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마흔둘에 '맨손 창업'…19년 만에 세계 바이오 시장 판 바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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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경영상
창업경영인 부문 -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수많은 실패가 유일한 자산
신체포기각서 쓰고 사채 조달
"리스크 없다면 사업 아닌 장사"
창업경영인 부문 -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수많은 실패가 유일한 자산
신체포기각서 쓰고 사채 조달
"리스크 없다면 사업 아닌 장사"
“관 뚜껑이 닫히기 전까지 실패란 없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사진)이 자주 하는 말이다. 이런 깨달음은 경험에서 우러나왔다. 셀트리온을 세우기 전 상조 서비스 사업을 해보려고 장례용품 시장을 조사하다 관 속에 들어가 누워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사후체험’을 자처하며 열정을 쏟았음에도 창업 이후 그가 경험한 실패는 셀 수 없다. 당근을 수입했다가 방부제 처리를 하지 않아 모조리 썩어버리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폐기한 일도 회자된다. 경영 컨설팅, 통신 등 돈이 된다는 사업은 닥치는 대로 손을 댔지만 뜻대로 된 것이 없다. 바이오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도 여러 번 고비를 넘겼다. 셀트리온이 자리잡기까지 10년간 그에게는 항상 ‘사기꾼’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럼에도 근성과 뚝심으로 묵묵히 밀고 나갔다. 셀트리온을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으로 키워낸 비결이다.
서 회장이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유는 또 있다. 대한민국에서 성공의 조건으로 꼽히는 나이, 학벌, 돈 없이 맨몸으로 부딪쳐 성공 신화를 이뤘다는 점에서다. 서 회장은 42세에 셀트리온의 전신인 넥솔을 창업했다. 창업 멤버는 대우자동차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었다. 모두 30대 중후반의 실업자들로 SKY대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은 대우그룹이 파산하면서 퇴직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조금씩 모아둔 종잣돈 5000만원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망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뿐이었다.
창업 1년 뒤인 2001년 서 회장은 백신 개발회사인 미국 백스젠과 에이즈 백신을 생산하기 위한 기술제휴 계약을 맺었다. 2003년 투자금을 끌어모아 인천 송도 간척지에 5만L 규모 생산 공장을 지었다. 그런데 완공을 1년 앞둔 2004년 에이즈 백신의 임상 3상이 실패했다. 어렵게 투자해 지은 공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처지였다. 부도를 막기 위해 은행을 찾아다녔지만 돈을 빌릴 수 없었다. 명동 사채 시장에서 신체포기각서를 쓰고 돈을 빌렸다. 각서를 하도 많이 써서 사채업자들이 떼어갈 장기가 없다고 했을 정도였다. 삶이 힘들어 자살을 시도했지만 죽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죽음의 문턱에 가본 경험은 서 회장을 변화시켰다. “모든 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작은 일에도 주변 사람에게 감사하게 됐습니다.”
서 회장은 이때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가는 법을 터득했다. 그러자 풀리지 않던 일들이 하나둘 해결됐다. 셀트리온은 2005년 3월 공장을 완공하고 3개월 뒤 다국적제약사 BMS와 의약품 위탁생산(CMO) 계약을 했다. 설립 5년 만인 2007년 셀트리온은 63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서 회장은 안정적인 CMO 사업 대신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를 개발해보자고 생각했다. 고가의 바이오 의약품 특허가 풀리면 효능과 안전성은 동등하면서도 가격은 낮은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주변에선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다. 살아 있는 세포로 만드는 바이오 의약품은 고난도 기술이 필요해 복제가 어렵다. 서 회장은 2009년 CMO 사업을 중단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투자금 조달이 어려웠던 2010년 5월 싱가포르 테마섹에서 2080억원을 투자받아 송도 2공장을 지었다. 제품을 개발하기도 전에 생산설비에 선제 투자했다. 그의 선견지명은 맞아떨어졌다. 셀트리온은 세계 최초의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에 이어 ‘허쥬마’ ‘트룩시마’를 글로벌 시장에 선보였다. 바이오시밀러 3종은 유럽, 미국에서 오리지널 제품을 위협하며 급성장하고 있다. 그는 “사업은 예측하는 것”이라며 “리스크(위험)가 없다면 사업이 아니라 장사”라고 말한다.
서 회장은 올해 ‘램시마SC’를 출시하고 신약 개발 회사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정맥주사 형태인 램시마를 피하주사 제형(劑形)으로 개발한 제품이다. 서 회장은 램시마SC와 글로벌 직접판매체제가 시장에 안착하는 2020년께 현업에서 물러나 창업 꿈나무를 키울 계획이다. “다음 세대에 제 얘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절실하게 노력하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 서정진 회장 약력
△1957년 충북 청주 출생 △1977년 인천 제물포고 졸업 △1983년 건국대 산업공학과 졸업, 삼성전기 입사 △1986년 한국생산성본부 전문위원 △1990년 건국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1991년 대우자동차 기획재무부문 고문(전무대우) △1992년 한국품질경영연구원장 △2000년 넥솔·넥솔바이오텍 설립 △2002년 셀트리온 설립 △2009년 셀트리온제약 설립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사진)이 자주 하는 말이다. 이런 깨달음은 경험에서 우러나왔다. 셀트리온을 세우기 전 상조 서비스 사업을 해보려고 장례용품 시장을 조사하다 관 속에 들어가 누워봤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사후체험’을 자처하며 열정을 쏟았음에도 창업 이후 그가 경험한 실패는 셀 수 없다. 당근을 수입했다가 방부제 처리를 하지 않아 모조리 썩어버리는 바람에 눈물을 머금고 폐기한 일도 회자된다. 경영 컨설팅, 통신 등 돈이 된다는 사업은 닥치는 대로 손을 댔지만 뜻대로 된 것이 없다. 바이오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도 여러 번 고비를 넘겼다. 셀트리온이 자리잡기까지 10년간 그에게는 항상 ‘사기꾼’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그럼에도 근성과 뚝심으로 묵묵히 밀고 나갔다. 셀트리온을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으로 키워낸 비결이다.
서 회장이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유는 또 있다. 대한민국에서 성공의 조건으로 꼽히는 나이, 학벌, 돈 없이 맨몸으로 부딪쳐 성공 신화를 이뤘다는 점에서다. 서 회장은 42세에 셀트리온의 전신인 넥솔을 창업했다. 창업 멤버는 대우자동차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었다. 모두 30대 중후반의 실업자들로 SKY대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이들은 대우그룹이 파산하면서 퇴직금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직장 생활을 하며 조금씩 모아둔 종잣돈 5000만원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망하면 안 된다’는 절박함뿐이었다.
창업 1년 뒤인 2001년 서 회장은 백신 개발회사인 미국 백스젠과 에이즈 백신을 생산하기 위한 기술제휴 계약을 맺었다. 2003년 투자금을 끌어모아 인천 송도 간척지에 5만L 규모 생산 공장을 지었다. 그런데 완공을 1년 앞둔 2004년 에이즈 백신의 임상 3상이 실패했다. 어렵게 투자해 지은 공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처지였다. 부도를 막기 위해 은행을 찾아다녔지만 돈을 빌릴 수 없었다. 명동 사채 시장에서 신체포기각서를 쓰고 돈을 빌렸다. 각서를 하도 많이 써서 사채업자들이 떼어갈 장기가 없다고 했을 정도였다. 삶이 힘들어 자살을 시도했지만 죽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죽음의 문턱에 가본 경험은 서 회장을 변화시켰다. “모든 것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작은 일에도 주변 사람에게 감사하게 됐습니다.”
서 회장은 이때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가는 법을 터득했다. 그러자 풀리지 않던 일들이 하나둘 해결됐다. 셀트리온은 2005년 3월 공장을 완공하고 3개월 뒤 다국적제약사 BMS와 의약품 위탁생산(CMO) 계약을 했다. 설립 5년 만인 2007년 셀트리온은 63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서 회장은 안정적인 CMO 사업 대신 바이오시밀러(바이오의약품 복제약)를 개발해보자고 생각했다. 고가의 바이오 의약품 특허가 풀리면 효능과 안전성은 동등하면서도 가격은 낮은 바이오시밀러 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주변에선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다. 살아 있는 세포로 만드는 바이오 의약품은 고난도 기술이 필요해 복제가 어렵다. 서 회장은 2009년 CMO 사업을 중단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투자금 조달이 어려웠던 2010년 5월 싱가포르 테마섹에서 2080억원을 투자받아 송도 2공장을 지었다. 제품을 개발하기도 전에 생산설비에 선제 투자했다. 그의 선견지명은 맞아떨어졌다. 셀트리온은 세계 최초의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에 이어 ‘허쥬마’ ‘트룩시마’를 글로벌 시장에 선보였다. 바이오시밀러 3종은 유럽, 미국에서 오리지널 제품을 위협하며 급성장하고 있다. 그는 “사업은 예측하는 것”이라며 “리스크(위험)가 없다면 사업이 아니라 장사”라고 말한다.
서 회장은 올해 ‘램시마SC’를 출시하고 신약 개발 회사로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정맥주사 형태인 램시마를 피하주사 제형(劑形)으로 개발한 제품이다. 서 회장은 램시마SC와 글로벌 직접판매체제가 시장에 안착하는 2020년께 현업에서 물러나 창업 꿈나무를 키울 계획이다. “다음 세대에 제 얘기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절실하게 노력하면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말이죠.”
■ 서정진 회장 약력
△1957년 충북 청주 출생 △1977년 인천 제물포고 졸업 △1983년 건국대 산업공학과 졸업, 삼성전기 입사 △1986년 한국생산성본부 전문위원 △1990년 건국대 대학원 경영학 석사 △1991년 대우자동차 기획재무부문 고문(전무대우) △1992년 한국품질경영연구원장 △2000년 넥솔·넥솔바이오텍 설립 △2002년 셀트리온 설립 △2009년 셀트리온제약 설립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