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미 장기침체에 진입"…경제학자·원로 입모아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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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어재단 세미나
"노동 유연화·규제 철폐로
성장잠재력 끌어올려야"
"노동 유연화·규제 철폐로
성장잠재력 끌어올려야"
경제계 원로와 전문가들이 “한국 실물 경기는 장기 침체 경로에 진입했다”고 한목소리로 우려했다.
민간 싱크탱크인 니어(NEAR)재단(이사장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30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한국형 장기 불황 가능성과 위기관리대책’이라는 주제로 연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정부·기업·가계가 당면한 장기 침체 위기를 직시하는 동시에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덕구 이사장은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파괴와 소득주도성장을 비롯한 경제정책 실패가 겹치면서 경기 하강이 가속화됐다”며 “기업·가계 부문 심리가 위축되면서 장기 침체와 디플레이션 위기로 치닫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동원 전 고려대 초빙교수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제조업 붕괴에서 비롯했다”며 “한국도 2011년부터 제조업 성장률이 빠르게 약화되면서 성장잠재력이 낮아졌고 장기 침체 위험도 가중됐다”고 말했다.
한국이 일본보다 더 심각한 장기 침체를 겪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전 한국경제학회장)는 “비(非)기축통화국인 한국은 일본과 다른 형태의 장기 불황에 직면할 것”이라며 “경제의 버팀목인 경상수지가 더 나빠지면 부동산 거품 붕괴와 외환위기가 동반되는 장기 침체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명예이사장(전 재무부 장관)은 “추락하는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며 “노동시장 유연화 작업을 범(汎)부처 차원에서 일관되게 추진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규제를 철폐·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상수지 더 나빠지면…금융·외환위기로 확산될 가능성 높아"
“산업·무역의 위기가 기업과 가계부문을 거쳐 금융·외환 부문으로 확장될 수 있다.”(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경상수지가 더 나빠지면 금융·외환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30일 열린 니어(NEAR)재단 세미나에서는 위축된 실물경제가 금융·외환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실물경제를 억누르는 소득주도성장을 더 이상 고집하지 말고 제조업·노동 생산성을 확충하기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주성, 소비·투자 억제했다”
경제 원로들과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금융위기에 다시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정식 명예교수는 “국내 경기가 침체기에 들어섰지만 경상수지 흑자에 힘입어 국가 신뢰도가 그나마 흔들리지 않고 버티고 있다”며 “수출과 경상수지 지표가 부진하면 위기 신호로 해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국가 부채가 치솟으면 국가 신뢰도가 하락하고 외국계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며 “외환위기가 이 같은 파급경로를 타고 촉발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정덕구 이사장은 소득주도성장의 후폭풍이 실물·금융·외환위기 가능성을 높였다고 진단했다. 그는 “소득주도성장은 소비·투자를 억누른 ‘총수요 억제정책’으로 경기의 하강 속도를 한층 가속화했다”며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법인세율 인상으로 노동 공급과 자본 투입이 줄어들면서 위기를 맞았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정부와 여당이 국정 과제 1호를 사법개혁에 두면서 ‘조국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며 “국정 우선순위를 경제정책에 두고 정책을 재점검하고 재설계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기업·산업 경쟁력 약화도 침체의 원인으로 꼽았다. 기업 경쟁력과 실적이 나빠지는 징후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기획재정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민소득 소득계정을 기초로 분석한 기업소득(총본원소득잔액)은 지난해 495조1866억원으로 전년 대비 0.6% 감소했다. 총본원소득잔액 기준 기업소득은 기업들의 영업이익에서 이자와 배당금을 지급하고 남은 소득을 의미한다. 연간 기업 실적이 전년보다 감소한 것은 2010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늘어나는 규제와 대립적 노사관계가 기업 대탈출과 산업경쟁력 약화를 불러왔다”며 “정부가 최근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지만 기업들은 체감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규제개혁위원회에 따르면 2009~2017년 행정부에서 신설했거나 강화한 규제는 총 9944건으로 집계됐다. 연평균 1105건이다.
“신산업 육성 정책 고민해야”
참석자들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산업·노동 생산성 향상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도훈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전 산업연구원장)는 “기업들의 선제적 사업구조 재편과 원활한 인수합병(M&A)을 돕기 위해 상법과 공정거래법 등 관련 법을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식 명예교수는 “교육기관과 정부 산하 연구소를 새로 개편해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연구 인력과 과제를 늘려야 한다”며 “중국의 ‘제조2025’와 독일 ‘인더스트리 4.0’, 일본 ‘재흥정책’ 등과 같은 신산업 육성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고령자·여성 노동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여성 근로자의 재취업을 위한 교육 시스템을 강화하고 고령자가 평생 일할 수 있는 체계를 안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령층이 노후자금을 예금과 현금에 묻어두지 말고 장기 금융상품에 투자하도록 정부가 유도해야 한다”며 “노인들이 자산을 증식하면 그만큼 젊은 세대 부양 부담이 줄어들고 경제 활력도 커진다”고 말했다.
재무부 장관을 지낸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명예이사장은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일관성 있는 경제정책 개발 및 집행이 요구된다”며 “정부의 정책 생산능력을 올리기 위해 분야별 전문가와 민관 브레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민간 싱크탱크인 니어(NEAR)재단(이사장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30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한국형 장기 불황 가능성과 위기관리대책’이라는 주제로 연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정부·기업·가계가 당면한 장기 침체 위기를 직시하는 동시에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덕구 이사장은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파괴와 소득주도성장을 비롯한 경제정책 실패가 겹치면서 경기 하강이 가속화됐다”며 “기업·가계 부문 심리가 위축되면서 장기 침체와 디플레이션 위기로 치닫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동원 전 고려대 초빙교수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제조업 붕괴에서 비롯했다”며 “한국도 2011년부터 제조업 성장률이 빠르게 약화되면서 성장잠재력이 낮아졌고 장기 침체 위험도 가중됐다”고 말했다.
한국이 일본보다 더 심각한 장기 침체를 겪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전 한국경제학회장)는 “비(非)기축통화국인 한국은 일본과 다른 형태의 장기 불황에 직면할 것”이라며 “경제의 버팀목인 경상수지가 더 나빠지면 부동산 거품 붕괴와 외환위기가 동반되는 장기 침체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명예이사장(전 재무부 장관)은 “추락하는 성장잠재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노력을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며 “노동시장 유연화 작업을 범(汎)부처 차원에서 일관되게 추진하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는 규제를 철폐·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상수지 더 나빠지면…금융·외환위기로 확산될 가능성 높아"
“산업·무역의 위기가 기업과 가계부문을 거쳐 금융·외환 부문으로 확장될 수 있다.”(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경상수지가 더 나빠지면 금융·외환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30일 열린 니어(NEAR)재단 세미나에서는 위축된 실물경제가 금융·외환위기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실물경제를 억누르는 소득주도성장을 더 이상 고집하지 말고 제조업·노동 생산성을 확충하기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주성, 소비·투자 억제했다”
경제 원로들과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금융위기에 다시 직면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정식 명예교수는 “국내 경기가 침체기에 들어섰지만 경상수지 흑자에 힘입어 국가 신뢰도가 그나마 흔들리지 않고 버티고 있다”며 “수출과 경상수지 지표가 부진하면 위기 신호로 해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국가 부채가 치솟으면 국가 신뢰도가 하락하고 외국계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며 “외환위기가 이 같은 파급경로를 타고 촉발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정덕구 이사장은 소득주도성장의 후폭풍이 실물·금융·외환위기 가능성을 높였다고 진단했다. 그는 “소득주도성장은 소비·투자를 억누른 ‘총수요 억제정책’으로 경기의 하강 속도를 한층 가속화했다”며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제, 법인세율 인상으로 노동 공급과 자본 투입이 줄어들면서 위기를 맞았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정부와 여당이 국정 과제 1호를 사법개혁에 두면서 ‘조국 함정’에 빠져들고 있다”며 “국정 우선순위를 경제정책에 두고 정책을 재점검하고 재설계할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기업·산업 경쟁력 약화도 침체의 원인으로 꼽았다. 기업 경쟁력과 실적이 나빠지는 징후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기획재정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국민소득 소득계정을 기초로 분석한 기업소득(총본원소득잔액)은 지난해 495조1866억원으로 전년 대비 0.6% 감소했다. 총본원소득잔액 기준 기업소득은 기업들의 영업이익에서 이자와 배당금을 지급하고 남은 소득을 의미한다. 연간 기업 실적이 전년보다 감소한 것은 2010년 이후 8년 만에 처음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늘어나는 규제와 대립적 노사관계가 기업 대탈출과 산업경쟁력 약화를 불러왔다”며 “정부가 최근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지만 기업들은 체감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규제개혁위원회에 따르면 2009~2017년 행정부에서 신설했거나 강화한 규제는 총 9944건으로 집계됐다. 연평균 1105건이다.
“신산업 육성 정책 고민해야”
참석자들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산업·노동 생산성 향상에 총력을 쏟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도훈 서강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전 산업연구원장)는 “기업들의 선제적 사업구조 재편과 원활한 인수합병(M&A)을 돕기 위해 상법과 공정거래법 등 관련 법을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식 명예교수는 “교육기관과 정부 산하 연구소를 새로 개편해 4차 산업혁명에 맞는 연구 인력과 과제를 늘려야 한다”며 “중국의 ‘제조2025’와 독일 ‘인더스트리 4.0’, 일본 ‘재흥정책’ 등과 같은 신산업 육성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만큼 고령자·여성 노동력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여성 근로자의 재취업을 위한 교육 시스템을 강화하고 고령자가 평생 일할 수 있는 체계를 안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령층이 노후자금을 예금과 현금에 묻어두지 말고 장기 금융상품에 투자하도록 정부가 유도해야 한다”며 “노인들이 자산을 증식하면 그만큼 젊은 세대 부양 부담이 줄어들고 경제 활력도 커진다”고 말했다.
재무부 장관을 지낸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명예이사장은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일관성 있는 경제정책 개발 및 집행이 요구된다”며 “정부의 정책 생산능력을 올리기 위해 분야별 전문가와 민관 브레인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