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의 'ASEAN 톺아보기' (28)] 동남아 문화의 인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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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의 엠블럼은 10개의 노란색 벼 줄기를 한 단으로 묶은 모양이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10개국이 하나의 볏단과 같은 결속체로 번영해나가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반면 엠블럼에 다른 것도 아닌 볏단이 등장하는 건 이들의 공통된 정체성(identity)을 특정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아세안은 2015년 말 ‘하나의 비전, 하나의 정체성’을 모토로 아세안공동체를 야심차게 출범시켰다. 다종교·다종족·다언어 사회인 아세안이 어떻게 공통의 인식과 정체성을 확립할 것인지, 그 쉽지 않은 과정이 짐작 가고도 남는다. 그런데 이 ‘공통된 무엇’을 찾아가는 데 아주 유용하고 중요한 단서가 있다. 바로 동남아시아 문화 속에 녹아 있는 인도 문화의 영향이다.
대표적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불교 국가인 태국의 국장(國章)을 보자. 이슬람 및 불교와는 관계가 없는 힌두교의 비슈누 신이 타고 다닌다는 상상 속 새 가루다가 등장한다. 인도네시아 국영 항공사의 이름이 가루다고, 싱가포르항공의 로고도 가루다다. 인도 문화의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도에서 전래된 힌두교와 불교는 동남아인의 신앙 체계 형성과 국가의 수립·발전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힌두교는 왕과 왕국의 관계가 신과 우주의 관계와 같다는 사상을 펼침으로써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해 여러 왕국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로 ‘중심과 외연’을 의미하는 만달라(mandala)는 신이 우주세계를 지상에 축소 표현한 모형이다. 그 철학적, 기하학적 원칙이 동남아의 왕궁, 사원 등 건축물에 철저히 적용됐다.
北인도 굽타문화 전파되며 확산
동남아와 인도의 교류가 시작된 것은 서기 1세기께 동서양 교역이 이뤄져 인도 상인들이 말레이반도에 거주지를 형성하면서부터다. 본격적인 인도화(Indianization)는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 사제계급인 브라만에 의해 북인도의 굽타 문화가 전파되면서 이뤄졌다. 동남아 대륙부에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제국, 베트남 중남부의 참파왕국, 미얀마의 바간왕국 등 인도화된 왕국들이 출현했다. 특히 앙코르제국은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찬란한 힌두교 및 불교 사원과 많은 건축물을 남겼다.
동남아 도서부에서는 수마트라섬의 스리비자야왕국, 자바섬 중부에 세계적 불교 사원인 보로부두르 사원을 건축한 샤일렌드라왕국과 프람바난 힌두 사원을 건축한 마타람왕국이 등장했다. 동부 자바에는 14세기 강력한 해군력으로 말라카해협의 교역까지 지배한 마자파힛왕국이 있었다.
특히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가 동남아 문화와 예술 전반에 끼친 영향은 실로 주목할 만하다. 마왕 라바나가 천상계를 유린하자 비슈누 신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아요디아왕국 국왕의 장자 라마로 태어난다. 라마는 왕위 계승을 약속받았지만 부왕 둘째 왕비의 계략으로 쫓겨나 아내 시타, 동생 락시마나와 함께 유배생활을 한다. 그때 마왕 라바나가 시타를 납치하자 라마는 원숭이 장군 하누만의 도움으로 치열한 전투 끝에 시타를 구출한다. 후에 라마는 아요디아로 귀환해 왕위를 계승하고 태평성대를 구가한다. 라마야나는 통치자의 도리와 정의, 부부애, 형제애, 충절 등 인간의 보편적인 행동규범을 제시함으로써 동남아에 널리 전파됐다.
왕권을 신성화하는 데 활용
동남아 통치자들은 비슈누 신의 화신인 라마왕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신왕관념을 백성들에게 주지시켜 왕권을 신성화하는 데 활용했다. 라마야나는 동남아 각국의 왕궁과 사원에 조각과 회화로 묘사됐고, 이를 기초로 문학과 연극, 무용극, 그림자극, 인형극 등 전통공연예술이 크게 발전했다. 이 라마야나가 각국의 종교, 문화 및 사회적 환경에 따라 개작·번안돼 전승·발전돼왔다는 사실 또한 특기할 만하다. 동남아 각국이 자국 판본을 가지고 있다.
태국에선 1789년 쿠데타로 차크리 왕조를 연 라마 1세에 의해 ‘라마키엔’(라마의 영광이란 뜻)이 편찬됐다. 왕족 출신도 아니고 중국계 혼혈이었던 그는 새로운 왕조의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라마’를 왕명으로 취하고 왕권의 신성화를 추구했다. 라마키엔은 선과 악의 대결, 선의 궁극적 승리라는 힌두교적 주제보다 업(業)과 윤회의 불교적 교훈을 더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태국이 불교국가라는 점에서 쉽게 이해된다.
인도 문화가 동남아 사회에 아직도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건 인도 문화가 강제적으로 도입된 것이 아니라 동남아인이 선택적으로 수용해 자체 문화와의 결합을 통해 독특한 문화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이렇듯 동남아 문화의 인도화 요소는 다문화 사회인 동남아를 서로 연결시켜 통일성을 부여하는 기저를 형성하고 있다. 이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동남아 문화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
아세안은 2015년 말 ‘하나의 비전, 하나의 정체성’을 모토로 아세안공동체를 야심차게 출범시켰다. 다종교·다종족·다언어 사회인 아세안이 어떻게 공통의 인식과 정체성을 확립할 것인지, 그 쉽지 않은 과정이 짐작 가고도 남는다. 그런데 이 ‘공통된 무엇’을 찾아가는 데 아주 유용하고 중요한 단서가 있다. 바로 동남아시아 문화 속에 녹아 있는 인도 문화의 영향이다.
대표적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불교 국가인 태국의 국장(國章)을 보자. 이슬람 및 불교와는 관계가 없는 힌두교의 비슈누 신이 타고 다닌다는 상상 속 새 가루다가 등장한다. 인도네시아 국영 항공사의 이름이 가루다고, 싱가포르항공의 로고도 가루다다. 인도 문화의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도에서 전래된 힌두교와 불교는 동남아인의 신앙 체계 형성과 국가의 수립·발전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힌두교는 왕과 왕국의 관계가 신과 우주의 관계와 같다는 사상을 펼침으로써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해 여러 왕국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고대 인도어인 산스크리트어로 ‘중심과 외연’을 의미하는 만달라(mandala)는 신이 우주세계를 지상에 축소 표현한 모형이다. 그 철학적, 기하학적 원칙이 동남아의 왕궁, 사원 등 건축물에 철저히 적용됐다.
北인도 굽타문화 전파되며 확산
동남아와 인도의 교류가 시작된 것은 서기 1세기께 동서양 교역이 이뤄져 인도 상인들이 말레이반도에 거주지를 형성하면서부터다. 본격적인 인도화(Indianization)는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 사제계급인 브라만에 의해 북인도의 굽타 문화가 전파되면서 이뤄졌다. 동남아 대륙부에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제국, 베트남 중남부의 참파왕국, 미얀마의 바간왕국 등 인도화된 왕국들이 출현했다. 특히 앙코르제국은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찬란한 힌두교 및 불교 사원과 많은 건축물을 남겼다.
동남아 도서부에서는 수마트라섬의 스리비자야왕국, 자바섬 중부에 세계적 불교 사원인 보로부두르 사원을 건축한 샤일렌드라왕국과 프람바난 힌두 사원을 건축한 마타람왕국이 등장했다. 동부 자바에는 14세기 강력한 해군력으로 말라카해협의 교역까지 지배한 마자파힛왕국이 있었다.
특히 인도의 대서사시 ‘라마야나’가 동남아 문화와 예술 전반에 끼친 영향은 실로 주목할 만하다. 마왕 라바나가 천상계를 유린하자 비슈누 신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아요디아왕국 국왕의 장자 라마로 태어난다. 라마는 왕위 계승을 약속받았지만 부왕 둘째 왕비의 계략으로 쫓겨나 아내 시타, 동생 락시마나와 함께 유배생활을 한다. 그때 마왕 라바나가 시타를 납치하자 라마는 원숭이 장군 하누만의 도움으로 치열한 전투 끝에 시타를 구출한다. 후에 라마는 아요디아로 귀환해 왕위를 계승하고 태평성대를 구가한다. 라마야나는 통치자의 도리와 정의, 부부애, 형제애, 충절 등 인간의 보편적인 행동규범을 제시함으로써 동남아에 널리 전파됐다.
왕권을 신성화하는 데 활용
동남아 통치자들은 비슈누 신의 화신인 라마왕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신왕관념을 백성들에게 주지시켜 왕권을 신성화하는 데 활용했다. 라마야나는 동남아 각국의 왕궁과 사원에 조각과 회화로 묘사됐고, 이를 기초로 문학과 연극, 무용극, 그림자극, 인형극 등 전통공연예술이 크게 발전했다. 이 라마야나가 각국의 종교, 문화 및 사회적 환경에 따라 개작·번안돼 전승·발전돼왔다는 사실 또한 특기할 만하다. 동남아 각국이 자국 판본을 가지고 있다.
태국에선 1789년 쿠데타로 차크리 왕조를 연 라마 1세에 의해 ‘라마키엔’(라마의 영광이란 뜻)이 편찬됐다. 왕족 출신도 아니고 중국계 혼혈이었던 그는 새로운 왕조의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라마’를 왕명으로 취하고 왕권의 신성화를 추구했다. 라마키엔은 선과 악의 대결, 선의 궁극적 승리라는 힌두교적 주제보다 업(業)과 윤회의 불교적 교훈을 더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태국이 불교국가라는 점에서 쉽게 이해된다.
인도 문화가 동남아 사회에 아직도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는 건 인도 문화가 강제적으로 도입된 것이 아니라 동남아인이 선택적으로 수용해 자체 문화와의 결합을 통해 독특한 문화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이렇듯 동남아 문화의 인도화 요소는 다문화 사회인 동남아를 서로 연결시켜 통일성을 부여하는 기저를 형성하고 있다. 이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동남아 문화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김영선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前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