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민의 지금유럽은]우버보다 비싸지만 사랑받는 영국 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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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택시를 뜻하는 블랙캡은 빨간색 이층버스(더블데커)와 함께 런던의 대표적인 명물로 꼽힌다. 1907년 택시캡(taxicab)이라는 이름으로 첫 운행을 시작했다. 통상 택시를 뜻하는 용어인 캡은 19세기 초 프랑스의 덮개 달린 이륜마차를 뜻하는 카브리올레(cabriolet)에서 유래됐다.
도입 초반엔 모든 택시가 검은색이었지만 지금은 형광색 택시도 운행할 정도로 색깔과 무늬도 다양해졌다. 광고문구를 넣은 택시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다만 영국 현지에선 여전히 택시를 블랙캡이라는 고유명사로 부른다. 런던시 산하 런던교통공사(TFL)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2만2928대가 런던에서 운영 중이다.
한국에선 택시단체와 차량공유서비스 업체와의 갈등이 정부의 잇단 중재에도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택시단체들이 생존권을 이유로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량호출서비스 업체인 우버는 정부와 서울시의 반대로 우버블랙 등 일부 서비스를 제외하고 사실상 사업을 접었다. 다만 국내의 전반적인 여론은 새로운 서비스 출시를 반기는 분위기다. 각종 설문조사 등을 보더라도 차량공유서비스에 호의적인 의견이 많다. 여기엔 승차거부와 불친절 등 기존 택시 서비스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은 어떨까. 블랙캡 기사들은 2014년 런던 도심에서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우버 서비스 도입에 항의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블랙캡과 우버와의 갈등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런던교통공사는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우버가 신청한 정식 영업면허 갱신을 거부했다. 2017년 9월 우버의 영업면허가 만료되자 공공안전 등을 이유로 이를 갱신하지 않기로 한 지 2년만이다. 대신 임시 영업면허를 오는 11월 말까지 2개월만 추가 연장해 주기로 했다. 블랙캡 기사들로 구성된 택시기사협회는 곧바로 성명을 내고 “시장에서 우버의 부도덕적인 전략을 영원히 중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와 달리 영국에선 택시단체의 이기주의를 비난하는 의견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승차공유에 대한 관련법 위법 여부 및 규제에 대한 논쟁이 치열한 국내와 비교하면 쟁점거리도 전혀 다르다. 영국에선 주로 우버가 승객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두고 다. 승객 안전대책뿐 아니라 우버 기사의 과로 운행 등에 대해 우버측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영국 현지 언론에서도 정부가 낡은 규제를 고수하고 있다는 비판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 일부 언론은 런던 교통당국이 우버에 더 강력한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디크 칸 런던시장도 런던교통공사의 결정 직후 “우버는 법을 따라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통상 우버 요금은 블랙캡보다 30~50% 가량 저렴하다. 예를 들어 퇴근 시간인 오후 7시께 런던 히드로국제공항에서 런던 도심 중심부인 빅토리아역까지 블랙캡을 타면 최소한 60파운드 이상은 지불할 각오를 해야 한다. 원화로 10만원이 넘는 돈이다. 반면 우버를 타면 절반이 조금 넘는 35파운드 가량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런던 시내에선 걸어서 10분여밖에 걸리지 않은 거리임에도 블랙캡을 타면 요금이 10파운드를 넘는 건 순식간이다. 그럼에도 블랙캡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가 뭘까.
무엇보다 런던에서 블랙캡은 런던 시민들에게 친숙한 대중교통수단이 아니다. 사실상 프리미엄 교통수단이다.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런던교통공사에 따르면 전체 운송수단 중 블랙캡의 평균 수송분담률은 2% 수준이다. 2017년 기준 서울은 이보다 세 배 가량 높은 6.5%에 이른다. 런던 도심부(1~2존)을 벗어난 외곽 지역에선 상대적으로 블랙캡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관청이 몰린 웨스트민스터나 금융가 밀집지역인 뱅크역에는 손만 들면 블랙캡을 손쉽게 탈 수 있다.
블랙캡에 대한 런던 시민들의 자긍심과 높은 신뢰도 한몫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런던 블랙캡 면허는 두 가지로 나뉜다. 런던 전역에서 운행할 수 있는 그린배지와 외곽 지역에서 영업할 수 있는 옐로배지다. 이 배지를 발급받기 위해선 ‘지식시험’(The knowedge)이라고 불리는 까다로운 시험을 거쳐야만 한다. 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선 320여개의 노선과 2만5000개의 거리에 대해 미리 습득해야 한다. 관광지와 박물관, 공원, 교회, 극장, 학교 등 2만여개의 랜드마크와 공공장소도 외워야 한다.
시험은 필기시험뿐 아니라 구두시험도 치른다. 예를 들어 시험관은 런던 노팅힐역에서 외국 대사관이 밀집한 켄싱턴 지역으로 가는 노선을 물어본다. 응시자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모든 거리를 일일이 답해야 하는 방식이다. 지식시험을 통과하려면 통상 2~4년이 걸린다. 블랙캡 기사들이 실핏줄 같은 런던 골목을 내비게이션 없이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블랙캡 기사들의 80% 이상이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란 백인 출신이다. 시험을 통과하는 데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버 기사 중 백인 출신은 8%에 불과하다. 우버 기사의 80% 가량이 이민자 출신이다.
블랙캡의 승차 환경도 우버에 비할 바 아니다. 블랙캡 면허를 관리하는 런던교통공사는 블랙캡 차량의 조건을 엄격하게 명시하고 있다. 런던교통공사가 지정한 ‘적합도’(Condition of Fitness) 테스트를 거쳐야만 차량 운행이 가능하다. 안전도와 청결도는 물론이고, 휠체어 차량이 오르내릴 수 있는 출입구도 보장돼야 한다.
블랙캡에 타 보면 운전석과 승객이 앉는 뒷자석은 유리 칸막이로 구분돼 있다. 뒷좌석엔 어른 4명이 충분히 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기사가 승객에게 대화를 건네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흡연은 엄격히 금지된다. 혼잡한 런던 도심에서 버스전용차로를 달릴 수 있다는 점은 덤이다. 블랙캡을 타려면 지정된 승차지뿐 아니라 거리에서 손을 흔들면 알아서 멈춘다. 승차거부는 사실상 없다. 런던 당국에서 승차거부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서도 차량공유서비스인 타다가 출시된 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시민들이 꼽은 타다를 타는 이유는 간단했다. 승차거부가 없고, 깨끗하고 안락한데다, 서비스가 좋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존 택시보다 좀더 비싼 가격을 주더라도 타다를 타겠다는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 블랙캡이 100년 넘는 시간 동안 런던 명물로 사랑받는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
도입 초반엔 모든 택시가 검은색이었지만 지금은 형광색 택시도 운행할 정도로 색깔과 무늬도 다양해졌다. 광고문구를 넣은 택시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다만 영국 현지에선 여전히 택시를 블랙캡이라는 고유명사로 부른다. 런던시 산하 런던교통공사(TFL)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2만2928대가 런던에서 운영 중이다.
한국에선 택시단체와 차량공유서비스 업체와의 갈등이 정부의 잇단 중재에도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택시단체들이 생존권을 이유로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량호출서비스 업체인 우버는 정부와 서울시의 반대로 우버블랙 등 일부 서비스를 제외하고 사실상 사업을 접었다. 다만 국내의 전반적인 여론은 새로운 서비스 출시를 반기는 분위기다. 각종 설문조사 등을 보더라도 차량공유서비스에 호의적인 의견이 많다. 여기엔 승차거부와 불친절 등 기존 택시 서비스에 대한 시민들의 거부감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국은 어떨까. 블랙캡 기사들은 2014년 런던 도심에서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우버 서비스 도입에 항의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블랙캡과 우버와의 갈등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런던교통공사는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우버가 신청한 정식 영업면허 갱신을 거부했다. 2017년 9월 우버의 영업면허가 만료되자 공공안전 등을 이유로 이를 갱신하지 않기로 한 지 2년만이다. 대신 임시 영업면허를 오는 11월 말까지 2개월만 추가 연장해 주기로 했다. 블랙캡 기사들로 구성된 택시기사협회는 곧바로 성명을 내고 “시장에서 우버의 부도덕적인 전략을 영원히 중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와 달리 영국에선 택시단체의 이기주의를 비난하는 의견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승차공유에 대한 관련법 위법 여부 및 규제에 대한 논쟁이 치열한 국내와 비교하면 쟁점거리도 전혀 다르다. 영국에선 주로 우버가 승객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두고 다. 승객 안전대책뿐 아니라 우버 기사의 과로 운행 등에 대해 우버측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영국 현지 언론에서도 정부가 낡은 규제를 고수하고 있다는 비판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 일부 언론은 런던 교통당국이 우버에 더 강력한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디크 칸 런던시장도 런던교통공사의 결정 직후 “우버는 법을 따라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통상 우버 요금은 블랙캡보다 30~50% 가량 저렴하다. 예를 들어 퇴근 시간인 오후 7시께 런던 히드로국제공항에서 런던 도심 중심부인 빅토리아역까지 블랙캡을 타면 최소한 60파운드 이상은 지불할 각오를 해야 한다. 원화로 10만원이 넘는 돈이다. 반면 우버를 타면 절반이 조금 넘는 35파운드 가량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런던 시내에선 걸어서 10분여밖에 걸리지 않은 거리임에도 블랙캡을 타면 요금이 10파운드를 넘는 건 순식간이다. 그럼에도 블랙캡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가 뭘까.
무엇보다 런던에서 블랙캡은 런던 시민들에게 친숙한 대중교통수단이 아니다. 사실상 프리미엄 교통수단이다.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런던교통공사에 따르면 전체 운송수단 중 블랙캡의 평균 수송분담률은 2% 수준이다. 2017년 기준 서울은 이보다 세 배 가량 높은 6.5%에 이른다. 런던 도심부(1~2존)을 벗어난 외곽 지역에선 상대적으로 블랙캡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반면 관청이 몰린 웨스트민스터나 금융가 밀집지역인 뱅크역에는 손만 들면 블랙캡을 손쉽게 탈 수 있다.
블랙캡에 대한 런던 시민들의 자긍심과 높은 신뢰도 한몫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런던 블랙캡 면허는 두 가지로 나뉜다. 런던 전역에서 운행할 수 있는 그린배지와 외곽 지역에서 영업할 수 있는 옐로배지다. 이 배지를 발급받기 위해선 ‘지식시험’(The knowedge)이라고 불리는 까다로운 시험을 거쳐야만 한다. 이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선 320여개의 노선과 2만5000개의 거리에 대해 미리 습득해야 한다. 관광지와 박물관, 공원, 교회, 극장, 학교 등 2만여개의 랜드마크와 공공장소도 외워야 한다.
시험은 필기시험뿐 아니라 구두시험도 치른다. 예를 들어 시험관은 런던 노팅힐역에서 외국 대사관이 밀집한 켄싱턴 지역으로 가는 노선을 물어본다. 응시자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모든 거리를 일일이 답해야 하는 방식이다. 지식시험을 통과하려면 통상 2~4년이 걸린다. 블랙캡 기사들이 실핏줄 같은 런던 골목을 내비게이션 없이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렇다보니 블랙캡 기사들의 80% 이상이 런던에서 태어나고 자란 백인 출신이다. 시험을 통과하는 데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버 기사 중 백인 출신은 8%에 불과하다. 우버 기사의 80% 가량이 이민자 출신이다.
블랙캡의 승차 환경도 우버에 비할 바 아니다. 블랙캡 면허를 관리하는 런던교통공사는 블랙캡 차량의 조건을 엄격하게 명시하고 있다. 런던교통공사가 지정한 ‘적합도’(Condition of Fitness) 테스트를 거쳐야만 차량 운행이 가능하다. 안전도와 청결도는 물론이고, 휠체어 차량이 오르내릴 수 있는 출입구도 보장돼야 한다.
블랙캡에 타 보면 운전석과 승객이 앉는 뒷자석은 유리 칸막이로 구분돼 있다. 뒷좌석엔 어른 4명이 충분히 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기사가 승객에게 대화를 건네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흡연은 엄격히 금지된다. 혼잡한 런던 도심에서 버스전용차로를 달릴 수 있다는 점은 덤이다. 블랙캡을 타려면 지정된 승차지뿐 아니라 거리에서 손을 흔들면 알아서 멈춘다. 승차거부는 사실상 없다. 런던 당국에서 승차거부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서도 차량공유서비스인 타다가 출시된 후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시민들이 꼽은 타다를 타는 이유는 간단했다. 승차거부가 없고, 깨끗하고 안락한데다, 서비스가 좋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기존 택시보다 좀더 비싼 가격을 주더라도 타다를 타겠다는 시민들이 적지 않았다. 블랙캡이 100년 넘는 시간 동안 런던 명물로 사랑받는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