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인 이춘재(56·사진)가 모방 범죄로 밝혀져 범인까지 검거됐던 8차 화성살인사건을 자신이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씨의 주장이 맞다면 화성연쇄살인사건으로 포괄적으로 분류돼 왔던 10건의 살인사건은 모두 이씨가 저질렀다는 얘기다. 경찰은 이씨의 자백 진위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4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24∼27일 부산교도소에서 이뤄진 이씨에 대한 4∼7차 대면조사에서 이씨는 8차 사건을 포함한 10건의 화성사건과 다른 4건까지 모두 14건의 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애초 장기 미제로 분류된 화성사건은 모방 범죄로 밝혀져 범인까지 검거된 8차 사건을 뺀 나머지 아홉 차례의 사건이었다.

8차 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 태안읍 진안리의 한 주택에서 박모양(13)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이듬해 윤모씨(당시 22세)가 범인으로 검거돼 처벌까지 됐다. 이씨의 자백이 맞다면 8차 사건 범인으로 잡힌 윤씨는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는 셈이 된다. 아울러 경찰의 강압수사 여부도 도마에 오르게 된다.

윤씨는 2003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8차 살인 사건이라는 것은 내가 한 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당시 경찰은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음모가 윤씨의 음모와 일치한다는 점을 확인해 이씨를 범인으로 봤다. 윤씨는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가석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씨가 모방 범죄로 규정된 사건마저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씨 자백의 신빙성을 검증하고 있다. 아무리 과거 자신의 범죄행각을 털어놓는다고 하더라도 이미 범인이 잡혀 처벌까지 된 사건을 자신의 소행이라고 주장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경찰은 이씨가 자신을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로 특정한 경찰의 과거 수사를 의도적으로 깎아내리기 위한 수싸움일 수도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수원=윤상연 기자 syyoon11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