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후한 실업급여'의 역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연 2.4%(5월)에서 2.1%로 최근 하향 조정했다. LG경제연구원은 올해 연 2.0%, 내년 연 1.8%로 전망했다. 한국 경제의 하방리스크가 커지고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런데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8월 취업자 수가 전년 동월에 비해 45만2000명 늘었다. 정부는 2년5개월 만에 경기가 저점에서 반등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30~40대 핵심 근로자층의 고용이 감소 추세이고, 일자리 쪼개기 재정지출이나 공공일자리 만들기에 따른 일시적 현상일 뿐이어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무엇보다 고용보험 지표가 심상치 않다.

실업급여 수급자는 본인이 직접 실업자임을 등록한 근로자인데, 이들의 수가 줄지 않고 있다. 8월 실업급여 수급자 수는 47만3000명으로 지난해보다 8.5% 증가했다. 신규 신청자도 1.6% 늘었다. 실업급여 지급액도 지난 3월 이후 신기록을 경신 중이다. 경기가 나빠지면 실업급여 수급자 수와 실업급여액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실업급여 수급자 수와 신규 신청자 수를 실업률보다 중요한 경기지표로 사용한다. 미국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반영하듯 최근 실업급여 수급자 수는 1970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고용보험은 불경기에 대비해 평상시에 일정 규모의 기금을 반드시 쌓아둬야 하는데, 지속적인 수급자 수 증가로 인해 기금이 급감하고 있다. 이에 따라 10월부터 고용보험의 실업급여 보험료율은 현행 1.3%에서 1.6%로 오른다. 그런데 고용보험위원회는 실업급여 지급액을 평균 임금의 50%에서 60% 수준으로 올리고, 지급 기간도 90~240일에서 120~270일로 늘렸다. 이처럼 실업급여 수급액과 지급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저소득 한계 근로계층의 도덕적 해이와 함께 되레 실업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금은 실업자의 생활 안정을 우선시할 게 아니라 적극적 노동시장 개혁과 경제활성화를 통해 실업자를 줄여나가야 할 때다. 프랑스는 높은 실업률을 고용보험의 문제로 인식하고, 28개월 동안 4개월을 일하면 받을 수 있었던 실업급여를 24개월 동안 최소 6개월을 일해야 받을 수 있도록 수급 조건을 강화했다.

고용보험은 1997년 외환위기 때 실업자 보호에 기여하면서 위기 극복의 핵심 정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지금은 도덕적 해이로 인해 실업 기간을 늘릴 뿐이며, 제도 내 고용안정 정책의 실효성도 낮은 편이다. 정부는 실업급여 수급자 수와 지급액 증가가 노동시장 안정성이나 고용안전망을 개선한 결과라고 하지만, 사실은 경제적 낙오자가 늘고 있는 노동정책 실패의 결과다. 후한 실업급여 기준은 단기 근로자나 청년들에게 주기적 실업을 장려(?)하는 제도가 된 지 오래다. 게다가 고용안정사업이나 직업능력개발사업은 제도가 너무 많고 복잡해 지원자 규모가 일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실효성도 낮다.

고용보험이 도덕적 해이로 인한 실업을 억제하고 관리하는 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재정을 지방자치단체별로 분리 운용하고 보험료율도 차등화해야 한다. 고용 문제는 지역적인 특성으로 인해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렵다. 지역경제가 악화돼 실업급여 수급자가 늘면 적립된 기금으로 급여를 지급하면서 지자체 자체적으로 지역 기업을 찾아다니며 실업을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실업률 억제에 갖은 수단을 강구하는데, 지자체는 ‘청년수당’ 등을 통해 되레 실업을 유인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내는 것이 현실이다.

또 고용보험은 정부가 직접 운영하기보다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같이 ‘고용보험공단’을 신설해 재정 중립적으로 운용하도록 해야 한다. 현재는 정부가 운영함에 따라 고용과 거리가 있는 저출산 및 고령화 관련 지출이 끼어들기 일쑤다.

사회적 연대의 관점에서 실업을 많이 유발하는 기업이 높은 보험료를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측면에서 고용보험은 보험원리를 적용하기 가장 용이한 단기 사회보험제도다. 다음 세대에 부담을 통째로 전가하는 적자 공적연금이나 노인 중심의 건강보험과 달리 현재의 근로자들이 현재의 실업자를 보호해주는 제도로서 세대 간 갈등의 소지도 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