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개천절에 되새기는 弘益人間의 지혜
10월 3일은 개천절, 하늘이 열린 날이다. 먼 옛날부터 ‘시월은 상달(上月)’이라고 해 소중하게 여겼고, 3이란 숫자에 각별한 의미를 뒀기 때문에 독립군들도 이날의 의미를 계승했으며, 1949년에 양력으로 개정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연이 쓴 <삼국유사>의 첫 부분인 고조선(왕검조선) 조항에는 조선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성립됐고, 어떤 세계관, 즉 사상과 신앙을 가졌는가를 알려주는 ‘단군신화’가 있다. 환웅으로 상징되는 이주문화는 하늘과 해를 숭배하고, 강인하며, 유목적인 성격이 강하다. 반면 곰(熊)으로 상징되는 토착문화는 온순하며, 토지를 소중히 여기고, 달을 신앙하는 농경문화권이다. 그런데 역사를 살펴보면 상반된 성격을 지닌 집단이 만나면 경쟁, 갈등이 발생하고, 때로는 투쟁으로 확산되면서 큰 상처를 입고, 심지어는 공멸하기도 한다. 하지만 단군신화는 달랐다.

환웅은 소명의식을 갖고, 아버지 환인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았다. ‘민주’와 ‘공평’을 담은 홍익인간이라는 사상과 세 가지 보물, 세 명의 큰 신과 3000이라는 무리를 거느리고, 태백산 아래의 신시(神市)로 내려온다. 한편 곰과 호랑이로 표현된 집단들은 환웅집단과 조우한 후에 ‘인간주의’를 표방하는 신문화를 수용하기를 간절하게 바랐다. 물론 환웅은 이들을 적대시하지 않았지만 조건 없이 수용하지도 않았다. 이들에게 자격을 요구하면서 쑥 한 다발과 마늘 20개를 먹으면서 굴 속에서 100일간 햇빛을 보지 말라는 부탁을 한다. 한국을 비롯해서 고대사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일종의 성인의식과 비슷하다.

곰은 힘겨운 통과의례를 마치고 삼칠일(21일) 만에 여인의 몸을 받았다. 그리고 반은 인간인 웅녀는 합일을 상징하는 아이를 낳기 위해 당나무 밑에 가서 빈다. 우리네 할머니와 어머니들이 당나무 아래에서 아이를 점지해 달라고 두 손을 비비는 것과 동일하다. 이를 확인한 환웅은 잠시 인간으로 변신한 다음에 웅녀와 혼인했다. 두 존재는 서양의 신화처럼 신과 신으로 결합하지 않고, 반은 신이고 반은 인간인 존재로서 결합한 끝에 단군왕검을 낳는다. ‘인간주의’를 이런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우주에서 모든 존재와 현상들이 변신을 하고, 상호결합하는 일은 서양의, 특히 마르크스의 변증법처럼 ‘정(正)과 반(反)’의 모순이 한껏 축적된 상태에서 특별한 계기를 만나 폭발하는 것만은 아니다. 단군신화에서는 상반된 두 존재가 예비상황과 중간단계들을 만들어가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검증하면서, 공존하는 문화를 이뤘다. 이 때문에 예전의 우리는 다른 존재나 다른 문화, 다른 사상을 만날 때는 언성을 높이고, 칼을 들고 싸우기보다는 공존하는 방법과 자격을 모색했다. 또 상대방을 이해하면서 자기의 권리를 일정 부분 양보할 줄 알았고, 필요하면 자기희생도 어느 정도는 할 자세를 갖췄다.

지금 2019년 10월, 한국 사회는 인권, 민주, 평화, 공평을 외치지만 세대 간 갈등, 빈부 갈등, 지역 갈등, 문화 갈등, 사상 갈등, 이주민 문제 등이 심각하다. 좌표와 가치관을 잃은 채 붕괴를 향해 질주하는 양상이다. 하늘이 열린 개천절. 단군신화는 표류하는 한국사회에 ‘홍익인간’을 실천하는 지혜, 논리와 방략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