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조커' 다음달 2일 개봉…호아킨 피닉스 명연기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미국서는 논란 "모방 범죄 우려"
남을 웃기고 싶었던 남자는 어떻게 '절대악' 조커가 됐나
지독하게 씁쓸하면서도 가슴 저릿한 악당 탄생기다.

악의 뿌리를 찾아 사람과 사회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써 내려간, 황량하고 스산한 묵시록이다.

DC코믹스에서 배트맨의 숙적인 조커의 탄생 서사를 다룬 영화 '조커' 이야기다.

코믹스에 나오지 않은,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 이야기다.

그저 남들을 웃게 만들고 싶고, 함께 어울려 살고 싶었던 한 광대가 어떻게 '절대악'으로 바뀌는지를 좇아간다.

영화는 한 개인의 뿌리를 찾아가면서 인간의 본성과 사회 구조적 문제로까지 탐색 범위를 넓힌다.

남을 웃기고 싶었던 남자는 어떻게 '절대악' 조커가 됐나
악의 씨앗은 척박한 사회와 불안정한 가정이라는 토양 속에서 움튼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분열된 1980년대 암울한 도시 고담시가 그 무대다.

미화원 파업으로 거리 곳곳에는 쓰레기가 나뒹굴고, 슈퍼 쥐 떼가 빈번하게 출몰하는 곳이다.

사람들도 대부분 화가 나 있다.

그곳 뒷골목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분)은 아픈 노모를 모시고 살아간다.

그의 꿈은 스탠드업 코미디언. 지금은 거리에서 광대 분장을 하고 호객을 하지만 언젠가 유명 쇼프로그램에 서는 것이 목표다.

아서는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

시도 때도 없이 웃는 병을 앓고 있다.

이유 없는 웃음은 곧잘 오해를 부르고, 집단 린치로 이어진다.

그는 웃음과 공감 포인트도 남들과 다르다.

그래서 외톨이다.

심리 상담사조차 그의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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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병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 가면을 쓰고 살아온 아서는 사람들의 멸시와 냉대, 무관심을 자양분 삼아 차츰 악의 뿌리를 내린다.

아슬아슬하게 경계를 지키던 그는 가장 믿었던 사람들의 거듭된 배신과 무례함에 무참히 짓밟힌 뒤 마침내 폭발한다.

조커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영화는 아서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내면과 그를 둘러싼 불온한 환경을 다각도로 짚으며 조커 탄생을 설득력 있게 그린다.

아서가 미친 게 아니라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이며, 조커는 결국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 혹은 '영웅'이라고 말한다.

특히 '공감'과 '예의 없음'은 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다.

아서가 임계점을 넘어 폭주하는 계기가 된다.

그런 면에서 인간에 대한 예의,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주제를 다룬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을 떠올리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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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조커를 추종하는 젊은이들은 광대 마스크를 쓰고 길거리로 쏟아진다.

이들은 폭동을 일으키고, 특권층을 향해 '처형하듯' 총구를 겨눈다.

이들의 폭력은 불평등한 사회 구조의 발로로, 언뜻 정당화되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그래서 논쟁적이다.

미국에서 개봉도 전에 논란에 휩싸인 이유다.

고담은 가상의 도시지만, 빈부격차, 불평등, 빈번한 총기 사건과 같은 미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과 오버랩된다.

조커를 따라 하는 모방 범죄 우려도 나온다.

시사 주간지 타임은 이 영화를 두고 "잠재적인 폭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위험하다"면서 "조커와 같은 사람들은 이미 실제로 존재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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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2012년 미국 콜로라도주 오로라의 한 영화관에서도 '다크 나이트 라이즈' 상영 당시 20대 청년이 총을 난사해 70여명이 사상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배급사 워너브러더스는 논란이 커지자 성명을 내고 "이 영화는 현실에서의 폭력을 옹호하지 않으며 조커를 영웅으로 그리지 않았다"고 발표했지만, 모방 범죄 우려는 여전하다.

미국 일부 극장 체인들은 '조커' 개봉 때 마스크를 쓰거나 페이스 페인팅을 한 관객의 출입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논란과 별개로 호아킨 피닉스의 명연기는 영화사에 기억될 만하다.

과거 잭 니컬슨, 히스 레저 등이 연기한 조커와는 또 다른, 그만의 조커 연기를 펼친다.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대담하면서도 섬세한 연기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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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를 연주하는 것처럼 즉흥 연기도 여러 차례 선보였다.

아서가 범죄를 저지른 뒤 화장실에 숨어들어 춤을 추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아서의 심리 변화가 손짓과 눈빛을 타고 객석으로 전해진다.

조커로서 정체성을 확립한 아서가 골목의 긴 계단을 붉은 정장을 입고 춤추며 내려오는 장면도 명장면으로 꼽힐 만하다.

피닉스는 이 배역을 위해 하루에 사과 하나씩만 먹고 23㎏을 감량했다고 한다.

혼신의 연기 덕분일까.

툭 불거진 앙상한 갈비뼈조차 연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코미디 영화 '행오버' 시리즈와 '워 독'을 연출한 토드 필립스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과 제작을 맡았다.

작품성을 인정받아 올해 제76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남을 웃기고 싶었던 남자는 어떻게 '절대악' 조커가 됐나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