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세습' 확인
'불공정 채용비리' 사실로
서울시 독자 정규직 추진 '과속'
이들 모두 2018년 이후 정규직 전환에 성공했다. 공채 지원자에겐 평균 수천 대 1의 경쟁을 뚫어야 하는 ‘좁은 문’이지만 필기시험 한번 치르지 않은 채 공기업에 정규직으로 입성한 것이다. 이처럼 부정한 방법으로 공공기관의 정규직 전환에 성공한 사람은 서울교통공사 등 5개 기관에만 333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만큼 노력하는 다른 ‘청춘’들의 기회는 박탈당했다. 알음알음 비정규직 뽑더니…
정부는 2017년 7월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적극 나섰다. “고용에 대한 차별을 없애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른 것이었다. 올해 6월까지 18만5000명을 정규직화하기로 하고, 이 중 15만7000명을 전환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정부 발표 초기부터 취업준비생 등을 중심으로 “알음알음 입사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문제가 지적돼왔다. 30일 감사원 발표로 이 같은 의혹이 상당 부분 사실이라는 점이 증명됐다.
한전KPS는 아예 채용 공고도 내지 않고 75명의 비정규직을 채용한 뒤 모두 지난해 4월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대부분 한전KPS에서 일하는 친인척 및 지인을 통해 채용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이다. 이 중에는 재직자의 자녀도 포함돼 말 그대로 ‘고용세습’이 이뤄졌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은 2014년 이후 채용공고 등 합당한 절차 없이 124명을 기간제로 채용했다. 이곳 역시 기존 직원의 친인척과 지인이 대거 포함됐고, 이 중 일부가 정규직이 됐다. LH는 재직자의 청탁으로 채용된 친인척 등 비정규직 5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기관장이 관여한 사례도 있었다. 박완수 전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재임 중 자신의 조카사위를 직장예비군 참모로 최종 합격시켰다. 직접적인 압력은 행사하지 않았지만 지원 자체를 막는 등 ‘직무 회피’를 하지 않아 문제로 지적됐다.
박원순發 정규직화 과속
서울교통공사는 서울시가 독자적으로 정규직화를 추진하며 더 큰 문제를 불렀다. 서울시가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며 2017년 8월부터 산하기관 무기계약직 전원을 일반직으로 전환한 결과다. 감사 대상이 된 서울교통공사가 일반직으로 채용한 무기계약직 1285명 전부가 별도의 평가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이 일반직 전환자의 비정규직 입사 경로를 조사한 결과 공개채용 절차를 거치지 않았거나 내부위원 면접만을 거쳐 들어온 ‘불공정 채용’ 의심 사례가 72명으로 파악됐다. 이 중 46명은 직원 추천을 받아 적성 검사와 면접 시험만 거쳐 기간제로 채용(45명)됐거나 직원 유가족이라는 이유로 별다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입사(1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위탁사 직원 중 15명(1명 퇴사)은 공사 직원의 친인척으로 위탁업체에 입사했다가 공사 일반직으로 전환됐다. 위탁업체 직원도 서울교통공사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소문이 2015년부터 나면서 재직자들은 위탁업체 임원이나 노조위원장에게 자식의 채용을 청탁한 사실도 있었다.
이 같은 감사 결과에 대해 서울시는 “자체적으로 마련된 지침에 비춰 문제가 되는 점이 없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오히려 감사원에 대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시대적·역사적 과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정규직 전환 과정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지적한 부분에 동의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감사원은 부당하게 채용돼 정규직 전환에 성공한 직원들의 채용 취소를 요구하는 한편 관계자의 징계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중징계 요구 대상은 서울교통공사 5명, LH 2명 등 7명이다. 경징계 요구 대상은 서울교통공사 4명, 서울시 1명, LH 1명, 한전KPS 11명 등 17명이다.
노경목/추가영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