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후된 지방의 지점만 대폭 축소” 지적도
인터넷 환경 느려 사실상 디지털뱅킹 불가능
영국 BBC와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은 소비자매체인 ‘Which?’가 조사한 통계를 인용해 2015년 1월 9803개였던 은행 지점이 지난 8월 6549개로 3254곳이 줄었다고 보도했다. 4년 7개월 만에 33.2% 감소했다. 이 기간 동안 은행들은 3303곳의 지점을 폐쇄했고, 49곳의 지점을 늘리는 데 그쳤다.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 바클레이스, HSBC, 로이드 등 자산 규모 기준으로 영국 ‘빅4’ 대형은행들이 지점 폐쇄를 주도했다.
BBC에 따르면 RBS는 이 기간 동안 영국 전역에 있는 전체 지점의 4분의 3에 달하는 412곳을 폐쇄했다. RBS의 자회사인 낫웨스트은행도 같은 기간 639곳의 지점을 폐쇄했다. 바클레이스는 이 기간 동안 481개의 지점이 문을 닫았다. FT는 바클레이스가 구체적인 자료 공개를 거부했기 때문에 실제로 폐쇄된 점포는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고 전했다. HSBC와 로이드는 같은 기간 각각 442곳과 402곳의 지점을 폐쇄했다. 자산 규모 기준 유럽 최대은행인 스페인의 산탄데르은행도 영국 전역에서 294곳의 지점을 폐쇄했다.
지역별로 보면 2015년 1월부터 지난 8월까지 웨일즈에 있는 은행 지점의 43%가 폐쇄됐다. 스코틀랜드는 같은 기간 38% 줄었다. 현재 운영되는 은행 지점 중 4.6%인 298곳이 주 4일 이하만 문을 열고 있다는 것이 FT의 설명이다. 웨일즈 일부 지역에선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만 여는 지점이 적지 않다. 일간 가디언은 소비자매체의 통계를 이용해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의 은행 지점 폐쇄 속도가 런던을 비롯한 중산층 지역의 4배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영국 은행연합회는 “지역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은행 지점을 폐쇄하는 결정을 결코 가볍게 보고 있지 않다”며 “디지털뱅킹 등 소비자들이 24시간 은행과 접촉할 수 새로운 방법을 도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합회는 지방 지점을 폐쇄하는 대신 우체국과 협약을 맺고 고객들이 지역 우체국에서 은행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우체국에서 제공하는 금융서비스는 은행 지점의 서비스에 비해 제한적일뿐 아니라 우체국도 빠른 속도로 폐쇄되고 있다는 것이 현지 언론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일간 더타임스는 “대형 은행들이 지점을 줄인 곳은 인터넷 환경이 열악한 지역이 대부분”이라며 “지방에 있는 소비자들은 느린 인터넷 속도로 온라인뱅킹을 할 수조차 없다”고 지적했다. FT에 따르면 영국 소비자들의 3분의 1 이상은 여전히 은행 지점을 통한 대면 채널을 통해 금융거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영국 금융감독청(FCA)은 대형은행들의 이 같은 지점 폐쇄에 제동을 걸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점 폐쇄는 은행의 자율적인 결정이라는 판단에서다. 다만 현지 언론들은 재무부 관계자의 발언을 인용해 “모든 국민들이 금융거래를 할 수 있는 것은 중요하다”며 “은행들의 지점 폐쇄 결정을 결코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에서도 은행 지점 숫자는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5년 1월부터 지난 6월까지 국내 19개 은행의 지점은 6270곳에서 5686곳으로 584개 줄었다. 영국에 비해 지점 감소폭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금감원은 무분별한 은행 점포 축소를 막기 위해 지난 5월 은행연합회와 공동으로 ‘은행점포 폐쇄 관련 공동절차 시행안’을 마련했다. 은행 지점을 폐쇄하려면 취약계층의 금융접근성을 따지는 사전영향평가를 해야 하고, 사전에 자동화기기(ATM) 등 대체수단도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