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칫상에 재 뿌린 '손가락 욕'…덜 익은 '갤러리文化'도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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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조희찬 레저스포츠산업부 기자
조희찬 레저스포츠산업부 기자
지난해 10월 열린 프로야구 KBO리그 SK와이번스와 넥센히어로즈의 플레이오프. SK 김성현(32)은 시비가 붙은 상대 선수에게 손가락 욕을 했다. 그는 ‘경고’ 조치를 받았다.
1994년 국제축구연맹(FIFA) 미국 월드컵 한국 대 독일전. 독일의 ‘중원 사령관’으로 불리던 슈테판 에펜베르크(51)는 야유를 보내는 관중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그는 곧바로 강제귀국 조치를 당했다. 이 경기는 그의 마지막 ‘A매치(국가대표전)’가 됐다.
같은 손가락 욕이었다. 김성현의 경우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논란도 있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징계 수위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욕을 한 대상이 중요했다. 김성현은 상대 선수에게, 에펜베르크는 관중에게 했다.
지난달 29일 경북 구미 골프존카운티선산CC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코리안투어 DGB볼빅 대구경북오픈 최종라운드 16번홀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티샷 때 휴대폰 소리로 방해받은 김비오(29)가 가운뎃손가락을 내밀었다. 내민 대상은 경기를 보러온 갤러리였다. 매너와 룰이 생명인 골프경기에서였다. 파장은 폭풍처럼 퍼져나갔다. 한 네티즌은 “아이들과 TV를 보다 너무 놀랐다. 다시는 골프경기를 보고 싶지 않아졌다”고 했다. 몇몇 네티즌은 “김비오와 KPGA를 모두 영구 퇴출시켜야 한다”는 극단적 비난까지 내놨다.
심각성을 직감한 김비오는 경기 도중 현장 중계 카메라에 육성으로 사과했다. 우승 인터뷰에서도 사과했고, 대회가 끝나고도 만나는 사람마다 머리를 숙였다.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다”고도 했다.
한순간의 분노가 가져온 파장은 그러나 통제선을 넘어서는 모양새다. 인기 없는 남자 대회 후원을 어렵게 결정한 DGB금융그룹도, 골프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인 또 다른 후원사 볼빅도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를 후원하는 호반건설도 애꿎은 피해를 입었다.
공은 이제 협회로 넘어갔다. KPGA는 1일 오전 10시 상벌위원회를 열어 김비오에 대한 징계수위를 결정한다. 벌써부터 ‘출전정지’나 ‘자격정지’ 같은 중징계가 나올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선수도, 협회도, 남자골프도 살려야 할 협회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징계 수위와 별개로 이참에 꼭 짚어야 할 게 있다는 목소리도 갈수록 커진다. 양적 팽창에 비해 아직 발전 속도가 느린 갤러리 문화다. “사진촬영을 잠시만 참아달라”는 여러 차례 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르쇠’ 갤러리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갤러리가 갤러리에게 사진촬영을 자제해 달라고 읍소하는 촌극이 곳곳에서 벌어졌을 정도다.
협회도 도마에 올랐다. 골프대회의 또 다른 주인공인 갤러리를 부드럽게 통제할 ‘마셜(현장 진행요원)’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손님맞이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초청장을 뿌린 꼴이다. ‘예견된 참사’라는 말도 나온다.
이 대회는 수천 명의 구름갤러리가 매년 현장을 찾으면서 남자골프 부활의 아이콘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그 끝은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갈길 먼 남자골프의 현주소를 보는 듯해 씁쓸하다.
etwoods@hankyung.com
1994년 국제축구연맹(FIFA) 미국 월드컵 한국 대 독일전. 독일의 ‘중원 사령관’으로 불리던 슈테판 에펜베르크(51)는 야유를 보내는 관중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들어보였다. 그는 곧바로 강제귀국 조치를 당했다. 이 경기는 그의 마지막 ‘A매치(국가대표전)’가 됐다.
같은 손가락 욕이었다. 김성현의 경우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논란도 있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징계 수위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욕을 한 대상이 중요했다. 김성현은 상대 선수에게, 에펜베르크는 관중에게 했다.
지난달 29일 경북 구미 골프존카운티선산CC에서 열린 한국프로골프(KPGA)코리안투어 DGB볼빅 대구경북오픈 최종라운드 16번홀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티샷 때 휴대폰 소리로 방해받은 김비오(29)가 가운뎃손가락을 내밀었다. 내민 대상은 경기를 보러온 갤러리였다. 매너와 룰이 생명인 골프경기에서였다. 파장은 폭풍처럼 퍼져나갔다. 한 네티즌은 “아이들과 TV를 보다 너무 놀랐다. 다시는 골프경기를 보고 싶지 않아졌다”고 했다. 몇몇 네티즌은 “김비오와 KPGA를 모두 영구 퇴출시켜야 한다”는 극단적 비난까지 내놨다.
심각성을 직감한 김비오는 경기 도중 현장 중계 카메라에 육성으로 사과했다. 우승 인터뷰에서도 사과했고, 대회가 끝나고도 만나는 사람마다 머리를 숙였다.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다”고도 했다.
한순간의 분노가 가져온 파장은 그러나 통제선을 넘어서는 모양새다. 인기 없는 남자 대회 후원을 어렵게 결정한 DGB금융그룹도, 골프산업 육성에 팔을 걷어붙인 또 다른 후원사 볼빅도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를 후원하는 호반건설도 애꿎은 피해를 입었다.
공은 이제 협회로 넘어갔다. KPGA는 1일 오전 10시 상벌위원회를 열어 김비오에 대한 징계수위를 결정한다. 벌써부터 ‘출전정지’나 ‘자격정지’ 같은 중징계가 나올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선수도, 협회도, 남자골프도 살려야 할 협회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징계 수위와 별개로 이참에 꼭 짚어야 할 게 있다는 목소리도 갈수록 커진다. 양적 팽창에 비해 아직 발전 속도가 느린 갤러리 문화다. “사진촬영을 잠시만 참아달라”는 여러 차례 호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르쇠’ 갤러리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갤러리가 갤러리에게 사진촬영을 자제해 달라고 읍소하는 촌극이 곳곳에서 벌어졌을 정도다.
협회도 도마에 올랐다. 골프대회의 또 다른 주인공인 갤러리를 부드럽게 통제할 ‘마셜(현장 진행요원)’ 수가 턱없이 부족했다. 손님맞이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초청장을 뿌린 꼴이다. ‘예견된 참사’라는 말도 나온다.
이 대회는 수천 명의 구름갤러리가 매년 현장을 찾으면서 남자골프 부활의 아이콘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그 끝은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갈길 먼 남자골프의 현주소를 보는 듯해 씁쓸하다.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