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홍수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로봇공학전공 교수(오른쪽 두 번째)가 의료용 마이크로로봇 제어장치를 이용해 실험하고 있다. DGIST 제공
최홍수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로봇공학전공 교수(오른쪽 두 번째)가 의료용 마이크로로봇 제어장치를 이용해 실험하고 있다. DGIST 제공
방사선 치료의 핵심은 조사(照射)다. 정상 세포가 아닌 종양 부위에만 방사선을 정확히 쏘아야 한다. 삽입기구를 인체에 넣어 방사선을 쬐는 ‘근접방사선치료’가 각광받는 이유다. 멀쩡한 조직에도 영향을 미치기 쉬운 체외방사선치료보다 암세포 사멸률이 높다.

최근 국립암센터, 서울아산병원, 충남대병원 공동 연구진은 자궁경부암, 식도암, 직장암 등 ‘굴절 부위 암’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근접방사선 치료법을 개발했다. 정밀 유도탄처럼 종양 부위에 항암제를 전달하고 난 뒤 체내에서 저절로 녹아 없어지는 ‘마이크로로봇’ 기술도 등장했다.

구불구불한 곳에 정확히 방사선 발사

환자 몸으로 들어간 마이크로로봇…암세포 공격 후 자연분해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2012년 세계에서 53만여 명의 자궁경부암 환자가 발생했다. 같은 해 27만5000여 명이 이 질환으로 사망했다. 개발도상국에선 유병률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다. 자궁경부암 표준 치료법은 화학요법과 방사선치료의 병행이다. 방사선치료는 골반 전체를 치료하는 체외방사선치료와 자궁 내부에 체내 삽입기구를 넣어 치료하는 근접방사선치료를 번갈아 한다.

문제는 종양의 모양이 불균등한 ‘비대칭’ 형태의 종양이다. 이땐 척수마취 후 삽입기구에 침을 넣어 방사선을 조사하는 침습요법을 활용한다. 민감하고 연약한 부위인 만큼 출혈, 감염, 조직괴사 등의 위험이 상당하다. 그렇다고 일반 방사선 치료법을 쓰기도 어렵다. 재발 위험이 높아지는 탓이다.

임영경 국립암센터 방사선종양학과 선임연구원은 27일 “MRI(자기공명영상) 사진에서 큰 비대칭 종양을 볼 때마다 치료 방법이 한정적이라 매우 안타까웠다”고 신기술 개발 배경을 설명했다. 곽정원 서울아산병원 교수, 황의중 충남대병원 교수 등 연구진이 기술 개발에 참여했다.

공동연구팀이 개발한 것은 ‘힘과 각도 조절’이 가능한 근접 방사선 치료기구다. 원하는 특정 방향 기준 좁은 각도(35도)로 방사선을 방출하는 기구를 자체 개발했다. 그동안 일반적으로 사용된 삽입기구는 방사선을 ‘360도’로 발산했기 때문에 타깃(종양)이 아닌 조직도 피폭을 피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연구팀은 자궁 입구가 협소하고 굴절돼 있는 점을 감안해 차폐체를 설계했다. 텅스텐 차폐체 등 내부 구조물은 티타늄으로 둘러싸 안전성을 높였다. 서울아산병원은 종양 형태에 따른 (피폭) 선량 최적화 알고리즘을 새로 개발했다.

이 기술은 지난 18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방사선종양학회에서 소개됐다. 같은 기술을 개발 중인 미국 예일대병원 연구진과 협업도 준비 중이다. 임 선임연구원은 “두경부암, 기관지암, 식도암, 직장암 등에도 활용할 수 있는 신기술”이라며 “조만간 임상에 착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항암제 배달하고 사라지는 로봇 등장

항암제를 싣고 체내로 들어가 고열치료와 화학요법 치료를 병행하는 초소형 의료 로봇(마이크로로봇) 원천기술도 개발됐다.

최홍수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로봇공학전공 교수는 이날 ‘3D 레이저 리소그래피(광식각)’를 활용해 자기를 띤 나노입자와 약물을 탑재할 수 있는 ‘생분해성 마이크로로봇’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3D(3차원) 레이저 리소그래피 공정은 펨토(1000조분의 1)초 펄스 레이저를 감광제(포토레지스트)에 쬐여 3차원 구조물을 제작하는 기술이다. 연구팀은 이 기술을 응용해 3차원 나선 구조 마이크로로봇을 개발했다. 나선 구조로 로봇을 만들면 약물을 정확하고 빠르게 분출하고, 연구자들이 제어하기도 쉬워진다.

연구팀은 원하는 부위에 마이크로로봇이 도달하면 고주파 자기장을 걸고, 이때 로봇에 탑재된 자성 나노입자로부터 발생하는 열이 암세포를 죽일 수 있게 했다. 약물 방출 수준도 정상 방출, 지속 방출, 버스트(폭발) 모드로 조절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임무를 수행함과 동시에 녹아 없어지는 생분해성 소재인 ‘폴리에틸렌글리콜디아크릴레이트(PEGDA)’를 썼다. 국내에서 생분해성 마이크로로봇이 개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외국에선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 Zurich) 등이 기술을 개발 중이다.

연구팀은 개발한 기술 효과를 체외에서 배양한(in vitro) 암세포에 적용해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동물실험을 하고 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어드밴스트 헬스케어 머티리얼스’ 8월 22일자에 실렸다.

최 교수는 DGIST와 취리히연방공대가 합작해 세운 마이크로로봇연구센터 센터장도 맡고 있다. 최 교수는 “기존 약물전달 로봇 연구가 이동 경로에만 집중됐던 반면 이번 연구는 환부에 도달한 로봇이 약물을 잘 방출하는 데 주력했다”며 “임상을 위한 후속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뇌실, 신장, 일부 말초혈관 등 유체 속도가 느린 인체 부위에 마이크로로봇을 투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서울성모병원이 최 교수와 공동 연구를 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