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있는 국제기구서 첫 규정…비트코인 등 위상 위축될 듯
“비트코인은 금융상품 아니다”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 산하 국제회계기준(IFRS) 해석위원회는 최근 영국 런던에서 회의를 열어 가상화폐에 대한 회계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했다. IFRS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130여 개국에서 쓰는 회계원칙이다. 현행 IFRS에는 가상화폐 관련 규정이 없어 각국이 혼란을 겪어왔다.
전문가들은 수차례 논의를 거쳐 가상화폐를 금융자산으로 분류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일부 가상화폐가 재화나 서비스의 교환수단으로 사용될 수는 있지만, 현금처럼 재무제표의 모든 거래를 인식할 만한 대상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른 기업의 지분이나 다른 사람의 현금 등 금융자산을 얻을 계약상 권리를 갖는 금융자산으로서도 요건을 갖추지 못한다고 봤다. 쉽게 말하면 가상화폐는 현금도 아니고 은행 예금, 주식, 채권, 보험, 신탁 같은 금융상품도 아니라는 결정이다.
위원회는 가상화폐를 ‘무형자산’이나 ‘재고자산’으로 분류하는 것이 맞다고 봤다. 통상적인 영업 과정에서 판매를 위해 보유하거나 중개기업으로서 매매하는 가상화폐는 재고자산으로 보고 나머지는 모두 무형자산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가상화폐 성격 정의한 첫 국제기준
전문가들은 이번 유권해석이 가상화폐의 성격을 정의하는 첫 국제기준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은 가상화폐의 제도권 편입에 적극 나선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가상화폐 거래 자체를 금지해왔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거래를 중단시키진 않았지만 달러화, 유로화 등 기축통화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상화폐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 역시 2017년 말 ‘비트코인 투기 광풍’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이후 가상화폐에 부정적 입장을 고수해왔다.
위원회 회의에서는 가상화폐의 제도권 편입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상당히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가상화폐와 관련한 새 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기존 IFRS 관점에서 규정한 것도 이런 기류가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한국회계기준원 관계자는 “회의 참석자 다수가 가상화폐에 대한 새 기준서을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며 “새 기준을 만들면 자칫 가상화폐를 인정한다는 듯한 신호를 시장에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상화폐 ‘장밋빛 미래’ 멀어져
이번 결정으로 한국에서 가상화폐의 제도권 진입은 한층 요원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국제기구가 정부의 기존 입장에 힘을 실어주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가상화폐를 일부 보유하고 있는데 회계처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애매해 난감해하던 기업들은 고민을 덜 수 있게 됐다.
그동안 국내에서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펀드 출시 시도 등이 있었지만 좌절돼왔다. 주식시장의 기업공개(IPO)를 본뜬 가상화폐공개(ICO) 등은 아예 허용되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앞으로도 이런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블록체인업계 관계자와 비트코인 투자자들이 기대하던 ‘장밋빛 미래’는 멀어졌다는 얘기다.
가상화폐가 금융자산이 아닌 무형자산 또는 재고자산으로 규정됨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는 근거도 명확해질 전망이다. 가상화폐를 금융자산으로 보면 부가가치세(10%)를 물릴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는 가상화폐에 대한 부가세 부과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해외에서 코인에 부가세를 매기는 나라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소득세는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양도소득으로 과세할지, 기타소득으로 과세할지 등의 세부 사항은 논의 과정에서 명확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NIE 포인트
가상화폐가 탄생해 대중의 주목을 받게 된 과정과 이유를 알아보자. 가상화폐의 장단점과 기존 화폐를 대체할 가능성을 토론해보자. 법정통화는 아니지만 기능적으로 존속할 가능성은 없는지 생각해보자.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금융부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