건을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짜 정보가 넘쳐나는 디지털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2015년 스탠퍼드대 연구팀이 미국 12개 주의 중·고등학생과 대학생 78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중학생의 82%는 광고성 기사와 실제 기사를 구별하지 못했다. 후원자가 드러내지 않은 채 특정 목적에 맞는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의 실체를 알아챈 대학생은 10%도 되지 않았다. 역사 콘텐츠도 마찬가지다. 사이비 학자들이 각주와 조작한 이미지로 그럴듯하게 만든 ‘가짜 역사’가 흘러넘친다. 저자는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와 교과서 집필자까지도 가짜 역사의 희생양으로 전락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역사적 사실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고’를 통해 이런 위험을 방지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말하는 ‘역사적 사고’의 핵심은 의문을 품는 것이다. 그러려면 ‘역사가처럼’ 텍스트를 읽어야 한다. 역사가들은 주어진 텍스트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출처 확인, 맥락화, 증거 사용, 확정 등의 과정을 거친다.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맥락을 이해하고, 편견을 찾아내고,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역사적 사고 능력이다.
저자가 개발한 ‘중요한 역사적 사고’라는 이름의 웹사이트는 이 같은 ‘역사적 사고’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이 웹사이트에서는 학생이 어떤 문헌을 찾았을 때 역사가들이 그 문헌을 읽고 논평하는 영상이 실시간으로 재생된다. 단어의 정의, 모호한 참고문헌에 대한 설명도 음성파일로 담겨 있다. 역사가와 교육 전문가의 추가설명도 제공해 더 넓은 맥락에서 이해하도록 돕는다. 교육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학생들은 의심하고 토론하는 역사 공부를 즐거워했고, 쉽다고 여겼다.
책에는 흥미로운 사례가 실려 있다. 저자는 수천 명의 중·고등학생에게 20세기 초반 그려진 ‘1621년 첫 추수감사절’이란 그림을 보여줬다. 레이스 앞치마를 두른 여인이 상의를 입지 않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칠면조 요리를 대접하는 그림이었다. 저자는 이 그림을 역사가들이 1621년 왐파노아그족과 청교도 정착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사하는 데 자료로 쓸 수 있을지 물었다.
답은 둘로 갈렸다. 추수감사절을 축제로 생각하는 학생들은 이 삽화가 유용하다고 했고, 정착민과 원주민 사이의 호의에 의심을 품은 학생들은 이 그림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사건과 삽화가 그려진 시기 사이에 약 300년의 시차가 있음을 알고 화가의 동기나 지식에 의문을 제기한 학생은 10%에 불과했다.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배제한 교과서와 교재는 물론 특정 이념, 주장에 대한 맹신은 요주의 대상이다. 그런 예로 저자는 미국의 진보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베스트셀러 <미국민중사>를 든다. 이 책은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미국 역사의 진보에 대한 내러티브를 바로잡는 ‘반(反)교과서적 성격’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하워드 진은 자료를 충실히 연구하지 않고 2차 사료에만 의존했으며, 새롭게 드러난 증거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답만 제시한다는 점에서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대립하는 두 개의 내러티브가 만나게 되면 역사는 유럽 축구 무대로 변하게 된다”며 “역사에 대한 근거없는 확신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또한 “진실이라고 여기는 좌나 우의 이분법적 역사는 회색지대를 혐오하고,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같은 것을 보고 다른 결론을 낼 수 있다는 민주적 통찰력을 깔아뭉갠다”고 강조한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올바른 역사 공부를 경험하지 못한 성인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