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내파밸리의 실버라도리조트앤드스포노스(파72·7166야드)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세이프웨이오픈 최종라운드 18번홀. ‘슈퍼 장타자’ 캐머런 챔프(24·미국·사진)가 1m 버디 퍼트 앞에 섰다. 넣으면 우승, 못 넣으면 연장전. 그는 심호흡을 했다. 공은 홀 한가운데를 정확히 찾아 들어갔다. 캐디와 포옹한 그는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챔프는 할아버지 맥 챔프(78)를 떠올렸다. 맥은 챔프에게 “마지막 퍼트까지 집중력을 잃어선 안 된다”고 늘 말했던 첫 골프 스승. 챔프에겐 흑인의 피가 흐른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백인이지만 할아버지는 흑인이다. 인종차별도 겪어야 했다.

할아버지는 챔프에게 골프의 재미를 알려줬다. 두 살 때 첫 골프클럽을 사준 것도 그였다. 할아버지와 손자는 커피캔을 가운데에 놓고 칩샷으로 공을 집어넣는 게임을 즐겼다.

맥은 이날 현장에서 손자의 우승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다. 위암 4기로 호스피스병동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챔프는 이 소식을 지난주 타이틀 방어에 나섰던 샌더슨팜스챔피언십이 끝난 후에야 알게 됐다. 가족들이 그의 경기력에 방해가 될까 봐 이 사실을 숨겨왔다.

챔프는 이날 침착한 우승 퍼트로 할아버지와 약속을 지켰다. 공과 신발에 할아버지의 애칭인 ‘팝(pops)’을 적어넣고 나온 그는 이날 최종 4라운드에서 3타를 줄여 3언더파 69타를 적어냈다. 나흘 합계 17언더파 271타 우승. 2위 애덤 해드윈(16언더파·32·캐나다)을 1타 차로 따돌렸다. 지난해 10월 샌더슨팜스챔피언십 이후 1년 만에 통산 2승째다. 챔프는 아버지 제프와 함께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스피커폰 너머로 우승 기쁨을 나눴다. 챔프는 “내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우승”이라며 “할아버지께 우승을 바친다”고 말했다.

챔프의 ‘외계인 장타’가 돋보였다. 그는 볼 스피드가 시속 190.7마일(약 307㎞)에 달한다. PGA투어에서 시속 190마일 이상의 볼 스피드를 내는 유일한 선수다. 나흘 평균 드라이브 비거리도 337야드에 달했다. 3라운드에선 372야드 샷을 선보였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