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에 드리운 먹구름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물가는 두 달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D(디플레이션)의 공포’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출은 10개월째 뒷걸음질쳤다. 기업 체감경기는 여전히 바닥을 헤매고 있다.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의 수출규제 등 대외 불확실성이 여전하고, 잠재성장률마저 주저앉고 있다. 어느 것 하나 경제에 우호적이지 않다. 그런데도 “이만하면 선방하고 있다”는 정부의 안이한 인식이 걱정스럽다.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0.4% 하락했다. 사상 첫 마이너스였던 8월(-0.04%)에 이어 2개월 연속이다. 정부는 일시적 현상이라며 디플레이션(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경제활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소비와 투자 등 시장의 수요가 위축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수출 부진도 심각하다. 작년 12월 이후 10개월 연속 뒷걸음질했을 뿐 아니라 감소율은 넉 달째 두 자릿수다.

내수를 가늠하는 물가와 대외 경제여건을 반영하는 수출이 동반 추락하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경기 전망이 긍정적일 리 없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9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72로 작년 6월 이후 1년3개월째 80선을 넘지 못했다. 설비투자는 8월까지 누계로 11.8% 감소했고, 향후 경기를 예측하는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도 4개월 연속 하락했다. 우리 경제는 앞으로 1%대 성장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엄중한 위기 상황에도 바뀌지 않는 정부의 경제인식이다.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위기 상황을 애써 부정하고 있다. 청년 일자리 대신 노인 단기 일자리를 양산하고, 최저임금 과속 인상으로 영세 소상공인 생계를 위협하고, 기업들을 해외로 내모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각종 경제지표가 보여주는 경고 신호를 무시하고 유리한 수치만 골라 자화자찬한다고 경제가 좋아질 리 없다.

잘못된 진단은 잘못된 판단을 부르고, 잘못된 처방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경제에 대한 판단이 시장과 동떨어지다 보니 규제 개혁 등 경제체질을 바꿀 근본 대책보다는 재정을 쏟아붓는 단기대책만 내놓기에 바쁜 것 아닌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것도 시장을 무시하는 처사다. 해고자 노조가입 허용 등 노동계 요구는 반영하면서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같은 경영계 요구는 철저히 외면했다. 그렇지 않아도 노조 쪽으로 기울어진 비정상적 노사관계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경제를 살리려는 의지가 있기는 한 건지 궁금하다.

정부는 장기 침체 위기를 직시하고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 엊그제 니어재단 세미나에서 나온 “실물경제를 억누르는 소득주도성장을 더 이상 고집하지 말고 제조업·노동 생산성을 확충하기 위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지적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규제 개혁과 노동유연화 등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신성장 산업이 살아나도록 해야 한다. 오진(誤診)과 오판(誤判)으로 경제를 더 깊은 수렁에 빠뜨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