勞 무서워 '공기업 직무급' 포기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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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벽에 가로막힌 개혁
(1) 노조 반발에 공기업 직무급제 포기한 정부
노조 반발에 매뉴얼 발간 또 취소
(1) 노조 반발에 공기업 직무급제 포기한 정부
노조 반발에 매뉴얼 발간 또 취소
정부가 공공기관 임금체계를 호봉제에서 직무급제로 바꾸기 위한 매뉴얼을 이달 초 발간하려다 공공부문 노동조합 등의 반발로 철회한 것으로 확인됐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노조 눈치를 보느라 공공개혁을 한 발짝도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9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이달 초 ‘직무중심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발간하려다 포기했다. 이 매뉴얼은 호봉제인 공공기관 임금체계를 직무급제로 바꾸는 가이드라인으로 쓰일 예정이었다. 직무급제란 업무 성격, 난이도, 책임 정도에 따라 급여를 달리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으나 전체 공공기관 339곳 중 직무급제를 도입한 기관은 한국석유관리원 등 3곳에 불과해 도입률이 1%도 안 된다.
고용부는 지난달 직무급제 매뉴얼 샘플을 제작하고 산업계와 노동계의 의견을 들었다. 고용부는 매뉴얼에 ‘직무급제 도입은 노사 합의하에 결정하는 것으로 정부는 강제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문구까지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노조가 매뉴얼 배포에 극렬히 반대하자 고용부는 발간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애초 정부는 지난해 상반기에 직무급제 매뉴얼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노조가 반발하자 그 시기를 올해 상반기로 미뤘고,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그 사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직무급제 도입이 내년 총선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을 정부에 전달했다. 경제계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공공·노동부문 개혁은 물론 연금개혁, 규제개혁 등 3대 개혁과제가 상당 기간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公기업 직무급' 3곳뿐인데…票 깎인다며 '철밥통 호봉제' 편드는 與
정부가 공공기관에 직무급제 도입을 강제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이어 직무급제 매뉴얼 발간도 차일피일 미루자 “공공개혁과 노동개혁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직무급제 도입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열고, 여권에서도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직무급제 도입이 득표에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을 정부에 전달하자 개혁추진 동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 반대로 정규직 신규채용이 전년 대비 50% 가까이 늘어나는 등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정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임금체계 개편 없이 공기업의 몸집 부풀리기가 지속되면 재무구조가 취약해지고 결국은 국민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개혁은 노조에 발목 잡히고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한 달 만인 2017년 6월 공공기관이 성과연봉제를 폐지하고 호봉제로 돌아갈 수 있게 했다. “공공부문의 비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란 비판이 나오자 그해 11월 직무급제를 도입하겠다는 안을 내놨다.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공공기관이 참고할 수 있는 ‘직무중심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작년 6월까지 배포하겠다고 했다. 직무급제는 업무의 성격과 난이도 등에 따라 임금을 차등화하는 제도다. 기술직, 사무직, 단순 노무직의 임금 테이블을 따로 마련하는 식이다.
하지만 공기업 노조 등이 정부의 직무급제 도입 추진에 강하게 반발하자 매뉴얼 발간이 계속 미뤄졌다. 정부가 직무급제 도입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기획재정부는 지난 4월 해명자료를 내고 “직무급제 매뉴얼을 올 6월 제작 완료해 배포하겠다”고 했다.
기재부는 5월 38개 주요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기관별 보수체계 합리화 계획 조사’를 시작했다. 정부는 노조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직무급제를 도입하지 않아도 불이익을 주지 않기로 가닥을 잡았다. 그럼에도 공공 노조는 정부의 조사를 문제삼았고 직무급제 매뉴얼은 나오지 못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정부가 직무급제 도입 여부를 공공기관 경영평가 때 반영할 가능성이 있다”며 7월 기재부 앞에서 사흘간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노조 반대로 인해 지금까지 전체 공공기관 339곳 중 직무급제를 도입한 기관은 한국석유관리원, 새만금개발공사, 한국산림복지진흥원 등 세 곳(도입률 0.88%)뿐이다.
정부는 지난달 직무급제 매뉴얼 샘플을 제작하고 여기에 ‘직무급제 도입을 강제하지 않겠다’는 문구를 넣은 것으로 전해졌다. 직무급제를 도입하지 않아도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것을 명문화한 것이다. 이를 통해 노동계의 ‘동의’를 얻고자 했으나 노조는 꿈쩍하지 않았다. 여당 역시 정부에 ‘직무급제 도입을 서두르지 말라’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달 초 직무급제 매뉴얼을 내놓겠다는 정부 계획은 다시 무기한 연기됐다.
몸집 불리기는 ‘일사천리’
공기업의 ‘철밥통’을 깨기 위한 직무급제 도입이 이처럼 지지부진하지만 ‘몸집 키우기’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 339개 공공기관의 정규직 신규채용 규모는 2016년과 2017년 각각 2만1059명, 2만2637명이었으나 지난해 3만3900명으로 급증했다. 전년 대비 증가율이 2016년 8.7%, 2017년 7.5%에서 지난해 49.8%가 됐다. 올 상반기 채용된 정규직은 1만5640명이다. 일자리를 늘릴수록 정부의 경영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지난해 공공기관 중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을 제외한 336곳의 부채 규모는 전년 대비 7조7000억원 증가한 503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5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정부가 2017년 7월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발표 후 올 6월까지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인원도 18만5000명에 이른다. 정부는 내년 말까지 총 20만5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노동계와 손을 잡아야 하는 여당으로서 임금체계 개편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개혁추진 동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직무급제 도입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훈/노경목 기자 beje@hankyung.com
29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이달 초 ‘직무중심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발간하려다 포기했다. 이 매뉴얼은 호봉제인 공공기관 임금체계를 직무급제로 바꾸는 가이드라인으로 쓰일 예정이었다. 직무급제란 업무 성격, 난이도, 책임 정도에 따라 급여를 달리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으나 전체 공공기관 339곳 중 직무급제를 도입한 기관은 한국석유관리원 등 3곳에 불과해 도입률이 1%도 안 된다.
고용부는 지난달 직무급제 매뉴얼 샘플을 제작하고 산업계와 노동계의 의견을 들었다. 고용부는 매뉴얼에 ‘직무급제 도입은 노사 합의하에 결정하는 것으로 정부는 강제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문구까지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노조가 매뉴얼 배포에 극렬히 반대하자 고용부는 발간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애초 정부는 지난해 상반기에 직무급제 매뉴얼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노조가 반발하자 그 시기를 올해 상반기로 미뤘고,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그 사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직무급제 도입이 내년 총선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을 정부에 전달했다. 경제계 관계자는 “총선을 앞두고 공공·노동부문 개혁은 물론 연금개혁, 규제개혁 등 3대 개혁과제가 상당 기간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公기업 직무급' 3곳뿐인데…票 깎인다며 '철밥통 호봉제' 편드는 與
정부가 공공기관에 직무급제 도입을 강제하지 않겠다고 밝힌 데 이어 직무급제 매뉴얼 발간도 차일피일 미루자 “공공개혁과 노동개혁을 사실상 포기한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직무급제 도입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열고, 여권에서도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직무급제 도입이 득표에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을 정부에 전달하자 개혁추진 동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 반대로 정규직 신규채용이 전년 대비 50% 가까이 늘어나는 등 인건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정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임금체계 개편 없이 공기업의 몸집 부풀리기가 지속되면 재무구조가 취약해지고 결국은 국민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개혁은 노조에 발목 잡히고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한 달 만인 2017년 6월 공공기관이 성과연봉제를 폐지하고 호봉제로 돌아갈 수 있게 했다. “공공부문의 비효율성이 높아질 것”이란 비판이 나오자 그해 11월 직무급제를 도입하겠다는 안을 내놨다.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공공기관이 참고할 수 있는 ‘직무중심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작년 6월까지 배포하겠다고 했다. 직무급제는 업무의 성격과 난이도 등에 따라 임금을 차등화하는 제도다. 기술직, 사무직, 단순 노무직의 임금 테이블을 따로 마련하는 식이다.
하지만 공기업 노조 등이 정부의 직무급제 도입 추진에 강하게 반발하자 매뉴얼 발간이 계속 미뤄졌다. 정부가 직무급제 도입을 사실상 포기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기획재정부는 지난 4월 해명자료를 내고 “직무급제 매뉴얼을 올 6월 제작 완료해 배포하겠다”고 했다.
기재부는 5월 38개 주요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기관별 보수체계 합리화 계획 조사’를 시작했다. 정부는 노조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직무급제를 도입하지 않아도 불이익을 주지 않기로 가닥을 잡았다. 그럼에도 공공 노조는 정부의 조사를 문제삼았고 직무급제 매뉴얼은 나오지 못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정부가 직무급제 도입 여부를 공공기관 경영평가 때 반영할 가능성이 있다”며 7월 기재부 앞에서 사흘간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노조 반대로 인해 지금까지 전체 공공기관 339곳 중 직무급제를 도입한 기관은 한국석유관리원, 새만금개발공사, 한국산림복지진흥원 등 세 곳(도입률 0.88%)뿐이다.
정부는 지난달 직무급제 매뉴얼 샘플을 제작하고 여기에 ‘직무급제 도입을 강제하지 않겠다’는 문구를 넣은 것으로 전해졌다. 직무급제를 도입하지 않아도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것을 명문화한 것이다. 이를 통해 노동계의 ‘동의’를 얻고자 했으나 노조는 꿈쩍하지 않았다. 여당 역시 정부에 ‘직무급제 도입을 서두르지 말라’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달 초 직무급제 매뉴얼을 내놓겠다는 정부 계획은 다시 무기한 연기됐다.
몸집 불리기는 ‘일사천리’
공기업의 ‘철밥통’을 깨기 위한 직무급제 도입이 이처럼 지지부진하지만 ‘몸집 키우기’는 착착 진행되고 있다. 339개 공공기관의 정규직 신규채용 규모는 2016년과 2017년 각각 2만1059명, 2만2637명이었으나 지난해 3만3900명으로 급증했다. 전년 대비 증가율이 2016년 8.7%, 2017년 7.5%에서 지난해 49.8%가 됐다. 올 상반기 채용된 정규직은 1만5640명이다. 일자리를 늘릴수록 정부의 경영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지난해 공공기관 중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을 제외한 336곳의 부채 규모는 전년 대비 7조7000억원 증가한 503조8000억원을 기록했다. 5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정부가 2017년 7월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발표 후 올 6월까지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인원도 18만5000명에 이른다. 정부는 내년 말까지 총 20만5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노동계와 손을 잡아야 하는 여당으로서 임금체계 개편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집권 후반기로 갈수록 개혁추진 동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직무급제 도입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훈/노경목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