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0월 1일 오전 6시

산업은행이 인수합병(M&A) 자금을 대출해주는 ‘인수금융’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산업은행은 “기업의 산업 재편을 지원하는 것도 정책기관의 역할”이라며 인수금융 시장 참여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시중은행과 증권사들은 “국책은행인 산은이 지나치게 낮은 이자율을 제시해 일감을 가져가는 등 인수금융 시장 생태계를 흐리고 있다”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산은은 지난달 국내 1위 골판지업체 태림포장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세아상역에 단독으로 인수금융을 제공하기로 했다. 통상 M&A 거래에서 인수회사는 인수자문사에 인수금융까지 맡기는 게 일반적이지만, 세아상역은 인수자문사인 미래에셋대우 대신 산은을 선택했다. 산은이 연 3.5% 수준의 파격적인 이자율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인수금융업계 관계자는 “시중은행과 증권사가 제시하는 이자율보다 0.4~0.5%포인트 낮은 금리”라며 “수천억원에 달하는 대출 규모를 감안할 때 일반 금융회사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산은은 앞서 지난 8월 종결된 대형 M&A 거래인 삼양옵틱스 매각 때도 인수자인 LK투자파트너스와 에이투파트너스에 인수금융을 제공했다.

산은은 인수금융 시장 참여에 대해 “국내 기업의 사업 재편과 성장동력 확보를 지원하는 것도 정책기관이 담당해야 하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산은 관계자는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국내 대기업들이 핵심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해외 기업 M&A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이를 지원하기 위해서라도 인수금융 시장 참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시중은행과 증권사들은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국내 인수금융 시장은 이미 시중은행과 증권사가 치열하게 경쟁하며 이자율이 미국이나 유럽 시장보다 낮은 ‘포화상태’에 들어섰다. 산은이 아니더라도 국내 기업들이 인수금융을 받을 금융회사가 많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국내 사모펀드(PEF) SJL파트너스·KCC·원익 컨소시엄의 글로벌 실리콘업체 모멘티브 인수 정도를 제외하면 산은이 한국 기업의 해외 M&A를 지원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산은은 태림포장 등 대부분 국내 M&A를 지원하거나 글로벌 PEF 어피너티의 서브원 인수 지원 사례처럼 때로는 외국계 PEF의 배만 불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계 일각에선 산은이 인수금융 시장에 진출한 것은 올초 자본시장 부문의 인수금융과 신디케이션(여러 은행이 동일 조건으로 중장기로 대출해주는 것) 업무를 이관해 ‘네크워크금융단’을 신설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경기 악화로 대기업의 대규모 설비 투자가 줄어 신디케이션 시장이 개점휴업 상태다 보니 산은이 실적을 채우기 위해 인수금융으로 눈을 돌린 것”이라고 말했다.

산은은 2014~2015년에도 인수금융 영업을 강화했다가 “정책금융회사가 본래 역할 대신 일반 금융 시장의 생태계를 뒤흔든다”는 비판을 받고 비중을 줄이기도 했다. 당시 산은은 정부의 지급보증을 받아 산업금융채권을 발행해 저리로 자금을 조달해 인수금융 자금으로 활용했다.

정영효/이동훈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